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 장례식 케이크 전문점 연옥당
안녕하세요, 마고 님.
오늘도 사바세계의 한구석에서 망자를 위한 케이크를 굽고 계시느라 바쁘실까요. 마고 님의 조수이자 동반자처럼도 보이는 유령 미로 씨와 함께요.
사랑했던 사람이 먼 길에 지치지 않기를
아프지도 고통스럽지도 않기를
홀로 그 먼 곳에서 울지도 외로워하지도 않기를
추위도 배고픔도 잊고, 무서운 것 두려운 것 없이 무사히 환생문에 닿기를
가능하다면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장례식 케이크는 그 모든 기원과 함께 구워지지요.
다시 열어본 서두의 글이 유난히 시린 느낌이에요. 죽음 이후 49일 동안 연옥 벌판을 건너 환생문에 닿을 때까지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며 그의 생을 담아낸 케이크를 만드는 마고 님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됐을 때의 먹먹한 기분이 또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솔직히 이렇게까지 다정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가끔은 비딱한 마음이 들 때가 있거든요. 이렇게 따뜻한 이야기를 읽어봤자 그럴수록 현실이 더 냉정하고 차갑게 느껴지기밖에 더하겠냐고요. 잠깐만 이 비딱함을 참아주세요.
그러니까 제 말은 그런 거예요. 현실은 충분히 잔인하고 시끄럽고 내게 불친절한 곳이라는 거죠(느끼기에 따라 차등은 있겠지만, 이렇게 느끼는 사람은 적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는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여기엔 온통 착한 사람들만 있네. 서로를 어떻게든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만 있는 게 말이 돼?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쁜 세상에 웬 오지랖들은 이렇게 넓은지. 그런 생각들이 생산적인지 비생산적인지를 따지기에 앞서 엄연히 존재하는 의견이라는 거죠. 사실 저는 소위 힐링물을 볼 때 약간 그런 비뚜름한 시선을 갖고 읽어요.
읽는 동안은 마음이 따스해지고 좋은 거, 아는데. 근데 그게 실질적으로 무슨 힘이 되나 싶은 그런 기분 말이에요.
그런데 마고 님이 도시 한구석에서 장례식 케이크를 굽고 뱀파이어와 삼지안과 고양이 등등이 아무렇지도 않게 인간과 어울려 살아가는 세계에도 슬픔과 비통함, 고통과 절망이 존재하더라고요. 현실의 씁쓸함을 정면으로 응시하되, 아름다운 픽션의 포장을 살짝 얹은 이별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이거였어요. 아, 이거야말로 달콤쌉싸름함bittersweet의 진수다, 라고요.
이별과 상실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꼭 사랑하는 가족, 친구, 혹은 그 누구와의 이별만은 아니더라고요. 어느 순간에는 평생 이루고 싶은 꿈이기도 했어요. 그게 뭐든 그토록 소중한 것을 잃거나 포기해야만 했던 사람에게 대체 어떤 것이 위로가 될까를 곰곰 고민하게 하네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했어요. 꼭 어떤 해결책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저 이런 일을 겪는 게 나 혼자 뿐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크게 위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따스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이유는 그래서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엄마랑 30년을 같이 살았거든요. 그러니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는 있지만... 제가 아는 엄마가 엄마의 전부는 아닐 테니까요. 제 기억만으로는 어딘가 틀린 데가 있을까 봐 조금 걱정이 돼서... -1권, 109쪽
잊어야만 새 삶을 얻게 된다면 잊어도 괜찮아. 내가 엄마를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엄마가 늘 말했던 것처럼 삶이 한 편의 영화라면, 엄마의 영화는 이제 결말에 다다른 거겠지. 어쨌든 나는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도 한동안 그 상영관을 지키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말고 조심히 가요. -1권, 195쪽
마주할 수 있으면 다른 감정과 슬픔을 구별할 수 있어요. 그 모든 걸 슬픔으로 뭉뚱그리면 슬픔의 총량만 한없이 불어나거든요.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을 슬프게만 기억하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요. -2권, 125쪽
꿈이라는 거 소중하고 귀하지. 그런데, 그 꿈 하나를 네 전부로 삼지 않았으면 해. 네가 무사해야 네 꿈도 무사하지 않겠니. -189쪽
엉뚱한 얘기 같지만 오늘 아침에 기사 하나를 읽었어요. 아니, 책소개였던 것 같기도 했는데, 사형수들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어떤 목사 얘기였죠. 죽는 당사자는 아니었어도,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낸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귀담아들었으며 그들을 위한 케이크를 구웠을 마고 님이 다시금 생각나는 얘기였어요. 저 같은 사람한테는 생각만 해도 손사래를 치고 싶을 정도로 묵직한 일이거든요. 하지만 누군가의 마지막을 감당하고 있을, 그리고 그들을 떠나보내는 의식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그런 분들 덕에 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위로를 얻고 내일을 맞이할 힘을 얻고, 때때로 떠난 사람들을 추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저는 그랬어요).
그러니 여러모로 감사하다는 말밖에 쓸 수가 없네요. 건강 잘 챙기세요, 마고 님. 고야 박사님이 걱정하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에요. 산호 작가님이 마고 님의 이야기를 더 보여주실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때까지 잘 지내고 계시기를. 또 이런저런 케이크를 고안하느라 오븐 앞에 붙어있을 것 같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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