당신에게 '태일'은 기억되고 있습니까?
* 뉴스레터 '문화소비리포트' 시즌 2에 기고되었던 글입니다. (21.05.01 발송)
'전태일'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이름입니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부르짖으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인물이자, 노동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이름이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전태일이라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음악극 <태일>은 불꽃 뒤에 가려진 전태일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기억하는 공연입니다.
음악극 <태일>은 실존 인물을 공연을 통해 복원하는 ‘목소리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2017년 11월 첫 트라이아웃 공연을 올려 호평을 받았고, 2018년과 2019년에 두 차례 짧게 공연된 이후 2021년 2월에 첫 장기 공연으로 다시 관객을 찾았습니다. 이 작품은 전태일의 삶에서 드라마를 이끌어내기보다는, 전태일이라는 사람을 무대 위에 있는 그대로 되살리는 것에 집중합니다. 실제 전태일이 남긴 수기와 <전태일 평전> 등에서 가져온 가사와 대사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이제는 글자로만 남은 그의 삶의 조각들을 무대 위 장면들로 재현합니다.
이 모든 것을 무대에 펼쳐내는 것은 단 2명의 배우입니다. 두 배우는 각각 태일의 목소리와 태일의 삶 속 다른 인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노래와 대사를 번갈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 장면에서 한 명의 배우가 여러 인물의 목소리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배우들은 그들이 세상에 남긴 외침을 되풀이하고, 때로는 인물 그 자체가 되어 그들을 무대 위에 되살리는 역할을 하죠.
<태일>의 또 다른 특징은 배우가 극 중간중간 몰입에서 빠져나와, 배우 자신으로서 관객 앞에 선다는 점입니다. 배우들은 자신에게 남은 전태일의 기억에 관해, 또 자신을 살게 하는 원동력에 관해 대본에 없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로지 그 날의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는 배우들의 이야기는 잠시 분위기를 전환하는 유쾌한 계기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극 중 태일의 서사와 겹쳐지며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더불어 음악극 <태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음악입니다. 음악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뮤지컬과는 다르게, 특정한 장면에서 인물의 심리를 강화하고 감정을 부각하는 역할을 하는 음악극이기에 다양한 분위기의 음악이 등장합니다. 태일이 살아온 시절의 가요를 떠올리게 하는 통기타 선율이 전반에 깔린 <태일>의 음악은, 각 장면과 찰떡같이 어우러지며 관객의 몰입도를 한층 높입니다.
그리고 <태일>의 무대에는 ‘촛불’이 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학업도 중단하고 열심히 일하던 한 평범한 청년이 열정적인 노동운동가로 변모하기까지, 태일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동안 무대 위에는 하나 둘 촛불이 켜집니다. 촛불이 피워내는 밝은 빛은 어려운 순간에도 태일이 놓지 않은 희망과 타인을 향한 태일의 따뜻한 마음,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그의 열망을 상징합니다.
태일이 거쳐온 순간마다 한두 개씩 소소하게 켜지던 촛불은 태일의 희망, 따스함, 열망이 한데 뒤섞여 뜨거움이 되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수십 개가 연달아 불을 밝히며 불꽃이 됩니다. 군중의 소음이 흩어진 적막 속에 홀로 그림자처럼 남은 태일과 작은 무대를 가득히 빛내는 수십 개의 촛불. 음악극 <태일>이 기억하는 전태일의 마지막 순간입니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전태일의 마지막 순간은 어떤 장면인가요?
전태일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노동 운동의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했기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를 기억함으로써 그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관람한 회차에 출연했던 김국희 배우는, "음악, 연기, 공연은 기록되고 기억되기 때문에, 전태일도 음악극 <태일>을 통해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구독자 여러분도 음악극 <태일>을 통해, 전태일이라는 인물에 대한 여러분만의 기억을 가져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문화소비리포트'는 학생들이 만드는 뉴스레터로, 실내외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 콘텐츠를 소개하고 추천합니다. 저는 시즌 2부터 합류해, 연극과 뮤지컬 담당 에디터로서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12월 11일자, 오늘부로 '문화소비리포트'의 시즌 4 메일 발송이 시작되었답니다. '시대'를 다루는 이번 시즌 4에서 저는 80년대와 90년대에 관한 뮤지컬과 연극 작품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예정이니, 흥미가 생기셨다면 아래 링크에서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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