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과 탐욕의 미묘한 경계

레프 톨스토이, 인간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

by 담화

Здравствуйте, 음......제겐 실로 특별한 님께 인사를 보냅니다(저 러시아말은 이거하고 딱 두 개 더 알아요. 물론 'Лев(레프)' 'Толстой(톨스토이)'는 아니에요. 하하하하핫...)


KakaoTalk_20250604_092228845.jpg


나름 길다면 제법 긴 편인 독서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제가 굉장히 특별하게 기억하는 인물들이 몇 있는데, 님의 존함은 그중에서도 가장 최상위단에 위치한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나이에 도대체 무슨 경로로 이 책을 읽게 되었던 건지 알 수가 없는데, 아마도 열 하나 혹은 둘쯤 됐었을 거예요. 재미있는 건, 책을 덮은 다음 몇 분간을 진중하게 미간을 찌푸린 채로 한참 여운에 잠겨 있었던 기억이 또렷하다는 건데요. 아마 그 어린이는 '과욕을 부리는 일'의 결말에 대해 상당한 심리적 직격탄을 맞았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었던 당시의 제가 뭔가에 굉장히 몰두해 있었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그저 생활을 위해 약간의 땅 욕심을 부렸던 님께서 탐욕의 대가로 죽음을 맞이했던 장면은 어린이에게는 대단한 충격이었지 싶어요. 그 이후로 파홈(제가 읽었던 책에서는 '빠홈'이라고 표기돼 있었는데, 실제 러시아어 발음으로는 그게 더 맞지 않나 싶기도 하고...)=탐욕의 대명사가 된 걸 보면요.


그게 얼마나 강렬하게 머릿속에 각인됐으면,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제가 모기를 좀 잘 잡거든요. 단번에 일곱 마리, 이런 건 못 하지만 공중에 손을 한 번 휘둘러 주먹을 쥐었다 놓으면 손안에 죽은 모기가 들어있는 경우가 왕왕 있...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렇지만 아무리 그런 저라도 '생포'까지는 잘 못 하는데, 정말이지 어처구니없게도 손등 위에 앉은 모기를 날개만 붙잡아서 생포한 적이 있어요. 그런 모기가 어디 있냐고요, 거짓말 같죠. 근데 진짜예요.

과장을 1도 안 섞고, 배가 터지기 일보직전으로 빨갛게 부풀어 있더라고요. 기가 막혀서 걔를 한참 구경하다가 엄숙하게 말을 걸었어요. 너는 이름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이제부터 네 이름은 파홈이라고요. 이 얘기를 퇴근한 남편한테 해줬더니 웃겨 죽을 뻔하더군요. 어쨌냐기에 명명식 이후 압살형에 처했다고 했죠. 파홈... 이래저래 슬픈 이름이군요...


엉뚱한 소리를 제법 했는데 여하간, 근데 책 말미에 편집자님도 말씀하셨지만 도대체가, 땅 욕심 좀 냈다고(실제로 뭘 어떻게 한 것도 아니고 말뿐이었는데!) 이런 잔인한 결말을 맞다니 님의 목숨을 앗아간 그 악마가 지금의 우리나라에 나타난다면 급사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 대지를 경작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올 새가 없어. 한 가지 괴로움이 있다면 땅이 적다는 거야! 땅만 충분하다면 아무도, 심지어 악마조차 두렵지 않을 텐데!" -11쪽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시비터는 말 좀 했다고 한낱 인간에게 승부욕을 불태우는 악마라니 세상에 뭐 이런 쪼잔한 악마가 다 있나요...게다가 다시 찬찬히 읽어 보니, 처음부터 땅을 늘릴 욕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더군요?


파홈은 그렇게 지내며 기뻐한다. 모든 것이 좋을 수 있었다. 하지만 농부들이 파홈의 곡물과 목초지를 짓밟기 시작했다. 그는 정중히 부탁했지만 다들 그만두지 않는다. 목동들은 암소들이 목초지에 들어가도록 내버려 두고, 밤에 방목장에 풀어놓은 말들은 길을 잘못 들어 심은 밭으로 들어간다. -15쪽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면 제아무리 너그러운 사람이라 해도 무슨 수로 버티겠나요. 물론 그래서 '안정감을 갖기 위해' 아주 약간의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 탐욕으로 들불처럼 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요. 그러니까 그저 생존을 위해 지속하던 일들이 소유를 위한 것으로 변질되는 순간, 어쩌면 한 인간의 운명이 뒤바뀌는 순간은 그토록 얇고 희미하기 짝이 없다는 걸 다시금 보게 될 때의 씁쓸함은 어쩔 수가 없네요.


아, 이래서 어떤 책들은 오래 두었다 다시 읽어보는 일이 필요한가 봐요. 어릴 때는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역시 욕심을 부리는 건 나쁘구나. 죽으면 다 끝인데 욕심을 부려서 뭐 하나... 생각했던 것들이 조금은 달리 보이니까요. 이 이야기가 탐욕과 소유, 죽음과 파멸의 문제를 조금 더 세련되게 다루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자꾸 묻어나긴 하지만요. 그건 또 날 때부터 '있는 집 도련님'으로서 살아온 톨스토이가 아무리 농민의 삶에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관점의 한계 탓도 있겠지요. 새삼스레 사람이 자신의 세계를 넓히기 위해 굳이 애를 써야 하는 이유를 체감하게 됩니다.


마지막은 언제 다시 읽어도 참말 씁쓸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그럼에도 그 끝 장면이 주는 여운은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그러니 여전히 새롭게 다듬은 번역이 나오고 다시금 찾아 읽는 사람이 있는 것이겠죠. 안분지족의 말뜻을 다시 헤아려 보고 싶어지는 시간이네요. 평안하시기를, 그리고 지금은 그 악몽에서 벗어나셨기를.



(덧. 제가 읽은 책은 민음사에서 나온 북클럽에디션-비매품이라 오늘은 책 정보 링크를 생략합니다)

이전 13화유용하게 써먹을 특기 하나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