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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Apr 01. 2024

누가 저한테 뭘 물려주셨다고요?

프리다 쉬베크, 템스강의 작은 서점

존재조차 모르던 친척이 내게 유산을 남겼다.     


... 현실이라면 침 넘어가는 얘기고, 서사에서는 종종 쓰이는 클리셰다. 물론 그 유산이 굴러들어온 복이기보다 골칫덩이일 때가 없지 않다. 이 책에서 주인공에게 난데없이 떨어진 이모의 유산이 바로 그렇다. 



템스강의 작은 서점 | 저자 프리다 쉬베크 | 출판 열림원 | 발매 2023.10.05.



스웨덴에서 남편과 함께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던 주인공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 사고로 남편이 죽고 여전히 일상을 되찾지 못하고 있던 주인공은, 세상에 있는 줄도 몰랐던 이모가 유산으로 런던에 있는 작은 서점을 남겼다는 소리에 그렇잖아도 조각나 있던 삶에 다시 한번 커다란 폭격을 맞는다.      


그 서점이란 곳은 그런데 알고 보니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고, 주인공은 도무지 책에는 관심이을 갖기가 힘들고, 서점 위층의 살림집에 이모가 남겨놓은 흔적은 뭔가 사연이 분명히 있어 보이는데 그게 뭔지 알 수는 없는 데다 오랫동안 일해 온 서점원들 중 한 사람은 노골적으로 주인공을 적대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정신줄을 잡을 수 있을까?     


서점의 첫 번째 주인이었던 워터스 목사는 백 년도 전에 이 서점을 열었다. 사람들에게 교육적인 문학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그는 서점 내부의 특징이 된 열두 개의 거대한 책장을 손수 만든 다음, 자기 자녀들의 이름이 새겨진 자그마한 놋쇠 명패가 보였다. 단골손님이 책을 찾을 때면, 목사는 서가의 이름을 알려주며 말할 때가 많았다. 이를테면 “조세핀 위쪽을 보세요”라고 말이다. -17쪽     
“내가 샬로테에게 딱 어울리는 남자를 골라줄게요. 어떤 타입의 남자가 좋아요?” 샬로테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샘은 손을 양옆으로 쭉 뻗었다.
“말해봐요. 단서가 필요하다고요.” 
그러자 마르티니크가 소리쳤다.
“제이 개츠비 어때? 신비한 남자면서 돈도 많잖아. 게다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뭐든지 다 하고.”
“안 돼. 샬로테에겐 좀 더 재미있는 사람이 어울려. 윌리 웡카 어때요?”-139쪽  

 

서점과 서점원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물과 공간에서, 현실과 가상이 엮은 공간에서 살아본 사람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대화가 정말 좋다. 덕톡이 얼마나 즐거운지 해 본 사람은 다 알지 않나.      


크리스티나, 너 이 책 꼭 읽어봐! 베넷 자매는 우리랑 닮은 점이 많아. 넌 항상 모든 걸 미리 생각해두는 차분하고 합리적인 제인이랑 비슷하고, 나는 충동적이고 고집 센 리지랑 비슷하거든.
제인 오스틴의 건조한 유머 감각은 우리 둘 다 좋아할 만해. 이건 반드시 결혼해야 살 수 있었던 19세기의 가난한 여자들 이야기야.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재미있고, 가슴 아픈 이야기도 많지만 결국엔 행복하게 끝나. 이제 문제는 딱 하나야. 대니얼은 다아시 씨에 가까울까, 아니면 빙리 씨에 가까울까? 넌 어떻게 생각해? -145쪽      
“내가 처음 서점 일을 시작했을 땐, 매주 수천 파운드씩 책을 팔았어. 온라인 서점을 따라잡기란 불가능해. 사람들은 대부분 서점을 좋아하긴 하지만, 우리 같은 서점을 살리기 위해 몇 파운드 더 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질 않아.” -169쪽      
하지만 순식간에 모든 게 무너지는 바람에, 그녀는 작년 내내 흩어진 삶의 파편을 모으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샬로테는 매일 마시는 찻잔을 들었다. 항상 같은 잔으로 차를 마시고 씻은 다음 말리는 행동은 어쩐지 명상적이었다. 결코 끝나지 않을 행동은 그녀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일련의 의식 같았다. -208쪽      


세상엔 수많은 이야기의 씨앗이 있고, 같은 씨앗을 심는 작가들이 있다. 그러나 제각각 가진 감수성의 토양이 다르기에 같은 씨앗을 심었어도 피어오르는 새싹도 맺는 열매도 모두 다르다. 그중 어떤 이야기는 내게 소위 ‘코드가 맞을’ 수도 있고 분명 내가 좋아하는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어쩐지 결이 맞지 않아 중도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초반에 ‘아닌 것 같은데’ 싶은 인상이 먼저 들어와도, 인내심을 갖고 읽어나가다 보면 마지막 페이지를 한 번 쓰다듬고 덮어주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 


세상에 너무 많은 컨텐츠가 범람하고 있고, 창작자의 수가 놀라울 정도로 증가하고 있는 건 어쩌면 ‘나라면 그 이야기 씨앗을 이렇게 키워봤을 것 같아’라는, 일종의 이의제기(?) 내지는 제안, 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책을 사는 사람들 중 태반은 동종업계 종사자인 작가들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갑자기 떠오르는데, 나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의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여 주며 오, 그거 좋다. 나는 이렇게 풀면 어떨까 했는데- 하고 머리를 맞대고 수군수군하는 귀여운 장면이 떠올라서 웃고 말았다. 아무려면 어떤가, 작가든 독자든 출판업계 종사자든, 책을 읽고 떠드는 소리가 좀 더 커지면, 함께 웃는 소리가 퍼져나가면 도대체 쟤들은 뭐가 저렇게 재미있나 싶어서 한 번 쳐다보기라도 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더 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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