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노미야 아쓰토, 동경예대의 천재들
기인열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물론 TV를 거의 안 보다시피 하는 내가 직접 본 적은 없고, 그냥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는 정도. 내가 들어 알고 있었을 정도라면 굉장히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이 얘기를 왜 하느냐,
이 책 때문이다.
첫 소감은 「노다메 칸타빌레」는 지극히 현실적인 얘기였구나, 싶었달까. 여기서 왜 노다메 이야기가 나오느냐면, 「노다메 칸타빌레」를 다 읽었을 때의 기분은 재밌긴 한데 이렇게까지 유별난 사람들만 모아놓기도 힘들잖아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물론 그 생각은 작가의 다른 책, 「음주가무연구소」를 보면서 바사삭 깨졌다는 말을 덧붙여 두겠다. 그냥 작가가 범상치 않은 거였다. 이렇게까지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구나 싶어서 감동적이기까지 했달까. 근데 왜 두 분 다 니노미야 상인 걸까. 괜한 생각이겠지. 일본에 니노미야 씨가 어디 한둘이겠냐고...;;;
여하간 소시민적으로, 요네자와 호노부 식으로 말하자면 '에너지 절약주의자'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광적으로 낭비하며 사는 삶에 약간의 낭만과 동경까지 느낀다는 점을 일단 밝혀두겠다.
이게 다 무슨 호들갑스러운 소리인가 싶을 것이 분명하므로 간단한 소개부터.
이 책의 부제는 「이상하고 찬란한 예술학교의 나날」이라고 되어 있는데, 동경예술대에 재학 중인 아내를 둔 저자가 이 학교 학생들이 어딜 봐도 개념적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을 홀로 알기는 아깝다 생각하여 취재를 시작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이다.
"음악환경창조과는 '자기표현'이라는 시험과목이 있어."
(...)
"뭐든 좋으니 자신을 어필해야 해. 내 친구는 네 컷 만화를 호른으로 표현했어."
"어? 그게 무슨 말이야?"
"도화지에 네 컷 만화를 그려서 가져왔어. 그걸 한 장씩 넘기면서 대사 부분이 나올 때마다 호른으로 불어서 표현했대. 대사처럼 들리도록." -54쪽
... 도대체 뭐 하는 전공인 것일까, '음악환경창조과'는.
아오야기 씨는 2014년에 열린 '국제 휘파람 대회' 성인 남성 부문의 그랜드 챔피언이다. 명실공히 휘파람계의 세계 일인자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휘파람으로 예대에 들어온 남자'일 거라는 말을 듣고 있다.
"2차 시험의 '자기표현' 때 비토리오 몬티가 작곡한 <차르다시>를 휘파람으로 불었습니다. 그리고 휘파람을 다른 악기와 대등한 위치로 격상시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73쪽
나도 대학 다닐 때 누구나 경악할 만한 휘파람 실력의 소유자인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우리 동아리의 3년 위 선배였는데, 그 선배가 베토벤 교향곡 5번 1악장을 휘파람으로 불어 젖히는 걸 보고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건가 대경실색했던 기억이 있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더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이 참 진리인가 보다. 이러나저러나 대체 정말 무엇을 위한 학과인가!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용접해서 라면 노점 비슷한 가건물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가건물에다 '점 있습니다'라는 간판을 내걸고 거리에 나가요. 손님이 오면 제가 고민을 듣고, 많은 선반에 놓인 먹으로 그린 점을 하나 꺼내 '흠흠... 그렇군요, 당신의 그런 고민이라면 이곳이 좋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손님 얼굴에 점을 붙여 줘요." 구로카와 씨는 아주 진지한 표정이었다. -188쪽
예술의 쓸모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을 했던 적도, 시비를 걸기 위한 목적으로 던지는 질문을 받았던 기억도 났다.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대꾸해 줄 만한 노련미가 붙었(을 거라고 마음대로 착각하고 있)지만, 그런 말들을 들으며 쩔쩔맸던 시절은 정신적으로도 줏대가 없고 아는 것은 더더욱 없으나 이 척박한 땅을 어떻게든 박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이상한 오기가 발동했던 때였다. 나야, 시간을 붙들어서라도 책을 읽어야 했던 그땐 뭘 하다가(아 술 마셨지) 이제 와서 뒷북인지 모르겠구나. 여하간 저자의 끈질긴 인터뷰에 응했던 여러 학생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며 저자는 마침내 애매하게나마 결론을 낸다.
그렇지만 구로카와 씨, 우에무라 씨, 무라카미 씨의 말을 모두 연결해 보면, 어렴풋하지만 왠지 정리가 될 듯도 했다. 우에무라 씨가 말했듯이 어디에나 있는 존재를, 무라카미 씨가 말했듯이 감각을 확장해 알려고 노력하고, 구로카와 씨가 말했듯이 같이 공감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 그 소재와 수단은 별의별 것을 다 활용해도 좋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예술이란 인간이 인간과 서로 이해하기 위해 시도하는 따스한 활동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199쪽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뚜렷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어떤 감각들, 고유한 서정들, 그것을 다리 삼아 오갈 수 있는 마음을 위한 자리. 그런 것들을 위해 예술은 존재한다고 가만히 덧붙여 보고 싶다. 쓸모없는 것들의 진정한 쓸모를 옹호할 수 있는 1인으로 끝까지 남아야겠다는 혼자만의 다짐을 새삼 꾹꾹 여미게 했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