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풀이엽편 | 의외롭다

생각도 못해봤는데 그게 그랬단 말이지

by 담화

"얼마나 많았는데요?"

"집에 가서 저녁 먹고 나서 공부고 나발이고 다 놔두고 저녁 여덟 시부터 자는데도 다음날 일교시부터 고개가 휘꺼덩휘꺼덩 돌아갈 정도로 많았지."

"심하다!"

"심했지. 근데 그땐 그게 이상한 걸 몰랐어. 쌤이 게을러서 그런 줄 알았어. 근데 아니더라고. 뒤늦게 알아보니까 이건 수면의 질도, 건강 상태도 습관도 종합적으로 체크해봐야 할 만큼 큰 일이라고 하더라고. 그때까지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고 혼도 좀 많이 났고 여러 가지 처방도 받고 그랬어. 그러니까 쌤 말은, 이게 정상인가 한 번이라도 스스로 의구심이 들거들랑 혼자 고민하지 말고 주위에다 다 물어보란 말이야. 부모님한테만 묻지 말고, 쌤들한테도 물어보고. 응?"


열변을 토하는 민주가 스스로 민망해질 정도로 교실에는 나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뭐, 어차피 아이들이 모두 집중해서 제 말을 들어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민주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이 중에서 누군가는 제 얘기에 분명히 귀를 기울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은 여전히 놓지 않았다. 이런 얘기가 귓전에서 맴돌다 그냥 잊혀질 정도로 마음이 튼튼하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것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하는 이야기들이 그리 와닿지 않는다고 느끼는 게 아이들에겐 더 좋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음 건요?"

"쌤이 치료제라고 말한 것하고 그렇게 다르진 않아. 근데 치료제가 조금 시간을 두고 준비할 수 있는 것도 괜찮다면 해독제는 바로 시도할 수 있는 거지. 왜, 너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을 때 바로 해소할 수 있는 창구가 있으면 좀 낫잖아. 영인이는 벌써 그런 걸 만들어뒀나 보네, 대단하다."


옆자리 친구와 스마트폰 화면을 가리키며 키득대던 맨 뒷줄, 구석자리에 앉은 영인을 보며 민주는 한쪽 입꼬리를 슬쩍 들어 올렸다. 슬쩍 몸을 낮추고 저희끼리 키들거리면 안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뭔지. 무어라고 말대답을 할 것처럼 입술을 씰룩거리던 영인이 조용히 스마트폰을 내려놓자 민주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표정을 바꾸었다.


"생명줄 뭔지 알아요!"


누가 냅다 신명 나게 외쳤다. 민주가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기울이자 그 애가 까르륵 웃으며 어떤 번호를 말했다. 그게 뭔데, 하고 몇몇 아이들이 구시렁대니 아이가 어이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니네 한 번도 못 봤냐? 그거 무슨 사건 보도 터질 때마다 우울증이 어쩌구 생명이 뭐라 뭐라 하면서 맨날 나오는 번호잖아."

"그러니까 그게 쌤이 말한 라이프라인하고 무슨 상관인데? 니가 말하는 건 생명의 전화인가 그런 건데."

"야, 나중에 똑바로 봐봐. 그 전화번호 옆에 라이프라인이라고 써져 있거든?"

"라이프콜이겠지."

"아니거든?"


씨근대던 아이가 갑자기 의기양양하게 덧붙였다. "내기할래?"





[표제어_의외롭다/모티브_김남시 「본다는」]

BGM_Frank Mills : The Music Box Dan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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