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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May 16. 2024

어떤 직업의 바닥을 들여다보기

앨리 모건, 사서 일기

정말로 운이 좋아서, 나는 도서관의 주 이용자들인 지역민들의 시민 의식이 평균 이상인 도서관들에 서식하며 살아왔다. 시설이 훌륭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서 나름의 고충은 있었겠지만 그래도 인력이 부족해서, 시스템이 후진적이어서 겪는 종류의 고충이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사서 일기 | 저자 앨리 모건 | 출판 문학동네 | 발매 2023.07.27.


「사서 일기」를 읽는 동안 도대체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를 위협을 미리부터 두려워하고 대비하기 위해 근무시간 내내 과각성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사서들이 세상엔 엄연히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우범 지역에는 도서관을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아니냐, 고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할 분들께는 일단 축하를 드리겠다. 그런 밑바닥 삶을 간접적으로도 체험해 볼 일이 없었을 정도로 평온한 삶을 살아오셨다는 증거이니. 


도서관이란 가장 극악하고 메마른 환경에 놓인 사람, 흔히 말하는 사회의 취약계층 혹은 소외된 약자가 그나마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최후의 보루 같은 장소일 수 있음을 새삼 자각했다. 


물론 나라마다 운영 정책이 다르고 규칙이 상이하지만 기본적으로 도서관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자본이 되는 정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시스템적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튕겨 나온 이들의 복귀를 지원하고 혹은 그들을 감싸 안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저 책을 빌려보기만 하는 장소가 아닌 것이다(여기서 논의가 더 나간다면 공간보다는 사서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결국 도서관에 대한 정부의 몰이해와 근시안적 태도에 대한 말까지 넘어가야 하므로… 지금은 그냥 대충 넘어가자).

 

언제 어디에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폭력을 감지하는 감각기를 잔뜩 세운 채 일하는 것이 얼마나 피로할지 나는 상상도 못 하겠다. 아주 오래전에 핀란드에서 맞닥뜨렸던 알코올 중독자 하나가 제 말을 무시한다면서 눈을 광기로 희번덕대기 시작했을 때, 온몸의 신경 세포가 미친 듯이 날뛰던 감각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몸이 여전히 그 찰나의 공포를 기억한다. 그런데 그런 위협이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일상인 곳에서 일한다니. 그것도 저자는 “더럽게 힘든” EMDR 요법까지 받아가며 트라우마를 치료하려 발버둥 치고 있는 사람인데. 


녀석들 중 가장 우람한 체격의 남자애가 상체를 내밀고 제 얼굴을 내 얼굴에 바싹 들이밀었다. 놈은 나보다 최소 30 센티미터는 더 컸고, 저렴한 디오도런트 냄새가 풀풀 났다. 놈의 얼굴이 십 대 남자애의 얼굴에서 다른 누군가로 계속 바뀌었다. 악몽에서 보던 얼굴, 이불과 사투를 벌이며 비명을 지르게 만들던 그 얼굴. -64쪽
해리는 트라우마의 흔한 증상이며 지속시간은단 몇 분일 수도 있고 몇 주일 수도 있다. 이것은 환자가 집중을 요하는 상황, 가령 운전을 하거나 중장비를 다룰 때 특히 위험하다. 해리에 대해서라면 나는 문외한이 아니다. -112쪽


이렇게 술회할 정도인데.


가장 씁쓸한 것은, 관리자들도 지역 분위기가 우범지역에 가까울수록 형식적인 수준 이상으로 결코 도서관 관리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돈의 논리로 보면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도서관은 우리 사회의 좀 더 취약한 사람들을 포함해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엄마들의 근심을 가볍게 무마하는 편이었다. 치토는 무해했다. (...) 

치토는 내가 도서관에서 일하며 만든 또 다른 원칙의 한 본보기였다. 말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틈새를 메우고 차이를 줄이는 것이 사서의 일이다. 우리는 정보 접근권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메운다. -188쪽


글쎄, 그런데 회의주의자 1인은 또 이렇게 생각한다. 문제 제기에 동의는 쉽게 할 수 있다(지금까지의 경험으로도 그렇다.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것이 문제라는 말에는 비교적 쉽게 고개를 끄덕여 준다). 그런데 솔루션 제안의 단계에 들어서면 아까의 문제 지적에 쉽사리 수긍했던 그 사람들은 다 어딜 간 건지 모조리 딴전을 부리느라 바쁘다.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털어놓는 이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알게 되고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 많다는 데 공감하는 것은 아주 고무적인 일이다. 실제로 그 현실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동참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이 단계에서 좌절되는 바람직한 개선안들이 너무나 많다. 훌륭한 제안서의 무덤이라는 게 어딘가에 존재하는 게 분명하지 않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그러면 정말로 우리가 사는 이곳이 실제로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진일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을 진심으로 ‘내가 아닌 타인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결국은 돌고 돌아 ‘내게도 득이 되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설득할 수 있을까? 이것 역시 숙제로 남은 질문이지만, 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렇다, 그 아이는 이미 그 기차에 대한 모든 세부요소를 내게 말해줄 수 있겠지만, 그 아이가 도서관에 와서 기차 그림과 사진을 볼 수 있고 심지어 자신이 그런 기차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어른과 얘기할 수 있다는 걸 안다면? 그 경험은 값으로 따질 수 없다.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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