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옛날, 너의 지금

대여점에 저녁시간을 모조리 저당 잡힌 시절 그런 때가 있었지

by 담화

나는 어릴 때 전혀 안 그랬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옛날이야기 듣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다. 정말이지 이해가 안 갔다. 그게 왜 알고 싶은 걸까.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나는 유명인의 가십에도, 정치인의 스캔들에도, 심지어 학교 안에서 아이들의 안테나가 뾰족하게 서 있는 '누가 누구를 좋아한대' 류의 소문에도 늘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에도 무심한 건 아니었다... 그저 타인의 사적인 일에 무관심할 뿐. 남들은 이런 나를 신기해했지만 나야말로 그들이 늘 신기했다. 대체 왜 그런 게 궁금한 거지... 여전히 궁금하다. 대관절 그런 게 왜 알고 싶을까. 이런 의문을 드러냈더니 절친 중 1인 왈, 그건 니가 남한테 관심이 없어서 그래. 보통은 알고 싶어 해. -_- ... 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나와 달리 남편은 어찌나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지 나한테 적응하기 전까지는 참 지겹게도 연예인들 가십을 물어날랐다. 아니 나 관심 없다고. 1도 관심 없어. 누가 누구랑 이혼을 했는지 바람이 났는지 투자를 잘못해서 홀랑 다 까먹었는지 관심 없어... 나의 관심 없음 병은 실로 심각해서 큰딸이 사춘기를 지나던 시절, 립미얼론! 을 외치며 방문을 걸어 잠그는 대신에 제발 딸한테 관심 좀 가져! 를 부르짖게까지 만들었으니... 문제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왠지 강조해야 할 것 같은데 반사회적인 인간은 아니다. 그저 사/생/활/에 관심이 없을 뿐. 여타의 이슈들은 부지런히 캐치업한다.


아무튼. 이 얘기를 왜 했느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기숙사 들어가느라 집 떠난 큰애는 젖혀두고 작은딸은 늘 엄마 아빠의 과거사에 관심이 많아서 처음엔 어떻게 만났느냐,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느냐(대체 부모의 연애사가 왜 궁금한 거지. 호기심 많은 애들도 보통 이런 건 관심 없어하던데), 오만가지를 다 물어보는데 늘 그렇듯이 나는 그런 건 해줄 말이 없어서 입을 꾹 닫고 있다가 유일하게 다른 질문 하나에 비교적 정성껏 대답을 해주었다. 그 질문인즉,


엄마는 우리 태어나기 전에도 그렇게 아빠를 못 본 척하고 맨날 혼자 놀았어? (세상에 혼자 노는 게 찐이지, 얼마나 재밌는데)


......

지나간 세월을 더듬어봤다. 아니, 아니다. 그땐 있지, 하고 기억을 되짚어 보니...


**년 전 그때는 우리 아파트 옆 상가에 책 대여점이 있었다. 그렇다. 대여점! 남편은 나만큼은 아니어도 직업적 편견을 둘러치고 보자면 상당한 '덕후 기질'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우리는 저녁을 먹고 치우자마자 자리를 걷어치우고 일어나 대여점으로 쪼르르 달려가기에 바빴던 것이었다... 첫아이가 생겨서 꼼짝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는 그날이 오기 직전까지, 장담컨대 그 대여점의 최우수고객은 우리였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때 봤던 작품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한때 나우** 환동 게시판에서 자주 봤던 이름을 책등에서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은 또 어떻고.


남편과 양손 가득 검정 비닐을 채워 들고 재잘재잘 떠들며 집에 와서는 소파에다 책을 잔뜩 부려 놓고 귤도 까먹고 맥주도 까고 하여간 온갖 잡동사니를 주워 먹으며 밤새 만화책을 보고 어디의 누가 여기서 이렇게 하면 안 됐는데 아니 이 작가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걸 우려먹을 심산이지(하지만 나는 끝까지 달리겠지) 이 소재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이런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하면서 목에 핏대를 세웠다가 다음 권은 내가 먼저 보니 니가 먼저 보니 투닥거렸던 일이며, 결국 그 가게가 문을 닫고 난 뒤에는 신나게 단행본을 사모았다가 결국 피눈물을 흘리며 처분해야만 했던 일들.

그런 지나간 이야기들을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해주었더니 그 애가 흐린 시선을 한 채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콩 심은 데 콩 나는 거 맞는구나, 엄마.


근데 그거 왜 처분했어. 나 보고 싶은데. 엄마가 안 버리고 잘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잖아.


http://aladin.kr/p/zzRY8


http://aladin.kr/p/9F810


http://aladin.kr/p/nPUBs


내가 알았겠니, 그땐 세상에 있지도 않은 애가 어느 날 뚝 떨어져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쑥 커서 내 인생의 한때를 함께 했던 마일스톤 같은 작품들을 찾아서 읽는 날이 올 줄 알았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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