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혼비, 황선우,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니.
원래 서간문을 좋아한다. 오죽하면 작년 한해간 서신교환 프로젝트를 가장한 취미활동(... 말려들었던 친구에게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을 벌였을 정도로. 이 「총총」 시리즈가 간행되는 문학동네 말고 다른 출판사에서도 왕복서간 시리즈를 낼 정도로 나름 출판계의 트렌디한 기획물인데, 덕분에 즐겁다. 특히 한참 머리 싸매고 읽어야 하는 논픽션 읽다가 휴식 삼아 읽기에 최고로 좋다.
김혼비 작가는 정말 유머러스한 글을 쓰고, 황선우 작가는 경력이 긴 편집자(출신) 답게 예리하고 선명한 문장을 쓴다. 두 작가가 각자 냈던 책들도 다 읽었는데 두 사람의 시너지가 얼마나 대단할지 기대가 되지 않을 리가 없다. 아니 근데 정말 저 제목 너무 잘 뽑은 거지... 차분하게 저 제목을 읊는 황선우(사실은 김하나 작가의 목소리도 같이 들렸다. 팟캐스트 여둘톡을 아시는 분이라면 무슨 의미인지 아시리라) 작가의 음성이 귓가에 자동 재생되어 버리는 바람에 책을 열면서 얼마나 웃었던지.
편지란 것이 극히 개인적인 이슈들로부터 문장을 뽑아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매체인지라 누가 썼건 간에 편지는 얕게는 한 사람의 됨됨이를 비추는 거울이자 그 사람의 내면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치부의 기록이 될 위험성마저 안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읽는 재미가 있다고나 할까. 세상에 남의 속내 들여다보는 것처럼 재미있는 게 어디 있다고. 부정하지 마시라. 세상에 관음증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물론 나는 사전적인 의미의 ㅂㅌㅅㅇ으로 쓰지 않았다. 감추려 드는 게 재미있는 법이다. 하지만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 심지어 지금 뭘 하는지도 모르는 타인에게 시차를 두고 할 수 있는 이야기란 결국 제 얘기밖에 없는 법이다. 하다못해 아침에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본, 막 문을 연 빵집에서 풍겨 오는 갓 구운 빵 냄새 이야기를 한다면 그 한 문장으로 나를 전혀 모르던 상대도 나라는 인간의 실루엣을 그릴 단서를 얻는 셈 아니겠는가.
팔딱팔딱 뛰는 활어 같은 이야깃거리엔, 자기도 모르게 나에 관한 정보를 무한 스포일링 할 도리밖에 없는 법이고. 물론 얼마 안 있어 용이 되어 승천하실 이무기 정도 된다면 모르겠지만, 평범한 인간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런 위험성을 안고도 제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려나.
여하간 편지글은 산뜻하게 읽히는 반면 종종 깊숙이 마음을 울리는 반전이 있는 장르이기에, 여간해서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도무지 나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문득문득 내보이는 삶의 보편성, 그 일상적인 순간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슬그머니 웃게 될 테니까.
서로를 웃긴다는 건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 중 하나일 거예요. -13쪽
앞으로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며 살아야 할지 막막했던 저는 그날 저녁 온라인으로 목탁을 덜컥 주문했어요. 무려 48년 전통의 목탁 장인이 살구나무로 만든 목탁이에요. 요즘도 특히 뉴스를 보고 난 후에 가장 자주 치지만 중요한 일을 시작하기 전 마음의 안정과 용기가 필요할 때도 가만히 치곤 합니다. -16쪽
가장 기억에 남는 오타는 "그 분야의 대가로 자리매김했다"를 "그 분야의 대갈로 자리매김했다"라고 쓴 것인데요. 공교롭게도 '대갈' '대가리'가 '대가'와 의미가 얼추 비슷한 '우두머리''톱top'을 뜻하기도 하는 바람에 오해한 에디터님이 '대갈'을 '머리'로 수정해서 다시 보내준 일도 있었습니다... -64쪽
인용했듯, 두 분의 작가께서는 언뜻 흘린 말을 이토록 충실하게 지키며 웃기고 때론 숙연해지는 글들을 안부에 섞어 주고받으며 한 시절을 보냈고 그 결과물은 한 권의 책이 되어 남았다. 세상에서 사람이 쓸 수 있는 글 중 가장 따뜻한 것이 편지글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예상독자층을 상정하고 쓴다 한들 구체적인 단 한 명의 독자가 기다리는 글을 쓸 때와는 결코 같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