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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갈까

김초엽, 아무튼, SF게임

by 담화

게임과 나의 인연의 역사를 이야기하라면 하루종일도 떠들 수 있다. 어머니와 나이 차이가 몹시 매우 많이 나는 외삼촌이 둘 있었던 덕분에(학부생 시절 우리 학교에 찾아왔던 막내삼촌을 본 동기들은 오빠인 줄 알았다고도 했다... -_-)나는 우리 세대의 그 어떤 어린이보다도 일찌감치 게임이라는 최신 미디어에 흠뻑 젖은 어린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시스템까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눈이 발갛게 되도록 번쩍거리는 연두빛 단색 모니터에 매달려 게임을 했던 건, 10세 언저리의 어린이만이 아니었다는 데서 얼마나 내가(+내 동생이) 게임 친환경적인 성장배경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 그때 나도 할래, 나도! 라는 애원을 가뿐히 무시해가며 끝이 나지 않는 플레이의 정점을 보여주었던 그분은 나의 모친이셨다(그리고 그 모친께서는 훗날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던 남동생이 10대였던 시절, 그 친구들에게 '게임 좀 이해하는 어머니'로 유명세를 떨치셨다).

그리하여 나는 게임홀릭 남동생과 게임에 관대한 어머니의 양육 방침 아래에서 시대를 풍미한 모든 게임기를 다 플레이해보는 풍성한 시기를 누린 덕에 게임과 게임 문화에 몹시 관대한 (하지만 여전히 꼰대인) 으른으로 진화하였던 것...


그래봤자 그 시절의 게임이란 대부분 어드벤처나 슈팅, 아케이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레전더리 FF시리즈에 발을 들였던 건 순전히 남동생 덕분이었다. 도대체 저게 뭐길래 하고 하고 또 해. 올클리어를 하고 나면 게임할 맛이 뚝 떨어졌던 내게 동생의 집착증은 꽤나 신선했고 궁금하면 해봐야 되는 성질머리를 가진 나는 곧 속절없이 RPG의 세계에 입문했다. 이거 뭐야. 뭔데 이렇게 재밌지? 그리고 이내 육성 시뮬레이션의 세계에 발을 들인 나는 현실계를 외면하고 살게 되었다.

그래서다. 지금 내가 게임을 쳐다도 안 보는 건, 그걸 한심하게 여겨서나 재미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한 번 발을 들이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도록 중독'당하는' 성향을 알기에 원천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새아가 시절, 「히스토리언」시리즈를 읽느라 책에서 눈도 떼지 못한 채 시부모님께 '저 밥 못 먹어요, 안 먹어도 돼요...'를 맹랑용맹하게 시전한 전적이 있다) 또 딴소리 엄청 했군. 애니웨이.


아, 그래서. 너무 좋아하는 작가가 너무 사랑하는 세계에 대해서 그 좋아함에 대해서 글을 쓰셨다는데 어떻게 안 읽어볼 수가 있죠. 그건 팬이라는 한음절짜리 말에 우겨넣기에는 넘쳐나도록 무겁고 부피도 큰 좋아함을 부둥켜안고 사는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란 말이에요. 게다가 한때 내가 좋아했던(지금도 좋아하지만 멀리하는) 걸 그분도 좋아하신대. 그럼 이성을 상실하기에 딱 좋은 거다. 책 첫페이지를 열 때까지 가슴은 두근두근, 살랑살랑 퍼덕이는 거고. 어떤 때는 여전히 이렇게나 좋아하는 게 많아서, 좋아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다가도 이래서야 나이먹은 값을 하겠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좋아하는 게 많은 삶 쪽이, 여러모로 좋지 않은가 싶다. 아무튼.


그리하여 내가 직전까지 쭉 늘어놓은 말처럼, 김초엽 작가 역시 어찌하여 그 세계와 연을 맺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하여 그와 게임이 함께 만들어온 역사와 과거의 영광을 가열차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분은 평소 작품에서도 읽을 수 있는 지극히 건조하고 담담한 문체로 서술하시어 작가님은 어쩌면 이렇게 좋아하는 걸 이야기하면서도 이토록 심상하게 말하실 수가 있을까 새삼 감탄스러워진다. 한두 문장을 적어도 이미 구두점에서부터 호들갑을 떨고 있는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


까만 화면에 읽을 수 없는 영어 글자들. 띵, 부팅음이 들리고 한참을 기다리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윈도우 98’의 로고가 뜬다. 화살표 모양의 마우스 커서는 모래시계로 변했다가 다시 화살표로 변하기를 여러 번. 칙칙한 회색 바탕이 창을 가득 채운 모니터 속의 세계. 나는 숨을 죽이고 눈앞에 펼쳐질 이상하고 낯선 세계를 기다린다. -7쪽


게임도 엄연히 서사예술의 한 장르로 볼 수 있기에 장르의 문법을 갖추고 있으며 매체적 특성 역시 지니고 있다. 하지만 게임에 지나치게 깊이 빠져들다 보면 관조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을 터다(팔이 안으로 굽는 느낌이겠지). 그렇다고 게임에 대해 논해 보겠다고, 바깥에서만 이 세계를 열심히 관찰한다고 해서 게임의 세계나 플레이어의 마음을 얼마나 들여다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글쎄올시다에 가깝다.


이 세계의 일원으로 거주하면서, 동시에 제3자적 시선으로 분석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지만 희소한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서 이 책이 의미가 있다. 플레이어로서 게임을 하며 한번쯤 마음에 담아보면 좋을 이슈들에 대해, 게임이라면 흰눈을 뜨고 보는 이들에게 게임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현재 어떤 일들을, 어떤 고민들을 담아내고 있는지까지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나는 게임의 이런 스토리텔링 방식이 현실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닮아 있어서 재미있다고 느낀다. 삶에는 많은 이야기 조각들이 있다. 원한다면 이것을 서사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굳이 그러지 않는다. 삶이 이야기가 되는 것은 조각들을 끼워 맞추려고 애쓸 때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그냥 살아간다. 도처에 있는 정보와 사건과 이야기를 스쳐 지나간다. 마찬가지로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도 이야기를 대충 흘려듣고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심지어 그런 플레이가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발견하려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야기를 목격할 수 있다.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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