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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Sep 02. 2024

당신에게도 그런 빛이 있었으리라

천선란, 아무튼, 디지몬

뭐라고 말해야 할까. 제목부터 깔깔거리게 만들었던 이 책을 내려놓을 때의 먹먹한 마음을 무어라고 설명해야 할까.


http://aladin.kr/p/mRuQR


표지를 넘기고 면지를 넘기면 독자를 기다리던 한 줄의 비장한 문장과 맞닥뜨린다.


이건 내가 디지몬과 영원히 이별하는 이야기다


글쎄 왜일까. 나는 여기서 심장이 덜컥하는 듯한 기분을 맛봤다. 왜? 영원히 이별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뭣땜에? 나이에 안 맞게 디지몬 같은 거나 좋아한다고 해서? 사람들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떠들라고 하세요, 괜찮아요. 그런 마음으로 어쩐지 조마조마하게 페이지를 넘기다 마침내 나는 왜 천선란 작가가 디지몬과 이별하겠다고 선언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말하건대 이 책은 결코 가볍게 읽고 넘길 수 있는 에세이는 아니다.


천선란 작가는 어쩌다 <디지몬 어드벤처>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는지, <디지몬 어드벤처>가 얼마나 훌륭한 SF의 조건을 갖추었는지를 몹시 진지하게 설파한다. 심지어 <매트릭스>보다 <디지몬 어드벤처>가 24일 먼저 가상 세계의 굉장함을 세상에 선보였다는 점을 진지하게 지적한다. 더불어 성인이 되면 당연히 졸업해야 할 특정 장르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세태에 대해 아쉬움을 표한다. 뭐, 예전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확실히 30대 이후부터는 나 뭐 좋아해! 라고 말하면 "......"하는 눈으로 사람을 흘깃거리는 시선은 여전히 존재하니까.


인생에 한 번쯤은 만화 속 캐릭터와 함께 항해해도, '동료가 되라'는 주인공의 말이 마치 차원 너머 나에게 하는 말인 듯 설레어도, 이 세계를 구해달라는 말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여도 될 텐데. -15쪽
'유치하다'. 사람들이 대체 어떤 대상에 이 말을 쓰는지 한참 고민한 시기가 있었다. '유치하다'는 단어는 감상을 너무나 단편적으로 설명하고 작품을 납작하게 눌러버린다. 열띤 토론을 준비 중이었던 나의 전의를 깡그리 소멸시키는 마법의 단어. 요즘은 많이들 쓰기 경계하는 '오글거린다'만큼 막강한 단어인데 인식하지 않아 문제 삼지도 않는, 더 무서운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16쪽


이건 정말 항상 마음 한구석에 구겨 넣고 틈날 때마다 고민하던 것이었어서,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반갑던지.

나 역시도 주변에서 '****드라마 (혹은 소설) 좀 유치해'라고 서슴없이 말할 때, 딴죽을 걸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왜 그렇게 평가하는지가 너무 궁금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 유치함으로 인해 어떤 주제가 강하게 부각되기도 한다는 걸 좀 알아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늘 있었다...


유치하네 오그라드네 하는 평가를 감수해야 하는 글이나 영상, 여하간 장르를 막론하고 어떤 효과를 위해서, 대중의 어떤 기대심리를 충족하기 위해서(네 돈 얘기죠) 일부러 단순 편편한 인물을 만들고 뻔한 클리셰를 차용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말을 한 번쯤 하고 싶었다... 그런 정서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다른 부분을 일부러 납작하게 만드는 서사와 연출을 일부러 한다는 것도(장르문학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사람과 대화하다 알게 된 것인데 이 자명한 사실이 그다지 상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 그러니까 그 뻔한 게 유치하게 느껴지면 해당 장르를 외면하면 되는 것이다... 아니면 대중문화의 질적 향상을 위한 계몽 운동을 하시든가요. 나한테 왜 그러는데?!

여하튼.


