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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Aug 22. 2024

소원을 들어 드릴까요?

하지은, 보이드 씨의 기묘한 저택

(어쩌다 보니) 삼 남매를 키웠다. 각자의 독서 취향이 확고한 아이들이다. 본인들의 최애 작가가 두 명 이상씩 있기도 하다. 셋 중 가장 책을 싫어라 했던 둘째 아이가 한 2주 전쯤엔가, 새로운 최애 작가를 하나 만들었는데 바로 하지은 작가다. 나는 하지은 작가 특유의 신비롭고 환상적인 세계관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내가 그 작가를 좋아하는 바로 그 이유가 누군가에게는 극불호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려 한다.

서두가 길어지고 있는데... 어쨌든 결론만 말하자면 내가 추천했던 「녹슨달」https://brunch.co.kr/@brickmaker/174 은 둘째에게 대히트를 쳤다. 아이는 거의 광분해서 어떻게 이런 작가가 존재하냐, 문장만 갖고 이렇게 눈앞에 선명하게 그 세계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거냐 몇 번이고 묻고 또 물었다. 그게 궁금하면 그 작가 책 다 읽어보고 네가 직접 결론 내려 보라 했더니 책을 다 사내란다. 그러지 뭐. 그래서 김에 나도 읽었다.


http://aladin.kr/p/L4VBf


정체를 드러낸 적 없는 기묘한 집주인 보이드 씨의 저택... 이랄지 아파트랄지, 여하간 이 건물에는 나름의 비밀과 사연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산다. 복도에서, 계단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는 이웃들에게는 각자의 방 안,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열리는 그들만의 세계에서 감당하기 벅찬 비밀과, 불우함과, 비극과 슬픔이 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싶지 않고 털어놓을 수도 없었던 각자의 비밀을 베일에 싸인 의문의 청년에게 토로하는 순간, 그는 그들에게 묻는다. 들어주었으면 하는 소원이 있냐고.


대체로 장르소설에는 아주 옅은 실루엣으로나마 그 세계관이 무엇을 레퍼런스 삼고 있는지가 비쳐 보이기도 하는데, 하지은의 소설에서는 시간이나 공간적 배경을 그려나가며 읽기가 결코 쉽지 않다. 현대와 근대가 슬쩍씩 섞여 있기도 하고, 엉뚱하게도 초월적인 존재나 비현실적 가설이 개입하여 이야기를 끌어가는 경우도 있다. 대개의 경우엔 그러면 어딘가 삐걱거리거나 솔기가 튀어나온 옷처럼 어색한 부분이 눈에 띄게 마련이고. 그런데 그런 투박한 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게 하지은 세계관의 놀라운 점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현실에 발 디딘 채 조금씩 환각과도 같은 환상에 젖고 싶은 욕망이 있는 독자에게라면 이만한 책도 없을 것 같다.


덧. 혹시 이 책을 읽을 의향이 있는 분이라면, 「얼음나무 숲」, 「언제나 밤인 세계」를 함께 읽으시면 좋을 듯하다. 이 작품들에 각각 등장하는 어떤 존재들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 각자가 인간의 어떤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헤아리며 읽으면 더 재미있을 듯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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