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귀여운 육아에세이

김서령, 화들짝 ♥ 지구 불시착

by 담화

어제저녁의 공원 산책길에서 너무 귀여운 가족을 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귀여운 부모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쓰니 무지하게 어르신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정말이지 귀여웠다. 저물녘 유아차를 끌고 산책을 나온 부부는 신경질적으로 울어대는 아이를 데리고 쩔쩔매었다. 공원 내에 짜랑짜랑하게 울려 퍼지도록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아이를 달래려니 안아주어야 하는데, 안아주자니 아이가 손을 탈까 봐 몹시도 저어하는 것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였다. 그러니 공공의 이익과 사적인 이해가 상충하는 셈이었다. 누가 봐도 첫아이를 키우는 초보 부모가 아이와 기싸움을 벌이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참견할 뻔한 주책을 꾹꾹 누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틀어막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미안해요, 아기엄마아빠의 노력을 우습게 봐서 웃은 게 아니었답니다. 절대 아니에요...


첫아이를 키우면서 도무지 왜 우는지 알 수 없는 아이와 함께 울어버렸던 세월이 옛말이다... 첫 출산과 함께 아이의 생일을 본인이 두 번째 삶을 얻은 또 다른 생일로 여기라던 집도의의 웃음 섞인 말을 들었던 게 언제라고, 그 언니는 본인의 최애 아이돌의 콘서트 티켓팅에 성공했다고 기쁨의 문자를 스팸처럼 날려오고 있다. 인생, 참...


이 책 이야기를 하려다가 (늘 그렇듯) 서두가 길어지고 말았다. 뭐, 맨날 용두사미인걸 새삼.


세상에, 귀여워. 이렇게 귀여워도 되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5781027


김서령 작가님은 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이 출판사는 잘 알고 있었다. 왜냐면 이곳에서 나오는 책들이 정말 예쁘기 때문. 책 예쁘게 만들기에 진심이신 사장님이시구나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작가님께서 운영하시는 곳이라는 사실을 어제야 알았다... 하하하

표지를 보면서 일러 작가님을 섭외 정말 잘하셨네, 참 예쁘다 싶었는데 작가님께서 그리셨다는 사실에 현타가 왔다... 요즘은 글만 잘 써서는 작가를 못 하는 세상인 것인가.


전혀 결혼 생각이 없었던 비혼주의자였던 작가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임신 소식. 기겁할 만도 한데,


마흔두 살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나는 그 누구보다도 단단한 비혼주의자들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돌이켜보면 신기할 만큼 우리의 결정은 신속했다.
"행복하니?"
"응, 행복해."
거짓말이 아니었다.
"안 두려워?"
"안 두려워."
그것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16쪽


우주는 이렇게 세상에 왔다. 조금의 두려움도, 거리낌도 없이 우주의 엄마와 아빠로 살기를 선택한 커플에게 우주는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이었다. 그러니까 작가에게 임신 기간은 일종의 리미널 스페이스가 아니었을까. 예고도 없이 찾아온 작은 생명이 손으로 감각할 수 있고, 매 순간 그 존재를 인지하지 않을 수 없는 아기로 품 안에 자리하여 현실을 깨우쳐 주었을 것이다. 남은 삶의 모든 순간은 뱃속의 그 아이 위주로 모조리 재편될 것이라는 사실을(어느 정도 키워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초등 고학년을 지나면서 '그넘의 내 인생 점유율 그래프'는 급경사를 그리며 상승하다가 고3에 정점을 찍고 다시 급하강을 하는 듯하다. 하긴 그래야 엄마도 살지 ㅠㅠㅠㅠㅠ).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가 함께 손잡고 평탄한 산책로를 걸을 수 있는 그 시기가 아이를 기르는 모든 시간을 포함하여 가장 안온하고 경이로운 때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차례 웃고 조금 눈시울을 붉혔다. 옛날 같았으면 F적으로 펑펑 울었을지도 모르겠는데, 갈수록 극T성향이 두드러지는 덕에 그냥 큼... 하고 헛기침으로 넘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좋아하던 무협지의 주인공들 이름을 따다 손녀들 이름을 지은 조부님의 작명 센스를 흉보다가, 나라고 별 수 없구나 자조하는 순간에는 함께 웃었다.


"그럼. 딱 20년만 키워주면 되는데 뭘. 20년 금방이다?"
거실 매트 위를 데굴데굴 구르는 우주를 쳐다보았다.
20년 언제 가지? -59쪽


이런 대목에서는 찔끔했다. 내 아이가 저만할 때 내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어한 말이었다. 시간 금방 간다니. 금방 가긴 뭘 금방 가. 전심전력을 다해서 놀아주고 시계를 보면 꼴랑 5분 가 있을 때 좌절하는 순간들이 잦았던 나는 그 말을 하며 지금을 아쉬워하라는 동네 아줌마들의 말이 듣기 싫은 나머지 중년의 여성들이 보이기만 하면 멀찍이 돌아서 가는 만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내가 그 말을 차마 하지는 못하고, 그냥 마른침만 삼키고 돌아서게 되었다. 진짜, 나중에 진짜 후회하는데. 지금 정말 많이 안아주고 많이 놀아주지 않으면 후회할 텐데... 그게 다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이었다는 걸 그땐 몰랐지. ㅎㅎㅎ


근데 웃긴 건 그렇게 키운 아이는 엄마, 20년은 순식간이야. 난 내가 눈 깜짝할 사이에 마흔이 넘어 있을 거라는 걸 알아. 인생 금방 간다니까?라고 종종 나를 깨우쳐 준다... 어므야 너는 상대성 시간 감각이 있어서 참 좋겠다아. 나는 60 넘은 내가 상상이 안 가는데 쌩쌩한 너는 중년이 된 너를 상상할 수 있다니 그 어마어마한 메타적 능력이 참말 부럽고나...(안 부러워)


사실, 육아에세이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결단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아이 셋을 키운다고 10여 년을 집에서 진짜 아무것도 못하고 묶여만 있었는데(묶여있었다는 표현이 좀 별로긴 한데, 그게 맞다. 그건 또 속사정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야기라), 거기서 이야깃거리를 풀어내려고 마음먹으면 과장 좀 섞어서 50만 자쯤 쓸 수 있다. 한마디로 지겹다. 내 애 키우는 것도 징글징글하게 힘들었는데 남이 애 키우는 얘기까지 찾아 읽는다고? 그건 내게 고문이다. 진심으로 고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쓰신 분이 소설가라는 점. 보통의 육아에세이와 차별화되는 지점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성이 확실하다. 직업병(?)이 발휘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모든 일화가 일기가 아니라 생동하는 소설처럼 읽힌다. 두 번째, 짐작하다시피 굳이 일부러 찾아서 펼쳐보게 만드는 일러스트 때문이다. 삽화가 아니라 앨범 속의 빛바랜 사진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외주 일러스트가 아니라 작가 본인이 직접 그렸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이 예쁜 책이 많이 사랑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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