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데이비드 무어,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 영화 <듄>

by 난란

영화 <듄>에 대한 나의 첫 인식은 평론가 듀나의 평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듄>의 세계는 어떤 곳인가. 인류가 항성간 여행을 통해 전 은하계를 커버하는 제국을 건설했는데, 그 세계에서 백인 남자들이 공후백자남 놀이를 하며 만년의 시간을 날리고 있다. 이 자체가 통탄할 일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들의 사고방식, 행동, 언어는 아서왕 이야기와 <젠다성의 포로> 사이에 있는 잡다한 옛 문학에서 가져와 SF 설정에 얼기설기 엮은 것 같다. 한마디로 이 세계의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대신 옛날 사람 흉내를 내고 있다. 얼마 전에 SNS에서는 맘스터치에서 치킨버거 주문하는 과정을 성경 말투로 푼 게시물이 인기를 끈 적 있는데 그걸 생각하시면 되겠다. 그 결과물은 재미있지 만 보기만큼 믿을 만하지는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듀나, <프랭크 허버트의 <듄>영상화와 관련된 신화와 진실>


글은 이렇게 시작해야 하는구나.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영화지만 문단의 첫 줄부터 좋든 나쁘든 흥미가 동했다. 물론 듀나의 글은 '절대 영화화될 수 없는 엄청난 대서사시가 영화가 되었다'라는 반응에 대해 반박하고자 하는 것이 골자지만, 내게는 저 문장과 세계관이 너무나 웃겼다.


와중 민음사 TV에서 조아란 부장이 성연주 과장에게 <듄> 파트 2 개봉 기념으로 <듄> 영업 영상을 업로드했는데, 이 영상을 통해 <듄> 세계관에 대해 더 알 수 있었다. <듄>의 세계관이 너무나 방대하고 복잡하여 입문이 쉽지 않기에 내용 정리 및 설명을 진행하는데, 덕분에 수월하게 세계관을 훑어볼 수 있었다.



영상을 보니 듀나의 문장도 조금 더 이해가 갔다. "인류가 항성간 여행을 통해 전 은하계를 커버하는 제국을 건설했는데, 그 세계에서 백인 남자들이 공후백자남 놀이를 하며 만년의 시간을 날리고 있다"는 것. 황제와 주요 가문들이 세계를 쥐락펴락하는데, 그 가문의 후계자는 오직 남자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또 세계의 뒤편에 존재하는 베네 게세리트 (자매단)은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이 세계의 명운을 조종하고 있다.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조종하고, 보이지 않는 메타 메시지를 읽어내고, 게다가 '인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는 전인류급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인류를 어떻게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나요?


메시아(퀴사츠 해더락)을 만듦으로써.


어떻게요? 철저한 유전자 교배 계획을 통해서. 그렇군요. 그래서요? 그런데 주인공이자 메시아인 폴의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가 딸을 낳아야 하는데 아들을 낳아 버렸어. 그들은 태어날 아이의 성별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딸을 낳았어야 했는데 자매단의 목표를 거스르고 아들을 낳아 버린 것이지. 왜요? 왜냐면 대를 이으려면 아들이 필요하니까. 남편을 너무 사랑했거든.


?


어쨌든 주인공인 폴은 베네 게세리트의 능력도 쓰고 예지몽도 꾸고 인간 컴퓨터 능력도 갖춘 메시아로서의 운명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이 현재까지 나온 <듄>의 주요 내용 되시겠다.


일단 태어나 아이의 성별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고 관심법에 조종술에 인류보완급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여성들이 어째서 굳이 세계의 뒤편에만 존재하는지는, 그것도 여성이 가문 하나 못 잇는 세계를 바꾸는 세계를 유지하면서 존재하는지는 의문이다. 이후에 계획에서 어긋나게 태어난 폴이 진짜 메시아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갈등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것보다 일단 이 세계관 괜찮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성유전학에 따르면 유전자는 조합만으로 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듄>의 세계관에서는 적절한 유전자 조합(교배)와 성별만으로 메시아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메커니즘을 따르고 있다.


후성유전이란 다양한 맥락 또는 상황에 따라 유전 물질이 활성화되거나 비활성화되는, 즉 발현되는 방식을 일컫는다. (-) DNA는 껐다 켰다 하는 전등 스위치처럼 작동한다고 말이다. 아니, 조명을 약간만 밝히거나 적당한 밝기로 맞추거나 눈이 부실 정도로 밝게도 조절할 수 있는 조광기처럼 작동한다고 보는 게 더 낫겠다. 어떤 DNA 분절DNA segment(유전자)이 얼마나 활성화되는가는 그 분절의 후성유전적 상태에 달려 있고, 그 상태는 그 분절이 처한 맥락 등의 요인에 달려 있다.

