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병 혹은 직업병 그리고 취미병

**세쯤 넘으면 그런 거 다 하나쯤 달고 살잖아요 그런 거죠

by 담화

어릴 때부터 유난히 바쁘게 움직이는 손을 좋아했다. 요즘은 몰라도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집안뿐만 아니라 온 동네를 총총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어른들의 손구경을 할 수 있었다. 집 앞 작은 슈퍼(그땐 구멍가게라고 했던 기억이. 근데 왜 하필 구멍가게일까 여전히 의문이다)에서 애들이 몇 푼 안 하는 주전부리를 고른답시고 흩어놓은 과자를 바지런히 다시 진열하는 주인아줌마의 손. 고무줄을 뛰다 말고 봉두난발이 된 여자아이들의 머리를 이 집 아이 저 집 아이 가릴 것 없이 빗질해서 다시 묶어주던 손. 내가 보기엔 거기가 거기 같은데 정확히 새 가지가 날 지점을 짚어 가지치기를 하던 거침없는 손.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매혹되었던 건 동네 할머니들의 손이었다. 실꾸리에서 빠져나온 한가닥의 실은 어떤 규칙을 따라 반복적으로 움직였고 그걸 한참 구경하고 있노라면 양손으로 혹은 한 손으로 든 기다란 바늘 사이로 신기하게도 폭닥한 것이 줄줄줄 내려오는 게 꼭 마술 같았다. 그렇게 홀린 듯이 꽃받침 같은 턱받침을 하고 어른들의 뜨개질을 구경하던 어린이가 도대체 언제 처음 뜨개질을 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학교에서, 가정가사 시간에 선생님이 잘하네, 배울 게 없겠다 하시며 웃어줬을 때 몹시 뿌듯했던 기억만 선연하다.


그러나 코바늘 crochet을 퍽 오래 하셨던 엄마는 딸이 같은 취미를 키우는 걸 마뜩잖아하셨다. 왜냐면 그로 인해 실로 심각한 시력 저하를 겪으셨던 바 같은 문제를 겪을까 봐 걱정이 되셨던 거겠지. 어쨌건 엄마의 걱정이 현실화되는 일은 없었는데 무엇보다도 그 딸은 취미가 백만 개쯤 되는 취미 부자였기 때문에 뜨개질만 하기엔 너무 바빴던 게 가장 큰 이유였던 까닭이다. 그러나 세월은 가고 취미 백만 개는 두어 개로 대폭 줄어듬과 동시에 깊이가 생겼는데 오히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했다.


본업으로 하는 일이 눈과 목+척추 건강에 상당히 부담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업으로 가끔 기술번역을 했었다(지금은 안 한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인데 아무튼 생략). + 아무튼 키보드와 마우스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작업을 꽤 많이 한다. 다시 말해 어깨와 목이 개판이다.

그런데 작년 가을부터 보그 니팅 과정을 이수하고 있었다(대략 설명하자면 이건 일본 수예협회에서 인증하는 과정이고, 스텝바이스텝으로 작품을 모두 완성해야만 하고, 심사를 거쳐야만 인증서가 나온다... 솔직히 굉장히 빡세다). 어깨가 파업 안 하는 게 이상한 지경이다. 그러니까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작금의 상태로 말하자면 나 이러다 진짜 죽을 거 같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재밌단 말이에요. 일도 재밌고 이것도 재밌고 저것도 재밌고. 어떤 것도 손에서 놓지를 못하겠는 나는 정말 욕심이 과한 건지, 주제파악을 못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왜 세상의 재밌는 일은 다 손과 어깨와 눈을 혹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나도 오토메일이 필요해...... 으아아앙


http://aladin.kr/p/rfXl

* 인생 최애작품 중 하나. 아니 하가렌을 모르신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달려가셔서 일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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