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트레버, 조율사의 아내들
안녕하세요, 드롬굴드 부인, 벨.
열 번째, 통산 마흔 번째의 수신인을 결정할 때 저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단편소설이어서? 그건 아니에요. 왜냐면 이전에도 단편소설의 등장인물에게 편지한 적이 몇 번 있거든요. 딱히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를 몰라서, 그것도 딱 들어맞는 이유는 아니에요. 그것보다는 뭐랄까, 말을 건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당신이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을 속내를 말할 수밖에 없게 되니까요. 아무리 픽션의 인물이라고 해도, 어쩌면 누구나 당연히 품고 살 질투라는 감정으로 친친 둘러싸인 당신의 마음에 대해 이렇게 드러내놓고 이야기해도 되는 것일까, 그런 고민이 들었달까요. 하지만 결국 이렇게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은 것을 용서하시기 바라요.
이야기의 첫 장을 펼쳤을 때 당신은 막 피아노 조율사 오언 프랜시스 드롬굴드 씨의 두 번째 아내가 된 참이었습니다. 그의 죽은 아내는 당신의 오래전 경쟁자이기도 한 여자였죠. 게다가 당신은 그녀, 바이얼릿보다 더 아름답고, 나이도 무려 다섯 살이나 더 어리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던 만큼 조율사가 그녀를 선택했을 때 퍽 괴로웠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럼에도 피아노 조율사는 바이얼릿을 더 좋아했다. 아니, 언젠가 장차 자기 집을 갖게 될 바이얼릿의 미래를 더 좋아한 거라고 그녀는 닭장에 대고 신랄하게 혼잣말을 했다. 지금 있는 몇 푼 안 되는 돈을, 눈먼 남자로서 생활이 조금 편해지는 쪽을 더 좋아한 거라고.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8쪽
이렇게 스스로 위안한 것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닙니다. 자신이 있었던 스스로의 외모가 아무런 강점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 조율사가 안고 살아야 했던 실명이라는 장애가 당신에게도 벌이 된 것처럼 느꼈다는 것도요. 자신의 아름다움에 장막이 드리워졌으니까요.
당신이 끝끝내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것은 단순히 오기 때문만은 아니었고, 그저 상황과 여건이 맞지 않았을 따름이었죠. 하지만 결국 운명은 돌고 돌아 당신을 다시 상처한 조율사에게로 데려다 놓습니다. 그러나 결혼이 일상이 되었을 때 당신은 비로소 자신이 어떤 곳에 걸어 들어왔는지를 실감합니다. 그곳은 죽은 바이얼릿과 눈이 보이지 않는 조율사가 축조해 놓은 그들의 세계였죠. 바이얼릿은 이미 죽고 없음에도, 당신은 순간순간 바이얼릿의 존재를 실감합니다.
바이얼릿이 쓰던 도마에, 또 칼에 비치는 빛을 보며 스튜에 쓸 고기를 썰 때 그녀는 뒤쫓는 사람이 된 느낌을 받았다. 당근을 깍둑썰기할 때는 바이얼릿은 얇게 썰었기를 바랐다. -17쪽
아주 오랫동안 남편의 팔을 잡아주었던 여자, 피아노를 살살 달래 되살아나게 하는 남편을 여러 집으로 방으로 안내한 여자가 여전히 자기 존재를 주장하고 있었다. 성가신 유령, 불확실하게 존재하는 어떤 용서 없는 망령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일부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 안에 남겨진 것 같았다. -23쪽
이런 순간에 부닥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당신의 이야기는 스릴러가 아니었습니다. 장르가 달랐고 작가가 달랐다면 당신이 처했던 상황은 아주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고 벨 드롬굴드는 놀랄 정도로 무섭거나 애달픈 사람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신을 이곳에 놓아둔 사람은 윌리엄 트레버였고 그분은 아주 섬세한 눈을 가진 사람이었죠. 트레버는 차분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찰나에 루페를 가져다 대고 그것을 섬세하게 글로 옮기는 작가였기에 저는 아주 사소한 대화에서, 당신이나 조율사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순간에서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전에 저는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겠다는 말 자체가 어쩌면 오만일 수도 있다는 종류의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이런 시도 앞에서는 그런 말도 무용해지는 것 같습니다. 트레버는 그런 면에서 아주 탁월한 성취를 이룬 사람이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엄청나게 넓혀 주는 사람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당신을 존재하게 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트레버라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엄청나게 대단한 갈등도, 가슴을 조이게 하는 사건도 없는 이야기이건만 당신의 마음에 몰아쳤을 불안의 풍랑이 어떤 것일지 짐작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는 존재니까요. 그것이 비록, 남편의 삶에 깊게 자리한 전처의 흔적을 파헤쳐내어 그의 내면에 상처를 입히는 것일지라도 누가 당신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아주 악한 사람도, 아주 선하기만 한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서성이는 우리는 그저 당신도, 저 사람도, 죽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모호한 기분으로 계속해서 텍스트 위를 오가게 될 테고, 아마도 그게 트레버가 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답니다. 인간사 많은 것은 대부분이 그렇게 모호하고 우리는 그 무엇도 섣부르게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 것을요.
현재의 모습에 따라 과거는 윤색되어 더욱 그리운 것이 되기도 하고 찬찬히 빛바래어 잊히기도 합니다. '지금'에게 영향받아 달라지는 것이 미래만은 아니더라고요. 과거도 늘 함께 움직여요. 놀랍게도. 그러니 쉬운 일이 결코 아니겠지만, 당신의 삶을 잘 살아주시기를 바란다고 하면 너무 결례가 될까요. 이렇게라도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