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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Nov 29. 2023

심해의 지성체의 눈동자에 건배(...)

셸비 반 펠트,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1. 나는 문어를 좋아했다. 이제는 좋아하지 못할 것 같다.

2. 나는 문어를 좋아했다.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저 문장들은 모두 참이다. 그저 맥락이 다를 뿐이다.

1의 문어는 식재료로써의 문어였다. 과거형으로 쓰는 이유는, 이젠 정말 문어를 먹지 못할 것 같아서다. 

2의 문어는 생물로서의 문어다. 대체 왜? 냐고 묻는다면 딱히 이유를 댈 수는 없는데, 그냥 그런 것이 있다. 이유 모를 막연한 친근감 같은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 유명한 「나의 문어 선생님」에 힘입은 바는 아니다. 그보다는, 사이 몽고메리의 「문어의 영혼」 덕이 크다. 아무튼 그 다큐멘터리까지 보고 나면, 나는 절대로 문어를 먹지 못하게 될 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섰기에 나는 극렬히 넷플릭스의 추천을 무시해 가며 문어를 센세로 모시는 일을 거부해 왔다. 미안, 하지만 나는 너를 먹고 싶... 왜냐하면 해산물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지만, 두족류는 엄청나게 좋아하고, 게다가 너는 맛있거든. 

그런데 왜 하필 너는 그토록 온화하고 똑똑하며 상냥한 생명체이기까지 해서 나의 양심을 이렇게나 아프게 찌르는 것일까. 


하지만 감히 장담하건대 인간사 어찌 될지 우리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법이고, 우리 집 바로 옆에는 도서관이 있을 뿐이며, 날이면 날마다 신간 구경을 가는 나란 종자가 세상에 존재할 뿐이고. 그리고 그날따라 문어가 주요 화자 중의 하나로 등장하는 소설이 눈에 띄었을 뿐이고. 

인생은 그런 것이다. 문어 덕통사고를 당한 것은 아니지만, 여하간 문어는 이제 식재료가 아니라 친구 삼을 수 있는 종족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러니까 개나 고양이를 먹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달까.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 저자 셸비 반 펠트 | 출판 미디어창비 | 발매 2023.03.29.


마셀러스는 워싱턴 주의 작은 마을에 있는 수족관의 식구다. 무려 거대태평양문어라 불리는 종인데, 이름값이 아깝지 않게 온갖 미식을 즐긴다. 그것도 남몰래, 수조를 탈출해서 밤마실 겸 특별 야식을 즐기러 나와서. 마셀러스는 자신에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도 알고, 수족관에서 생을 다하게 생긴 자신의 삶을 그런대로 즐길 줄도 안다. 딱히 비극의 주인공처럼 굴지도 않고, 그렇다고 시니컬하지도 않다(언젠가 나도 노인이 될 텐데, 마셀러스처럼 나이가 들면 굉장히 이상적일 것 같다. 관조적이면서도 품격이 있고, 그렇다고 자기의 삶을 서사적 영웅담으로 과장하지도 않으며(우리는 이 덫에 가장 걸리기 쉽다), 세상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살아온 궤적을 뾰족이 갈아 도구로 사용하지도 않는다. 이 얼마나 고매한 품성인가. 어쩐지 문어 예찬론으로 흐르는 것 같아 이쯤에서 줄이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한 마디로 몹시 호감 가는 지혜로운 노인을 닮은 마셀러스는 어느 날 밤 또 몰래 수조를 빠져나왔다가 목숨이 간당간당하는 큰 위기를 맞지만, 다행히도 청소부 할머니 토바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한다. 동화적이기는 해도, 마셀러스와 토바는 마음이 맞는 친구가 된다. 마셀러스는 인간이 가장 못하는 일을 잘한다. 바로 나 자신을 아는 일 말이다.  그놈의 메타인지. 한번 더 넘어가자.

가히 초능력에 가까운 메타인지적 능력과 자기 객관화 덕분에 마셀러스는 자신이 친구로 여기는 청소부 토바를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할 줄 안다. 이쯤 되면 수퍼내추럴파워업 인텔리 문어다. 부럽지 않을 수가! (그리고 나보다 지적인 생명체를 먹이로 삼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그러니 마셀러스는 토바를 위하여 어쩌면 자신의 목숨이 간당간당해질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의 고달팠던 삶의 황혼기에 받을 수 있을, 가장 큰 기쁨을 선물로 주기 위하여 다시 한번 모험을 감행한다. 실로 감동적인 우정을 위하여, 이 무슨 삼류스러운 캐치프레이즈인가 싶은데 정말이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또래 친구(이것 역시 문어와 노인의 우정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단서 중의 하나인데, 만약 토바가 노인이 아니라 한창 팔팔한 20, 혹은 40대만 되었어도 과연 마셀러스의 밤나들이를 묵인해 주었을까)를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문어 마셀러스는 그 보답으로 토바에게서 자신이 결코 기대할 수 없었던 축복에 가까운 선물을 받는다. 


세월이 지나도 이들의 불만은 달라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이가 다니는 대학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애석하다는 것이었고, 그 다음에는 일요일 오후에 전화 통화만 하다니 너무하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손주와 증손주 이야기다. 이들은 가슴에 엄마라는 이름을 크고 야단스럽게 써 붙였지만 토바는 그 이름을 명치 저 깊숙한 곳에 오래된 총알처럼 묻고 살았다. 아무도 모르게. -p.35
최악의 의사소통 능력, 그것이 인간이란 종의 특징인 듯하다. 다른 종이라고 훨씬 나은 건 아니지만, 청어조차 자신이 속한 무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알며 그에 따라 헤엄쳐 나간다. 그런데 왜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에게 속 시원히 말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수백만 개의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걸까? -p.80
대체로 나는 구멍을 좋아한다. 내 수조 위에 있는 구멍이 내게 자유를 준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에 생긴 구멍은 싫다. 심장이 세 개인 나와 달리 그녀의 심장은 하나뿐이다.
토바의 심장.
그 구멍이 메워지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p.368


안 되는 개그를 한번 더 치자면, 이것으로 당신을 문어를 좋아했어도 먹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 3종세트를 만든 기분이다. 이미 언급했지만, 한번 더 강조하자면 구성물은 다음과 같다. 「문어의 영혼」,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그리고 바로 이 책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아니요, 문어 드셔도 됩니다. 말했듯 저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젠 어쩐지 '...' 하다, 이것뿐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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