아무튼 그런 편견 어린 시선을 극복하고 세기의 명작으로 자리 잡은 작품들이 어디 한두겠냐마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피노키몬이 안쓰럽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피노키몬에게서 매번 꿈에 나와 나를 괴롭히던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일까. 할 수만 있다면, 피노키몬과 친구가 되어 끝장나게 놀아주고 싶다. 그럼 피노키몬에게도 다시 진화할 기회가 올 텐데. 내가 경험해 봐서 아는데. -41쪽
디지몬이 완전체로 진화했어도 자신의 사명을 끝내면 평소의 성장 단계로 돌아오는 설정을 특히 좋아한다. 디지몬의 세계를 이루는 건 데이터이고 진화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소모하는 일이기에, 항상 커진 상태로 있는 건 비효율적이다. 힘을 써야 할 때만 커진다. 정말 멋진 설정 아닌가! 도피처에서의 나는 여전히 작지만, 엄마 옆에서 나는 커진다. 이 역시도, 정말 멋진 일임을 깨닫는다. -90쪽


<디지몬 어드벤처>는 평범한 TV시리즈물이었지만, 세상의 질서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던 어떤 아이에게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였고 마음의 휴식처였다. 이해할 수 있는 친구들이 사는 세계였으며 그곳의 친구들이 씩씩하게 살아가던 모습은 힘겹게 어른이 되어가던 누군가에게 곧잘 의지가 되었다는 담담하게 슬픈 고백을 읽으며 몇 번씩 가슴이 아팠다.


그날 밤 잊고 있던 <디지몬 어드벤처>를 1화부터 다시 보았다. 그 세계가 여전히 그곳에 있음에, 모니터 너머에 나처럼 답답해하는 고래가 갇혀 있음에 어떤 위로를 느꼈다.


그럼, 조금만 더 믿어볼까. 나도 아직 디지털 세계로 갈 수 있다고. 내게도 선택받을 기회가 남아 있다고. 내게 주어진 문장*이 아직 뭔지 모르니까, 살다 보면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볼까...

십 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다시 한번 디지털 세계를 꿈꿨다. -53쪽


(*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해야 이 행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잠시 인용타임.


이 작품의 주역인 선택받은 아이들은 각 캐릭터마다 테마를 갖고 있는데, 저마다 가진 8개의 문장이 갖는 가치(좌측부터 용기, 우정, 사랑, 지식, 희망, 순수, 성실, 빛)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캐릭터들은 그 진리에 맞는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동시에 이 가치들은 약점이자 콤플렉스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가령 태일은 용기가 뛰어나지만 때론 만용을 부리며 무모한 일에 타인을 끌어들이고, 매튜는 브라더 콤플렉스로 우정을 의심한다. 또 소라는 어머니의 사랑을 강박으로 받아들이기도 했고, 한솔은 지식만으로 사물을 판단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이미나는 순수가 도를 넘어 응석에 가까운 수준이었고 정석도 성실함이 지나친 나머지 스스로도 고지식으로 받아들일 만큼 융통성이 부족했다.


각각의 캐릭터들은 자신의 장점이자 결핍이기도 한 이들 가치를 극복하는 과정을 겪으며 그 문장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해 나가며, 그 과정은 훌륭한 전개 덕에 어색함 없이 매우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출처_나무위키)


이 지점에 와서 나는 디지몬 어드벤처의 제작사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졌다. 이런 좋은 작품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우리는 천선란이라는 작가를 가질 수 있었다고. 삶이 커다란 구렁텅이로 그를 밀어 넣었을 때 켤 수 있었던 환한 성냥불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자신의 문장을 간직한 채 훌륭한 어른이 되어줘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의 종말과 타락을 조금이라도 막으려 노력하는 한 사람이 지금 여기 존재하는 데는 당신들의 역할이 분명히 있었다고.


+ 이쯤 해서 배리에이션 하나 만들어주고 싶다.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아시는 분은 다 아실 유명 밈이기도 하지만 뫄뫄 애니메이션의 마지막화의 주인공의 대사였죠…) 대신에 궁극의 선함을 유치함으로 매도하는 당신이 가엾어요, 정도로? 근데 그건 누가 뱉어야 간지가 날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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