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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May 02. 2024

당신은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어맨다 몬텔, 컬티시 : 광신의 언어학

컬트란 무엇인가.


"컬트"는 일반적으로 특정 인물, 이념 또는 신념에 대한 헌신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모임 혹은 집단을 의미한다. 대체로 카리스마적인 인물에 의해 조직화되어 있는데, 맹목적인 리더에의 헌신과 주류 사회로부터의 고립, 마치 게임처럼 특정한 미션을 달성해야만 위로 진급할 수 있는 계층 구조라는 특성을 띤다.

평화로운 컬트가 없지는 않겠으나 종종 반사회적인 기치 아래 조직화되거나 그러한 목적을 실제로 수행하는 경우가 있으며, 구성원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기 결정권과 주체성을 박탈한다는 강력한 특징을 갖는다. 

… 정도로 요약 가능하겠다. 



컬티시 | 저자 어맨다 몬텔 | 출판 arte | 발매 2023.02.01.



오늘 책모임을 하다 언급했던 이야기들을 적어두고 싶었다. 우연히도 컬트 지도자는 마치 거대한 야망을 갖고 세계관을 조립하기 시작하는 작가와도 비슷한 데가 있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진짜 레알참트루사실이었다… 


영화배우 뫄뫄 씨가 믿는 것으로 아주 유명세를 탄 사이비 종단의 리더가 바로 펄프 픽션 작가였다고 하는데 (특. 잘 팔리지 않음), 어쨌거나 그는 그의 세계관을 몹시도 유해한 방식으로 결국 현실에 던져놓는 데 성공… 이런 표현 쓰고 싶지 않지만 아무튼… 한 셈이다. 


세계관 빌드업은, 실로 중독적인 데가 있다. 그러나 장담컨대 컬트의 지도자들 중에서 그것을 제대로 해 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닌데? 잘 해먹고 있는데? 라고, 글쎄요. 두고 볼 일입니다. 일관성 있는 서사, 게다가 사람을 쭉 설득시킬 수 있는 서사를 계속 만들어가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서(그런 차원에서 아오야마 고쇼 상 혼또니 스바라시…) 같은 얘기를 계속하는 자기 복제는 결국 가장 열성적인 지지자마저 등 돌리게 만드니까.

잘했으면 컬트를 만들고 있었겠나, 그 장대한 세계관으로 IP 팔아먹어 떼부자가 됐겠지. 


컬트적 인물들이 규모가 어떻든 자신만의 제국을 건국한 신화적 인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수명은 이미 만들어질 때부터 예견되었다고 봐야 한다. 가상의 인물에게 핍진성을 부여하고 인물 나름의 서사적 정합성만을 만들어 준 채로 놓아준 것과 현실의 사람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틀 안에 가둔 것의 수명을 어떻게 비교한단 말인지. 이쯤 되면 종이 위의 인물보다 현실의 사람이 더 딱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사회악적인 컬트의 문제점은 단시간에 몰락한다 하더라도 사회에 끼치는 피해가 막대하다는 점 아닌가.  그럼 이쯤에서 컬트 언어, 이 책의 저자가 명명하기로 컬티시 cultish의 특성을 알아보기로 하자. 


진정한 해답은 바로 말에 있다. 전달하는 것, 기존 단어를 교묘하게 재정의하는 것(혹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는 것)부터 강력한 완곡어법, 비밀 암호, 개명, 유행어, 성가와 만트라, ‘방언이 터지는 것’, 강요된 침묵, 심지어 해시태그까지, 컬트는 언어라는 핵심 수단을 통해 다양한 수준으로 영향을 미친다. -24쪽
의도가 선하든 악하든 간에, 언어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같은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구성원들이 뭔가 중요한 곳에 속해 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거다. “언어는 공유된 이해 문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28쪽
애플화이트는 자신의 신념에 걸맞게 공상과학적인 용어로 헤븐스 게이트만의 어휘를 새롭게 창조했다. 저택에는 일상을 통제하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는데, 이런 단어들이 질서를 유지하는 데 활용되었다. (...) “이런 특별한 언어 덕에 그들은 일종의 수사학적 공간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공간 안에 있다고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95쪽
컬트적 언어의 첫 번째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우리 vs. 저들’ 이분법을 만드는 것이다. 언어를 통해 추종자들과 다른 모든 이들 사이에 심리적 분열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아무리 전체주의 지도자라도 권력을 얻거나 유지할 수 없다. -98쪽


웃기지 않지만 좀 웃자고 한 말이었고, 사실 나는 이런 컬트 집단도 위험하긴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위험한 컬트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컬트적 언어를 일상 언어로 구사하는 개인, 그것도 정치적 권력을 손에 쥘 수 있는 컬티시 네이티브 (도대체 어떻게 키우면 컬트적 언어의 원어민이 될 수 있는지 그것이 알고싶… 지는 않다)의 위험성은… (이쯤에서 내가 누구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아시리라) 


작금의 문제라면 단순히 기존의 정의에 들어맞는 컬트 집단뿐만 아니라 평범한 브랜드조차도 그들과 우리를 가르는 방식의 화법으로 컬트적 언어를 브랜드 정체성을 만드는 마케팅적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겠다. ‘우리’라는 말, 듣기에는 참 좋은데 이것이 타인을 배제하는 말이 될 때는 그 이상 가는 잔인한 날붙이가 따로 없다. 경험상, ‘우리’가 나와 여러분, 그리고 전 세계 지구인 여러분으로 쓰일 때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누군가를 따돌리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 

사소한 언어 하나가 만드는 경계가 얼마나 깊은지, 심지어는 완벽하게 ‘우리’ 바깥의 타인을 배척하기 위해 디자인되었음이 분명한 언어 이외에도, 


합리적인 구석이 전혀 없음에도, 격앙된 톤으로 전달되는 뇌리에 쏙 박히는 문구들은 관객을 충분히 사로잡는다. 우리 대부분이 가장 친한 친구에게라도 쓰지 않을 법한 동물적인 말투로 누군가 연단에서 이야기하는 걸 바라보는 일은 실로 흥미진진하다. <애틀랜틱>의 전속 기자 조지 패커가 2019년에 썼듯이, 트럼프의 포퓰리즘 언어의 힘은 그 개방성에 있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을 때 말하는 방식 그대로다.” -102쪽


어떤 성격적 특질을 띤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목표하는 대상에게 파괴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것과, 아예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언어의 유용성, 혹은 유해성과 파급력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이것 역시 실제로 눈에 보이는 전쟁은 아니라지만 가상의 (혹은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집단국가들이 난립하여 말과 사상의 전쟁을 벌이는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상식이지 않을까. 혹은 언어의 이해라는 구조물 안에 함께 챙겨 넣어야 할 개념의 공간이라도.


상식을 깨고 무비판적 맹신, 심신 미약의 상태로 인간을 마비시키는 광신의 언어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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