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상드, 사랑의 요정 파데트
Bonjour, Monsieur Landry Barbeau. Comment allez-vous ces jours-ci?
아, 어쩜 좋아. 이걸 써 놓고 따라 읽어보다가 혼자 미친 사람처럼 웃고 말았어요. 프랑스어를 대강 읽을 줄은 아는데 정말이지 이 발음 체계는 적응이 안 되어서. 아무튼, (나폴레옹 제정 이전의 평화로운 농촌에서 살고 있을 '인물 좋고, 성격 좋고, 능력 있고 배려심도 좀 있는 것 같은(에다가 성격적 결함 약간 추가)' 남자주인공의 클리셰를 다 가진 랑드리, 내가 랑드리를 몇 살 때 처음 봤게요?
무려 아홉 살이었답니다. 믿어져요? 네? 쓰면서도 나도 못 믿겠는데. 아홉 살이 이렇게 고색창연한 문체의 소설을 읽었을 리는 없고(사실은 없어서죠. 있었으면 읽었을 걸요), 어디서 봤느냐. 이실직고하자면 미술학원에서 봤어요. 제가 다녔던 미술학원에는 당시에 유행하던 만화 월간지가 있었거든요. 학원에 그림 그리러 간 애가 그런 걸 어떻게 봤냐면 사연이 있어요. 당시에 학원 선생님이 특별히 돌봐주기를 부탁한 다섯 살짜리 아이가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홉 살 어린애한테 다섯 살의 돌봄을 맡기다니 이 무슨 부도덕한 무책임함인가 화가 좀 나긴 하는데 지금 그 얘긴 넘어가고, 아무튼 돌봐주게 된 다섯 살 꼬맹이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이 없으니 쌓여있는 만화 잡지를 뒤적거렸단 말이죠.
온통 코믹한 그림체의 만화들이 가득한 페이지를 펄럭펄럭 넘기다가, 결이 다른 그림체를 발견했어요. 얼핏 봤는데 내용이 재밌더란 말이에요. 하기 싫어 죽겠는데 약속은 지켜야겠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귀뚜라미라고 놀려대는 여자아이와 어울려줘야 하게 생긴 소년 랑드리를 거기서 처음 봤죠.
와, 이름도 엄청 있어 보여. 아홉 살짜리는 그렇게 생각했더랬죠. 근데 뭐 여러 가지 사정상 결국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진 못했어요. 하지만 그거 알아요? 어린 여자애들은 그런 얘기 되게 좋아해요(나만 좋아했나). 도대체 무슨 수로 봤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이후에 그저 「La Petite Fadette 소녀 파데트」라는 원제를 가진 이 전원소설이 대체 무슨 연유로 「사랑의 요정」이라는 어마무시한 제목을 가지게 됐는지 모르... 지는 않고, 대충 짐작 가긴 합니다만 아무튼 이 제목이 이 작품의 가치를 많이 격하시킨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은 여러 번 했었어요.
어릴 때는 랑드리와 프랑수아즈(파데트의 진짜 이름을 이렇게라도 불러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단 말이죠)의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었던 것 같은데 이젠 그건 됐고, 약간 이런 감수성의 소유자가 된 나 자신이 안타깝긴 한데 아니 진짜 그보다도요, 랑드리의 쌍둥이 형 이제 보니 좀 무서운 데가 있어요.
집착도 이런 집착이 있다니 너무한 거 아니에요? 쌍둥이 동생에게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요. 상드 여사님은 무슨 생각이셨던 걸까요. 실비네의 존재는 이 이야기에서 어떤 것이었던 걸까요... 저는 여전히 모르겠어요. 쌍둥이는 떨어지면 병난대,라는 얘기를 어렸을 때 꽤 여러 번 들은 것 같은데 그게 이 책에서 나온 얘기였다니 좀 무섭네요.
실비네는 동생을 보러 간다는 생각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빨리 출발하고 싶어서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랑드리가 마중 나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동생이 달려오는 모습을 계속 상상했다. 그러나 랑드리는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33쪽
그래서 실비네는 그전에는 몰랐던 어떤 슬픔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 그것은 자기 혼자서 랑드리를 사랑하고 있을 뿐, 랑드리는 그다지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전부터 계속 그랬는데 자신이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랑드리가 다른 곳에서 더 뜻이 잘 맞고 더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얼마 전부터 자신에 대한 마음이 식어 버린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40쪽
(옮겨 쓰면서도 깊은 한숨)
잘했어요... 한 사람이라도 이성적이었다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주변에 쌍둥이가 몇 있긴 한데 이건 진짜 일반적이지 않아요. 절대로 절대로 아니에요. 그런데 실비네는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왜 그러는 걸까. 모르겠다, 진짜... 를 반복해서 쓰고 있으려니 불현듯 그런 생각이 떠오르긴 해요.
병약 미소년 실비네는 어쩌면 랑드리를 또 다른 자신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자기 정체성을 쌍둥이 반쪽에게 투사하고 있었던 거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면도 있거든요. 건강한 정신 상태라고는 못 하겠지만. 각자가 개별적이고 독립된 인격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한 쪽이 실비네이고, 건강하게 자립한 쪽이 랑드리일 테죠. 랑드리의 세계가 점점 넓어지는 것을 보며 불안해하는 건 문제가 아주 많다고요. 세상의 어느 누가 동성이건 이성이건 혈육에게 그렇게 강박적으로 집착한단 말이에요... -_-...
실비네가 그렇게 쭉 자신의 정체성을 랑드리와 공유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랑드리가 파데트를 사랑해서, 완전히 자기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느낀 실비네가 심각하게 앓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예요. 성장통도 아니고 이건 뭐랄까, 자아에 균열이 난 지경이니 이 사달을 어찌해......
"가족들이 아무리 현명하고 필요한 결정을 해도 죽을 생각이라고 위협하면 다 져주니까 당신은 그게 좋은 거예요. 사실 말 한마디에 자기 주위의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는 건 아주 편리하고 기분 좋은 일이겠죠. 이런 식으로 당신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거죠." -220쪽
파데트가 이런 독설을 퍼붓고 간 건 몰랐죠? 가끔은 무자비하게 현실을 직시하게 해 주는 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일 때가 있는데 그 시절이라고 별다를 것도 없었나 봐요. 웃을 일이 아닌데 웃겨요.
하지만 이후로 일어난 일들이 21세기 독자의 마음으로는 심정적으로 깊게 공감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아니, 그 이전에도 그렇긴 하고. 하지만 이야기란 건 결국 족쇄처럼 그 시대와 환경의 맥락을 반영할 수밖에 없으니 그 정도는 흐린 눈 하고 넘어가야겠죠.
분명히 이런 이야기였다,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이야기를 이렇게 다시 읽었을 때 당시엔 전혀 읽어내지 못했던 또 다른 이야기를 찾을 때 소름이 쭉 돋을 정도로 짜릿한 기분이 들거든요. 이래서 다시 읽는 재미를 못 버리나 봐요. 어쩌면 지금의 나도 못 읽어낸 또 다른 맥락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건 또 언제 찾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는 게 조금 아쉽긴 한데, 또 다른 누군가가 찾아내 준다면 그건 그것대로 기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랑드리, 잊혀지지 마세요. 정말이지 유치 찬란하게 굴던 남자아이가 사연 많은 말괄량이 왈가닥에게 홀딱 빠져들었던 당신의 흑역사를 또 후대의 누군가는 흥미진진하게 읽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죠? 괜찮아요, 그 나이 때는 원래 다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