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읽기에 관한 것

배수아, 작별들 순간들

by 담화
게르하르트 마이어를 읽었다. 어린 시절이란 다른 무엇보다 공간이라고 게르하르트 마이어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빛과 소리로 이루어진 공간. 그 공간 속에서 아주 어린 나이부터 막연한 상실감, 길을 잃고 내던져진 듯한 느낌을 알았던 아이. -139쪽


잠시 생각한다. 나는 어떤 장소에서, 어떤 공간에서 자라왔던가를. 무엇을 가장 먼저 배웠던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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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내 시선을 가장 먼저 빼앗아 가는 것은 다름 아닌 구체적인 공간을 강렬하게 환기하는 문장이라는 사실을. 놀랍게도 지금껏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으레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빽빽하게 붙어있는 플래그를 다시 한번 넘겨보거나 곱씹고 싶은 문장은 다시 필사해서 옮겨놓기도 하지만, 그 문장들 간의 공통적인 특성을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니. 이렇게나 덜 깨인(!) 인간이라니.


책을 손에 들기 전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지 한 번쯤 고민한다. 물론 요즘은 직관적인 제목을 단 책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독자가 기웃거릴 수 있는 문틈을 열어둔 제목을 단 책들은 남아 있고, 내게는 다행히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을 단 책들을 뽑아 선뜻 책장을 넘겨보고픈 마음이 남아 있기에 그런 우연한 만남들은 늘 기껍다. 「작별들 순간들」은 리듬이, 상상의 여백이 낱자 사이사이 열려 있는 제목이다. 매 순간 작별하고 있다든가(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작별과 만남이 교차하는 순간들이라든가, 떠나보낸 순간들이라든가... 무엇을 상상하건 다 품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제목이다.


배수아 작가는 이것은 장소에 관한 글이라기보다, 그 장소에 있었으므로 하여 쓸 수밖에 없었던 글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 글은 그 장소 - 베를린 인근의 오두막 - 가 없었다면 결코 태어나지 않았을 글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특정한 풍경, 냄새, 소리 같은 감각적 요소가 창작의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지 않을까. 그곳에서만 떠오르는 감정과 환기되는 기억도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세 살 네 살 다섯 살이 된 사람은 태어날 때 이 생을 위한 지참금처럼 지니고 온 이미지와 생각을 먹고살게 된다. 그리하여 예순세 살 예순네 살 예순다섯 살이 된 어느 토요일 강가를 산책하던 한 사람은, 이 강이 북아메리카의 강이라고 단정 짓고 흔들리는 수면의 영롱한 색채를 인디언의 색채인 양 받아들인다. -90쪽
5월의 정원은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꿈이다. 한여름의 정원은 어떤 격렬함의 구현이다. 그러나 가장 신비한 것은 겨울의 정원이라고 나는 말한다. 겨울의 정원을 책으로 비유한다면 ‘모든 이를 위한 것은 아닌 not for everyone‘ 그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43쪽


어떤 작가는 5월의 정원 같은 글을 쓰고, 또 어떤 작가는 한여름의 정원 같은 글을 쓸 것이다. 그러나 또 어떤 작가는 배수아의 말마따나 아무나 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겨울의 정원을 닮은 글을 쓰겠지.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읽기에 대하여,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네가 읽은 책에 대한 글이냐고.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는 책에 대해서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고. (...) 왜냐하면 나에게 독서란 한 권의 책과 나란히 일어나는 동시성의 또 다른 사건이지 책을 기억 속에 저장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이 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읽기에 대한 글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250쪽


읽는 삶을 지속하다 보면 기적이나 다름없는 경이를 계속 체험하게 되는데 그것은 어떻게든 내가 읽었고 읽고 있으며 읽을 책들끼리 손을 내민다는 점이다. 그것은 어떤 작가의 이름이기도 하고, 특정한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공간적 감수성이기도 하며 조연처럼 등장하는 인물이 소지하고 있는 작은 물건이기도 하다. 혹은 그들이 목청을 돋우며 다투는 어떤 사상이기도 하다. 그들이 살아 있는 우리의 삶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어떻게 연을 맺고 있는지가 궁금하다면 이 산문집을 읽으면 된다.


읽기는 그렇게 가상의 존재들이 저희들끼리 혹은 현실의 이론이나 관념과 연을 맺으며 쌓아가는 거대한 축조물을 때때로 관조하는 기쁨을 주기도 하며 나 자신이 결코 완성형일 수 없다는 사실을, 나인줄 알았던 것으로부터 다른 것이 되어가는 현재진행형의 과정임을 종종 깨우쳐 주는 죽비가 된다. 그러니까 어떻게 그만두냐고요, 이걸. 비록 의사쌤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도수치료실에 나를 밀어넣는데 성공하셨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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