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위한 싸움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by 담화

좋은 꿈을 꾸고 계실 산티아고 할아버지(도대체 뭐라고 불러드리는 게 맞을지를 오래 고민했어요), 안녕하실까요. 아직 사자 꿈을 꾸고 계시려나요.


와아, 이 짧은 책을 다시 읽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헤밍웨이는 마초잖아, 그래서 싫어. 이런 마음을 언제 새겼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습니다. 달리 말해 제가 헤밍웨이를 읽었던 건 제법...이라는 부사도 어울리지 않을 만큼 아주 옛일이었던 거예요. 이토록 자신 있게(시건방지게) 단정적으로 말한 치기를 봐서는 아마도 10대 후반 내지는 20대 초반이 아니었을까 짐작해요. 헤밍웨이가 진짜 마초냐 아니냐는 사실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까 굳이 더 따지고 들지는 않기로 해요.


노인까지는 아니지만, 아무튼 처음 「노인과 바다」를 읽었던 때에 비하면 훨씬 노인의 나이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연령대에 이르렀으니 이 소설이 절대 예전과 같이 읽히지 않으리라는 것은 대강 짐작하고 있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니 이건 놀라움 정도가 아니라 아연실색의 수준이었달까요. 왜 오래 전의 저는 할아버지를 허세만 가득한 노인네,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대체 왜일까요?


지금의 제가 다시 읽은 바로 이것은 저항과 투쟁의 이야기에 다름 아니었으니까요. 늙고 쇠약해 가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이야기로 읽는다면 이건 할아버지에 대한 인격적인 모독이 되는 건데, 그땐 그걸 몰랐네요. 물론 그렇게 읽을 수도 있긴 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청새치와의 길고 지루한, 그리고 치명적인 사투가 벌어지는 내내 이것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녀석의 선택은 그 어떤 올가미나 덫과 배신행위도 미치지 못하는 깊고 어두운 물속에 머물기로 한 것이었어. 나의 선택은 모든 사람에게서 벗어난 곳으로 가서 녀석을 찾기로 한 것이었고.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서 벗어나서, 이제 우리는 하나로 묶여 있어. 어제 정오부터 계속, 그리고 우리 중 어느 한쪽을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어. -55쪽


"고기야." 노인이 말했다. "나는 너를 정말이지 사랑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오늘이 가기 전에 너를 죽이고야 말 테다." -59쪽


기나긴 힘겨루기의 상대를 향해 던졌던 선언은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니까 이건 사투를 벌였던 상대에 대해 존경을 표하는 명예로운 기사도의 태도까지 엿보이는 선포인 셈이죠. 그리고 산티아고라는 사람이 진정으로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를 다시 한번 규정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자기 다짐을 넘어선 맹세와 같은 말이 아닌가요. 하지만 거대한 청새치와의 싸움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을 테죠.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싸움의 끝에 이르러 이렇게 담백하게 말할 수 있음은 한 점의 후회도 없이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일 테니까요.


고기야, 네가 나를 죽일 셈이로구나,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네게는 그럴 권리가 있지. 나는 너보다 더 거대하고 아름답고 침착하고 고귀한 존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나의 형제여. 어서 와서 나를 죽여보려무나. 이제는 누가 누구를 죽이든 아무래도 좋으니. -101쪽


다시 만난 「노인과 바다」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청새치나 상어와의 싸움이 아니었어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육체의 쇠락을 거부하고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감당도 못할 일을 벌인 노인이 아니었어요, 할아버지는. 그보다는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하며 명확한 한계를 인지하고 현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죠.

항상 이길 거라고 믿기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의미와 삶의 당위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었다고요. 변화해 가는 삶의 조건 안에서도 끝까지 치열하게 자신을 증명하려 했던 사람.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은 말했다.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어." -112쪽


그런 사람이었으니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거겠죠. 어쩌면 자신을 증명하는 일에서 패배해서는 안 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고마워요, 산티아고 할아버지. 그 모든 일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사자 꿈을 꾸고 있는 할아버지, 꿈속의 사자들은 여전히 야성적일 거예요. 장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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