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크레이머 外, 진짜 이야기를 쓰다
내러티브 저널리즘 narrative journalism. 내게는 생소한 단어였다.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전통적 저널리즘(플러스, 보도형식)은 취재에 서사를 결합하여 독자가 한층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저널리즘의 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형적인 레거시 미디어가 간결하고 빠르게 정보를 전하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다면 내러티브 저널리즘은 해당 사건을 마치 픽션처럼, 화자의 몸과 감정을 통해 현실감 있게 생생하게 체험토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언급했듯 픽션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서사적 특징을 갖는 까닭에, 기승전결에 따라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게 되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탁월한 공감능력자는 이러한 논픽션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경험을 수차례 할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하는 바이다)
여하간.
요즘 글쓰기 책이 인기 상종가를 치는 것은 글쓰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을 것 같은데 또 이렇게 진짜 본격적인 노하우를 전수하는 책은 뜻밖에 인기가 없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지금 언급하는 이 책도, 이게 이렇게 절판될 책이 아닌데 절판이라니 너무 아쉬운 것.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분들께는 강력하게 일독을 권한다. 중고는 많더라고요...?
그저 나의 생각일 뿐이지만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참맛은 독자의 시점을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데 있지 않나 한다. 레거시 미디어의 보도란 것은 독자를, 좋게 말해서 관망하도록 권유한다. 한마디로 내 일 아니니 내 알 바 아니지, 해도 그다지 크게 독자의 도덕적 양심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러티브 저널리즘은 다르다. 부감샷만 지켜보며 방관해도 괜찮았던 예전의 자리에서 독자를 사정없이 끌어내린다. 서술적 화자와 함께 현장에서 숨죽이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지켜봐야 한다. 함께 체험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그저 문자로 이루어진 글일 뿐이더라도 해당 현장을 다녀온 것과 유사한 종류의 정서적 체험과 충격을 선사한다.
높은 정서적 원자가를 갖는 이야기라면 맥락도, 등장인물 구성도 필요 없다. 정서적 원자가가 낮은 화자라면 내러티브 쓰기가 더욱 힘들다. 작가는 다른 여러 수단도 긁어모아야 하는데, 여기에는 기존의 뛰어난 작품도 포함된다. 내러티브 작품에서 이제껏 속도가 가장 느린 화제를 꼽으라면 돌덩이의 인생이 아닐까 한다. 존 맥피는 이에 대해 4권의 책을 썼다. 맥피가 어떻게 독자들을 옆에 붙들어뒀는지, 그 비결을 연습 문제 삼아 풀어보는 것도 좋을 터이다. -78쪽
좋은 이야기하기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숨은 비밀 같은 것은 없지만 나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착상은 있다. 느낌은 규칙보다 더 중요하다. 이야기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하나의 사건이나 단어와 이미지물, 또는 완벽한 구조의 올바른 조합에서 오는 게 아니다. 일단 어떤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이면 작가는 사건과 단어, 이미지, 물, 그리고 이들의 구조를 배열해 독자들이 무언가를 느끼게 만든다. -461쪽
나는 이 책은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니라 '일어났던 일'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글로써 타인의 마음을 움직여 어떤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호소력 있는 글은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드러낸 글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에서 스스로를 특정 인물로 설정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자아 전체를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자신을 여러 모습으로 분리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첫째 걸음은 자신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획득하는 것이다. 자신의 흠결이 드러날까 겁에 질려 있다면 사적인 수필을 쓰는 데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스스로를 천장에서 내려다보고, 사회적 맥락에서 어떻게 보일지 알고, 언제 매력적이고 언제 고집스럽거나 소심하거나 우스꽝스럽게 보이는지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에 대한 목록을 만들어 해당하는 자아를 독자에게 구체적이면서도 또렷한 인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유별난 점, 특이한 성격, 고질적인 얼굴, 경련,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게 만드는 반사회적인 성향에서 시작하라.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지극히 평균적인 사람으로 이해되는 것에 저항하라. 누가 평범한 사람에 대해 읽으려 하겠는가. 많은 초보 수필가는 독자에게 맞춰 호감을 얻고 멋있어 보이려 혼신의 힘을 다한다. -189쪽
근래 본 글이 있었는데, 세련된 문체도 없었고 교정교열 하나 필요 없는 완벽한 문장이 아니었음에도 읽은 사람들이 결코 지나칠 수 없게 하는 솔직하고 슬픈, 그래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임에도 정말 잘 살아오셨다고, 힘내시라고 응원하게 되는 글이었다. 정말 좋은 글이란 배워서 쓸 수 있는 게 아님을 여실히 깨달았달까. 그건 생을 쌓아가는 날들에 대한 깊고 곡진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그런 이들이야말로 타인의 삶에 대해 쓸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를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을 갖출 것. 그것이 논픽션을 쓰는 사람의 기본적인 윤리가 아닐까 싶다. 사회건 자연이건 현상이건, 거기엔 항상 사람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