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네스, 몬스터 콜스
안녕, 코너 오말리 소년. 요즘은 지내기가 좀 어떤가요. 지낼만한가요? 할머니와는 여전히 종종 다투겠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겠죠.
아주 오래전에, 온라인상으로 알고 지냈던 한 지인이 코너의 이야기로 만든 영화에 대해서 쓴 적이 있어요. 어떤 내용인지는 많이 잊어버렸지만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다짐을 굳힐 정도로 강렬한 글이었어요. 그런데 오래 지나지 않아 영화의 바탕이 된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죠. 그럼 당연히 원작을 봐야 한다는 주의거든요, 나는. 그래서 「몬스터 콜스」를 대뜸 구입했어요. 그리고 거의 십여 년 간을 그렇게 책장에 넣어두고 펼쳐보진 않았어요. 그런 말 혹시 알아요? 어떤 책과 만나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든가 하는 그런 말이요. 절반은 믿고 절반은 믿지 않는데, 글쎄 어떨까요. 잘 모르겠어요. 이러나저러나 최근 들어 눈물이 많이 마른 편인데도 불구하고 참 많이 울었네요. 상실이란 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어른에게도 숨이 껄떡껄떡 넘어갈 만큼 참 통과하기 힘든 벽이거든요. 하지만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벽.
인간은 원래 다면적인 존재잖아요. 도저히 양립불가해보이는 모순된 감정을 동시에 끌어안고 살 수 있고, 그런 모습을 번갈아 드러낼 수 있는 게 인간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일관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충동이랄까 원칙주의 같은 것이 없지 않아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외면하고 싶어지는 한쪽을 마음 한구석에 유폐하곤 하죠. 늦든 이르든 그런 마음 또한 자신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이 아이에겐 너무 일찍 찾아왔구나, 깨달았을 때의 참담한 기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어요.
암투병 중인 엄마가 기존의 치료법에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자꾸자꾸 쇠약해 가는 것을 보게 된다면 어떤 아이라도 본능적으로 알아챌 거예요. 엄마가 죽어가는구나. 엄마가 오래 살지 못하겠구나. 아빠는 새 가족을 이루어 떠났으니 이제 세상엔 할머니와 나 단둘이 남게 되겠구나. 외면하고 싶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들이 팔짱을 끼고 엄격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어른들처럼 줄지어 서 있는 기분이었을 거예요. 알 것 같아요. 어쩌면 '나는 네 기분 알 것 같다'는 그 표현조차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런 마음을 이미 겪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엔 제법 많다는 사실을 한 번쯤 말해주고 싶어요.
죽어가는 엄마가 그래도 '나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여가며 이어가는 위태로운 하루 속에서, 12시 7분이라는 특정한 시각이 되면 주목(나무)처럼 생긴 기이한 몬스터가 나타나 당신을 부릅니다. '이야기를 해 주러 왔다'라고 하면서요. 이야기 따위가 어떻게 악몽이 될 수 있냐고 비아냥거리는 당신에게 몬스터는 이렇게 말하죠.
이야기는 세상 무엇보다도 사나운 것이다. 이야기는 쫓아오고 물고 붙잡는다. -54쪽
그리고 불길한 예언을 하나 하죠.
네가 네 번째 이야기를 할 거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 될 것이다. -54쪽
몬스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나같이 선도 악도 불분명하게 혼재되어 있는 답답한 이야기에 다름 아니었어요. 그래서 뭘 어쩌라고,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데, 하고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해요. 알쏭달쏭하고 제대로 결말도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마지막엔 나더라 이야기를 하게 될 거라는 괴상망측한 소리나 지껄이는 흉하게 생긴 몬스터는 대체 왜 당신을 계속해서 찾아왔을까요.
하지만 이야기의 말미에 이르러 우리는 알게 됩니다. 당신은 정말로 속에 묻어두었던 응어리를 토해내야만 했다고, 그래야 솔직하고 진정한 이별의 순간을 맞을 수 있다는 생의 아픈 진리를요. 아직 어린 코너에게는 그걸 가르쳐 줄 누군가가 당연히 필요했을 거예요. 몬스터든, 뭐든.
네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내가 너 대신 해야 한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내가 대신 이야기를 하는 게 너한테 좋지 않을 것이다. -231쪽
마음이 절체절명을 맞은 순간이 아니었다면 결코 진심을 토해낼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지 않은가요? 어차피 닥쳐올 일은 닥치게 되어 있고, 그 순간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차마 말하지 못했던 진심을 말하느냐 하지 않느냐일 뿐일 텐데요. 하지만 언제나, 우리를 아프게 할지언정 가장 온전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진실이니까요. 모른 척한다고 해서 도망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러면 마지막에 제일 상처받는 것 역시 솔직하지 못했던 우리 자신일 테니까요. 덮은 책 위에 꽃 한 송이를 높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러 가장 큰 용기를 보여준 코너, 오늘도 당신의 이야기로부터 용기를 얻는 한 사람이 있기를. 잘 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