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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May 13. 2024

내가 벌고 싶은 건 뭘까

남형석,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 | 저자 남형석 | 출판 난다 | 발매 2022.08.31.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 돈 대신 사람들과 사연이 투박하게 쌓여가는 이 공유서재의 이름은 ‘첫서재’다. 세상 모든 처음이 시작되거나 기억되는 곳, 저마다의 서툴고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쌓여가는 공간으로 숙성하고픈 마음이 세 글자에 담겨 있다. 어디에서도 다독여주지 않는 어른의 서투름을 보듬는 공간이 지구에 하나쯤은 필요할 테니까. -8쪽
소망은 결심이 되었다. 물릴 수 없는 실행 계획부터 세워야 했다. -21쪽
사는 동네를 옮기려면 하나의 세계를 통째로 옮겨야 한다. 머무는 곳이 달라지면 사람의 생애도 뒤흔들리기 마련이니까. -28쪽
온전히 내 상상과 무지와 예술적 감각과 서툰 판단력으로 한 점씩 조립되는 세상이 눈앞에서 펼쳐진다는 건 그 어떤 경험과도 바꿀 수 없는 완벽한 자유로움이었다. 무엇보다 공사를 진행하는 내내 나는 집이 아닌 인생을 리모델링하는 기분이 들었다. 집 고치기란 내가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인생을 살면서 어떤 취향을 갖게 되었는지 스스로 거슬러 오르는 과정과도 같았다. -47쪽
“환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안녕히 계세요.”
나는 특별히 더 환대한 적이 없다. 그저 귀여운 아기를 보고 귀엽다고 했고 아기 엄마를 다른 손님과 마찬가지로 대했다. 아기를 매달고 짐을 잔뜩 싸들고 다녀야 하는 엄마에겐 그런 보편의 환대조차 귀했던 걸까. -112쪽
사회적 무기로 길러지던 한 시기를 지나, 사회적으론 딱히 쓸모없는 기다림과 설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음을 두드리는 날들이 기적처럼 되돌아왔다. 별 이득될 것 없는 무언가를 위해 정성껏 준비하는 하루, 쓸데없이 사랑스러운 하루하루가 매일 같은 듯 다른 모양으로 피고 진다. -128쪽


세상에 지금껏 없었던 것들을 선보이는 이들을 부러워한다.  그걸 위해 생존에 필수적인 어떤 것들을 불확실성의 경계 너머로 던져 넣는 용기를 동경하면서도 존경한다. 나는 그렇게 못 할 것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이들의 이야기는 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모험이라는 게, 꼭 물을 건너고 산을 올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저, 지금껏 내가 발 딛고 살아왔던 공간을 떠나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는 곳에 발을 디뎠다면 그것이 새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한 모험의 첫발이나 다름없으니까. 내가 생존의 규칙을 만들어가야 하니까. 세계관 빌드업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원목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책들로 가득하다. 누구나 편히 들러 생각을 푹 익히거나 활자의 숲에서 산책하는 기분을 느낀다. 공간 한쪽에서 내가 글을 쓰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그리고 밀린 업무나 작업을 하고 창밖을 바라보며 사색하다 불현듯 영감을 얻는다. 저마다 자기 일을 하지만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연대감과 공유된 정서가 낮은 공기를 타고 흐른다. 그중 누군가는 돈을 내고 이용하고 누군가는 이야기를 내고 이용한다. 누군가는 꿈을 낸다. 꼭 지금 당장 무언가를 내지 않아도 된다. 몇 년 후에 내겠다고 약속만 할 수도 있다. 겉보기에는 북카페 혹은 공유서재이지만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꿈과 취향과 사연이 느슨하게 엉킨 책의 소우주인 셈이다. -25쪽


이것이 저자가 그의 소망의 공간을 짓기 이전에 마음속에 품고 있던 설계도이자 구상도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책이 반드시 어딘가 자리하는 자신만의 이상적인 공간을 그리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런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모아놔도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화한 이야기도 재미있겠지만, 도저히 현실적으로 존재하기는 불가능한 망상에 가까운 공간이라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거 재미있는 기획 아닐까. 그냥 드릴게요, 제발 아무나 가져가서 책 좀 만들어 주세요. 100% 퓨어한 리얼 진심인데요. 


나 역시도 그런 몽상과 망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재에 대한 로망이 분명히 있긴 한데, 내 경우엔 타자를 완벽하게 배제한 공간이어서 어쩐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양심 어딘가가 제법 아팠다. 책 얘기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고 책 추천하는 게 그다음으로 재미있는 내가 대체 왜 남들을 내 책공간에 들이는 게  싫은지를 생각해 봤는데, 답은 너무 쉽게 나왔다.


그냥 싫은 거다, 내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게. 


책 제목만 봐도 내가 뭘 좋아하고 혐오하는 사람인지, 겉으로는 전혀 안 그런 척하는데 속으로는 무엇을 감추고 있는 사람인지(시커먼 속은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그런 말을 제 입으로 떠들어봤자 누가 믿냐고), 약점이 무엇인지 기타 등등. 

그것도 있고, 본의 아니게 절판본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잘 버리지 못하는 호더적인 성향이 여기에 한몫했다고 뿌듯하게 자랑하련다) 점도 그렇지만, 여기서나 시원하게 떠들자면 ‘나 이 책 좀 빌려 줄래?’라는 말이 싫다고. 남이 소중하게 여기는 책 빌려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책에 관심이 있으면 출판산업 죽지 않게 책 정도는 좀 사 보라고. 이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올 뻔한 적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훌륭한 사회인답게 참았다(...라고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처지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책을 잔뜩 꽂아둔 공간을 만든다면, 아마 그곳은 나만의 키워딩 큐레이션으로 도무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책들이 서로 비좁아 투덜거리며 끼어 꽂힌 부산스러운 곳이 될 것이다. 장르나 작가별 진열은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할 때 읽으면 좋은 책, 이런 분류도 아닐 것이고, 여하간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큐레이션을 선보일 자신은 있다. 내가 대책이 없어서 그렇지 참신성 하나는 자신 있는 사람이라. -_-;;; 


그건 그렇고 자기만의 소우주라니, 이거 예전엔 그냥 흘리듯이 지나간 말이었는데 새삼 곱씹으니 참 멋진 말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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