전통적 관점에서는 우리가 어떤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 관점에 따르면 당신의 눈이 파란 것은 파란 눈과 관련된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후성유전의 정의에 따라 생각해보면, 이런 일들을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다. 유전자의 활동 정도가 다양한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DNA가 무엇을 하는지다.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질’ 수 있다면 그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후성유전학의 관점에서 볼 때 특정 유전자를 가진 것은 열쇠 하나를 가진 것과 비슷한 일이며, 딱 맞는 열쇠구멍이 없다면 그 열쇠는 있어도 무용지물이라는 말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을 인용해보자면, 그런 유전자는 “광산에 묻혀 있는 은”과 같아서 별 의미가 없다.

데이비드 무어,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33-34쪽.


전통적인 유전학의 관점에서는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있느냐가 매우 중요했다. 최소한 표현되는 유전자의 일부가 우리가 수정될 때 이미 결정되었고, 이것은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후성유전학은 어머니의 임신 시 상태, 성장하면서 받는 여러 환경적 요인들이 유전자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살아가는 맥락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유전 물질은 평생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에 반응하여 변화한다.


사실 한국에서 오랫 동안 살았다면 자연스레 생각했을 부분이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몸과 흙, 먹는 것은 다르지 않다. 역사적인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도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한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보겠다"라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전자가 아무 소용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이전의 유전학 및 우리의 믿음이 유전자를 마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처럼 다루었기에, 유전자는 상대적이지 절대적이지 않다는 후성유전학의 논의가 제시되는 것 뿐이다. 유전자와 환경은 상호작용한다.


발달 환경, 즉 ‘양육’이 사람의 유전체 기능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해서, 우리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만큼 ‘본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지만 DNA가 운명을 특정하게 결정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는 하다. 후성유전학 연구는 엄청난 함의를 품고 있다. 경험이 중요하다는 믿음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그리고 우리 곁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지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무어,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37쪽.


듀나의 말처럼 <듄>은 옛날 사람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고대 신화의 세계관을 따르고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는 신탁의 힘이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벗어나기 위해 부모와 분리되는 엄청난 환경적 변화를 겪었지만 끝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고 만 오이디푸스처럼, 자매단이 엮은 유전자의 계산 안에 메시아는 존재한다. <듄>의 세계관에서 메시아의 운명(유전자)을 타고난 존재가 있고, 그렇지 않은 존재는 영영 구분될 뿐이다.


후성유전적 대물림은 (-) 진화론에 새로운 개념들, 현재의 신다윈주의 관점에서 보면 전복적인 개념들을 도입한다. 후성유전보다 문화를 먼저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상징적 문화에는 의심의 여지없이 늘 진화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인들로 이루어진 세계에서조차 우리는 진화적 과정이 여러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문화적 변이는 적어도 어느 정도는 DNA 변이와 별개로 분리된다. 그리고 문화적 진화를 이해하려면 변이의 이러한 자립적 측면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후성유전의 변이에 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유전 가능한 후성유전적 변이는 그 말의 정의상 유전자 변이와는 분리된다. 따라서 DNA 변이와는 별개로 진화에 선택될 수 있는 후성유전적 변이들이 존재하며, 후성유전의 축에서 진화적 변이가 일어나는 일은 불가피하다.

후성유전학은 유전 개념을 확장할 것을, 또한 자연선택을 작동시키는 유전 가능한 변이에 서로 다른 몇 가지 유형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유전자를 중심으로 하는 현재의 다윈주의, 즉 신다윈주의는 라마르크주의와는 양립하지 않지만, 다윈주의는 그렇지 않다. 과거에는 라마르크주의와 다윈주의가 항상 상호배타적인 대안으로 여겨졌던 것은 아니며, 서로 완전히 양립 가능하며 상보적인 것으로 인정되었다. 후성유전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 둘의 관계는 여전히 그렇다. 후성유전 체계가 진화에서 하는 역할을 인정한다면 발달과 진화를 더욱 밀접히 통합하는, 더욱 포관적이며 강력한 다윈주의 이론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데이비드 무어,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412-413쪽.


재미있는 부분은 지금까지, 적어도 내가 정규 교육 과정에서 배운 생물학적 지식에 의하면 '획득한' 형질은 '유전된' 형질과는 다르며, 후자는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실제 다윈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발달하지 않는다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후성유전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나는 이것은 '틀린' 가설이라고 배웠었다. 그러나 최근 후성유전학이 발달하면서 획득된 형질 또한 유전될 수 있으며, 이것은 오직 유전된 형질과 상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후성유전학적 관점에서 볼 때, 메시아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메시아의 형질은 오직 교배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듄>이 쓰여진 시기는 꽤 이전이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자매단의 목표가 어그러진 것은 레이디 제시카가 남편을 위해,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자매단이 커튼 뒤에서 유전자 풀만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커튼을 헤치고 나와 남자만 대를 이을 수 있다는 낡은 관습을, 환경을 바꾸었다면 적어도 그들이 계획한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을까? 혹은, 그들이 '부적격'하다고 판단했던 메시아의 가능성(형질)이 사막 어딘가에 처박혀 있지는 않았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렇게 일하시면 죽어요.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