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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Jun 03. 2024

세상의 모든 파랑을 품었을 선율과

김지희, G는 파랑 

제목이 너무 예뻐서 홀린 듯 손에 쥐었다. 솔G 음에서 파랑을 읽어내는 사람은 어떤 글을 쓸까? 이 질문을 던져 놓고, 나 같은 사람은 고민에 휩싸인다. 그러니까, 어떤 파랑? 소위 하늘색이라고 말하는 세룰리언 계열? 아니면, 흔히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시안 계열? 그것도 아니면 대체로 파랑이라고 호명할 때 떠올리는 청금색?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말할 수 있다. 그 모든 파랑을 다 품은 글이고, 모든 색조의 파랑을 떠올리게 하는 G일 거라고. 


G는 파랑 | 저자 김지희 | 출판 윌북 | 발매 2023.10.18.



음악을 소재로 하는 책(에세이)은, 출간 종수가 뜻밖에 아주 많은 편에 들지는 않는다. 에세이의 대표주자 격이라 할 만한 여행 에세이와 비교해 보자면 대략 1/10 수준에 불과하다. 그것도 클래식 음악을 주로 이야기하는 에세이라면, 은근히 수익을 걱정하게 되는 오지랖이 발동되는데... 음, 이 책은 상당히 잘 팔린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아니라면 죄송해요. 랭킹과 판매지수를 고려해서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추측해 보았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나 역시 그러하기에 한 권의 책이 내게 남겨준 감흥을 온전히 전달하기에는 심각하게 모자람이 있어도 그 책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줄기차게 말하기를 계속한다(현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책 영업을 잘하는 편이라고 한다. 대체로 내가 어떤 책에 대해서 한 2-3분 떠들고 나면 그 책이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던데... 구두영업하는 수준으로 글로 떠들 수 있으면 좋으련만 ㅎㅎ). 아마 이 책의 저자인 김지희 님도 분명 그래서 이런 책을 썼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대목들이 무척 많았다. 3년간 「어쿠스틱 위클리」라는 제목으로 발송했던 뉴스레터를 묶은 것이 이 단행본이라고 하는데, 그 시간 동안 매주 메일을 받아봤을 분들이 조금은 부러웠다. 나도 뉴스레터 구독 수준으로는 어디 가서 명함 내밀 정도는 되는데 왜 이런 뉴스레터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을까... 아쉽다. 


「G는 파랑」속에 좋은 음악을 모아두었으니, 책을 읽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좋은 것을 좋아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의 이야기를 보냅니다. -9쪽 


이렇게 순정한 '컨셉'을 밝히는 저자의 발그레한 마음이 들여다보이는 서문이라니. 너무 예쁘지 않나. 


책에 실린 곡들의 제목 혹은 작품번호를 먼저 읽고 본문을 읽어가다 보면 내가 알고 있는 음악이어서 더 잘 읽힐 때도 있었고 전혀 모르는 곡임에도 저자의 조곤조곤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대략 어떤 선율과 템포를 가진 곡이겠구나 짐작하는 재미가 있기도 했다. 후자의 경우 글을 읽고 해당 곡명을 검색해서 틀어보면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경우가 생기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또 저자의 어떤 표현에서 내가 무엇을 연상했기에 그런 엇박자가 만들어졌는지를 되짚어가는 뒷걸음질 역시 즐거웠다. 


문장으로만 만났음에도 글쓴이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책들이 있는데, 이 에세이가 꼭 그랬다. 자신이 쓴 단어들과 곡들의 이름 사이에 마련해 둔, 음악 애호가의 길로 갈 수 있는 샛길로 들어서는 독자가 많기를 작가는 바라지 않았을까. 상냥하고 여유로운 문장들 사이를 거닐다가, 이왕이면 조금의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저자가 소개한 곡들을 찾아 들어보는 수고로움까지 곁들인다면 더 완벽한 독서가 되리라.  


악보를 처음 받고 실제로 이 음악을 즐길 수 있을 때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살면서 한 번쯤 이렇게 노력을 하는 시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순간을 그리워하며 현재의 나를 미워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만큼 열정도, 인내심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가까운 사람에게 푸념한 적이 있는데 그는 "천성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할 때 이 음악이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냥 어렵게 느껴진다면 결국 좋아하게 될 미래를 그려보시길 바랍니다. -64쪽
음악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해온 공부와 내가 가는 길을 그대로 믿고 열심히 하고, 이 모든 경험을 계속 쌓으라고 했습니다. 오페라 속의 수많은 인간과 감정과 언어를 이해하려면 피아노 밖에서 최대한 많은 스토리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마스터 클래스가 끝나고 먼저 다가와 이메일 주소를 주며 "살면서 겪은 모든 경험이 너를 만들었고, 그 순간들이 너를 특별한 오페라 코치로 만들 것이다"라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90쪽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은 예쁜 물건들로 방을 어지럽힌 후 최소한만 남기고 단정하게 청소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좋은 글을 읽는 것은 잘 정리된 공간에 들어가는 것과 닮았습니다. 곤티티의 <28>은 깔끔한 글, 깨끗한 방처럼 맑은 곡입니다. -179쪽


이 문장이야말로 이 책과 완벽하게 어울린다. 완독한 독자라면 공감할 듯.


이 곡을 듣기 전까진 도가 이렇게 아름다운 음인 줄 몰랐어요. 그냥 도, 도, 도가 반복될 뿐인데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요.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예쁜 일인지. (...) 이제야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잘하는 일'과 '좋은 일'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어요. 잘하는 일은 나에게 좋았고 좋은 일은 우리에게 좋았어요. -205쪽


세상의 좋은 것들을 누리는 하루가 되시길. have a nic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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