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코 코세코, 마담들의 룸 셰어
대학 때 동아리 친구들이 몇 모여 있는 단톡방에서 종종 그런 이야기가 화제로 오른다. 나이를 더 먹고 아이들도 독립하면, 우리끼리 모여 살까? 하는.
나는 다 됐고 혼자 살고 싶어요- 주의자이긴 하지만, 이런 작품을 보다 보면 약간의 로망이 생기긴 한다. 어릴 적 마음이 통했던 친구들, 한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바로바로 티키타카가 되는 친구들과 인생 말년 정도는 함께 보내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아마도 50대 중후반 혹은 60대일 것으로 추측되는 (자녀들의 나이로 유추해 볼 때) 세 사람의 마담이 있다.
여전히 현역으로 에너제틱하게 일하는 사나에 씨, 이혼하고 딸과 당장 갈 곳이 없어 사나에 씨의 아파트에 잠시 머물러 들어왔다가 아예 눌러살게 된 시오리 씨,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함께 살자는 아들의 제의를 물리치고 이들에게 합류하는 하루코 씨. 정말 이렇게 살 수 있다면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고 보람찰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이게 너무 판타지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했다. 어릴 때는 또래들의 평균치에서 벗어나서 튀어 보일까 봐, 배척당할까 봐 두려워서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기를 겁냈었고, 조금 자라서는 어른들의 기준에 흡족하고 바람직한 10대의 모습을 갖고 싶어서 거기에 맞추어 발버둥 쳤더랬다. 또 조금 더 뒤에는, 쭈뼛거리면서 조금씩 이게 진짜 나인데 싶은 모습들을 들춰 보였다가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면 또 화들짝 놀라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닌 척하는 세월이 참 길었다.
그러고 어느새 지금에 이르렀는데.
이제 나는 뭐, 될 대로 돼라, 마음대로들 생각하라지 뭐. 이런 스탠스를 취하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약간 이 작품에서의 시오리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여하간 아무튼 이건 나이를 먹고 나서 뻔뻔해진 것인지, 아니면 이젠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는 것 자체가 번거로워서인지 아니면 이게 난데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라는 자존감이 너무 넘쳐나는 것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주변의 절친들조차 나의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그런 양극단의 본질(?!)을 가진 아수라 같은 존재가 되었나 보다(갑분자아성찰)... 어째 아련해지는 기분이다.
어쨌건 1권에서, 늘 쿨하고 시크한 이미지의 사나에 씨가 '얘들아, 이것 좀 봐줘. 엘레강스하고 큐트한 룸 웨어를 샀어'라고 말하자마자 시오리 씨가 '별일이네, 사나에의 취향은 아니잖아'라고 받은 순간 아니야 제발 그러지 마... 그 사람의 진짜 속내 같은 거, 아무리 절친이어도 다 알 수 없다고-를 외쳤던 건, 그게 내가 수차례 받았던 오해이기도 했기 때문이겠지.
거기에 대고 '죽기 전에 입어 보고 싶었어'라는 덤덤한 반응은, 정말이지 이 장년의 마담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말이었을 테고. 어쩐지 좀 코끝이 시큰해진다. 그런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