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재필, <나의 막노동 일지>
이 책은 27년간 기자로 활동하다 조기 퇴직한 작가의 은퇴 이후 노동 일지이다. 퇴직 이후 한식 조리사 자격증에도 도전해 보고 (실패하긴 하지만), 경비원과 비계 기능사도 시도하다가 건설현장에 몸을 담게 된 사연을 그리고 있다. 2023년 2월부터 6월부터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내용에 추가된 내용을 엮어 책으로 펴낸 것이 11월이니 상당히 빠른 리듬으로 인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공사장의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에 대해 상세히 그려낸 이 책은 '노가다', '막노동'이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육체노동을 면면이 전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중장년층이자 베이비붐 세대인 작가가 바라본 은퇴 후 삶에 대한 태도라든가, 윗세대와 아랫세대를 부양하느라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 퇴직 이후 완전히 달라진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보여주는 한국 고령자의 빈곤율 같은 부분을 짚은 부분에서는 기자의 관록이 묻어났다.
그런데도 이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책에 새로이 삽입된 <50대 주방 보조의 골병 일지>였다.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싶었으나 실기에서 번번이 실패한 후 주방 보조로 일을 시작하게 된 에피소드에서, 나는 그만 실망하고 말았다.
조리사의 꿈을 뒤로한 채 도망치다시피 취업한 곳이 대기업 직원 식당이었다. 이곳은 여인 천하였다. 조리사와 식재료 전처리하는 사람을 포함해 남자가 셋뿐이었다. 10명 남짓한 여성들은 모두 60대 이상이었고 몸 성한 사람이 없었다. 직원 식당도 3D 직업이라 60대 이하는 버텨내지 못했다. 간혹 30대 여성이 입사하긴 했지만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나재필, <나의 막노동 일지>, 206쪽.
6~8월 한여름의 햇살은 용광로처럼 붉은 혀를 내밀고 무엇이든 녹여버릴 듯한 기세였다. 솜뭉치라도 있으면 금세 붙이 붙을 것만 같았다. 땀은 평소의 배출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확 쏟아졌다. 이런 날씨에 세척 증기까지 뿜어져 나오는 주방은 한증막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숨이 턱턱 막혀 몇 번쯤 졸도 직전까지 갔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컨베이어벨트 앞에 서면 기계는 내가 따라갈 수 있는 속도를 넘어서 세차게 독한 세제를 뿌려댔다.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지만 쉴 수는 없었다.
(…) 얼마 안 가 몸은 몸대로 망가지고 정신은 황폐화됐다. 손톱 3개와 발톱 2개가 2개월 사이에 빠졌다. 스테인리스 용기나 그릇 모서리가 손톱 사이로 들어가 생살을 뒤집어놓은 것이다. 처음에는 일이 서툴러서 그런가 보다 했다. 하루는 선임 아주머니께 손톱, 발톱 상태를 보여줬다. 아주머니는 배시시 웃으며 한 번씩은 다 거쳤던 부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 곧 손가락 관절이 아파올 것이고, 그 다음엔 팔뚝, 어깨로 전이될 것이라고 했다. 아주머니의 말은 웃자고 한 얘기가 아니었다. 심지어 순서까지 그대로 아파오기 시작했다. 통증이 손가락, 팔뚝, 어깨로 옮겨 갔다. 여기에 남자라고 무거운 음식 재료까지 도맡아 나르다 보니 허리까지 아팠다.
나재필, <나의 막노동 일지>, 207-208쪽.
말 그대로 "손발톱이 빠지는" 고통 속에서 "하루 11시간을 일하면 몸에서 쉰내"가 나 대중교통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던 작가는 3개월을 거의 채우고 난 후 퇴행성관절염, 손목터널증후군 등 5개의 지병을 얻고 일을 그만둔다. 그렇게 일하고 받은 대가는 "월 240만원에 못 미쳤다"(208)고 작가는 회상한다.
주방 보조를 포기하고 공사장으로 진입한 작가는 기자 일과 주방 일과 육체노동 중 어떤 것이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다가 주방 일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한다. 무려 "막노동이 힘에 부칠 때면 주방 보조로 일하던 때를 떠올"(209)린다고 하며 회상을 마친다.
작가는 왜 여기서 멈추었을까?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내용(인 동시에 책에서도 앞부분에 작성한 내용)을 보면 건설현장에서 일하면 한 달에 400만원을 벌고, 온 가족이 총출동하면 월에 1600~2000만원을 벌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본인이 직접 겪은 주방 보조 일, 문자 그대로 육체가 망가지고 정신도 망가지는데다가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에 대해 왜 더 깊이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왜 그것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버리고 만 것일까? 작가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일이 기자였기 때문인지 이 부분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먹이는 일, 돌보는 일, "여인 천하"인 일, "남자"인 작가조차 버티지 못하고 떠난 곳은 더럽고Dirty 위험하고Dangerous 힘들다는Difficult "3D 직업" 중에서도 더 바닥에 존재한다. OECD 국가 38개국 중 34위에 달하는 한국의 작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812명으로 집계되었다. 하루에 두 명씩 일하다 죽는 것이다. 업종별 사망자수는 건설업에서 가장 많았으며,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뒤를 잇는다.
그런데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인정받지 못하고', '집계되지 못하는' 산업재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를 산업재해로 인정할 것인가? 어디까지 보상할 것인가? 부상과 죽음이 손해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 방지에 힘쓸 것인가? 담배 한 대 태우지 않아도 연기로 자욱한 공간에서 일하느라 폐암에 걸리는 일 같은 게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급식노동자들의 산재가 점차 인정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노동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사람 값도 제대로 쳐 주지 않는데, 환경 개선 값을 치를 리가 있을까.
막노동은 '막'노동, "이것저것 가리지 아니하고 닥치는 대로 하는 노동", 막일은 "중요하지 아니한 허드렛일"을 뜻한다. 가치 없는 일, 비숙련노동,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 작가가 몸담은 건축현장 건설업이 대표적인 '막노동'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 노동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희망이 되기도 하고, 한밑천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막노동조차 못 되는 노동'은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것일까? '막장'에조차 출입 금지 당한 "여인 천하"의 세계는 궁중암투극 <여인천하>에 비해 더욱더 초라하고 비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