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엔데, 모모
모모. 모모. 모모...
놀리는 것처럼 들렸다면 미안. 하지만 내가 아는 모모라면 설령 정말로 누가 놀릴 의도로 그렇게 연달아 이름을 불렀다고 해도 조금도 언짢아하지 않고 눈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부르면 재미있어? 하고 반문할 것 같지만. 왠지 계속 불러보고 싶게 만드는 귀여운 이름이거든, 모모는. 누구나 한 번쯤 불러보고 싶어질 거야. 그리고 금방 기억하겠지, 더벅머리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가진 모모를.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긴 것이 가장 좋았다. 그렇게 친절한 사람들을 만난 것은 모모에게는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긴 모모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마을 사람들 역시 모모를 만난 것이 커다란 행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1쪽
그래서 네겐 친구도 금세 잔뜩 생겼지. 그중에서도 네가 가장 좋아한 친구는 도로 청소부 베포 아저씨와 관광 가이드 지지였고. 베포 아저씨는 생각이 깊고 말이 느린 사람이어서 가끔은,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대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면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 시간은 두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하루 종일 걸리기도 했다. 그런 다음 그는 대답을 했다. 그동안 당연히 자기가 뭘 물어보았는지 잊어버린 상대방은 베포의 뒤늦은 대답에 어리둥절해할 수밖에 없었다. -49쪽
이런 행동을 보여서 사람들에게서 머리가 약간 이상하다는 말을 듣기도 해. 하지만 베포 아저씨가 그렇게 행동하는 진짜 이유를 알았던 건 아마도 네가 유일했을 거야. 아저씨는, 급하게 서두르거나 철저하지 못해서 저지르게 되는 수많은 거짓말을 하게 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신중하게 굴었던 건데.
그에 비해 관광 가이드 지지는 얼마나 유쾌하고 때로는 허풍도 잘 떠는 친구인지.
관광객의 요청이 있기만 하면 순식간에 '머리가 빙글빙글할 정도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마구마구 늘어놓는 재주가 있는 지지는 허튼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에 대해 꾸지람을 듣자 이렇게 응수하잖아.
"하지만 시인들은 모두 그렇게 하잖아요. (...) 나는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걸 얻었다고 생각해요. 학술 서적에 쓰여 있는 얘기든 꾸며 낸 얘기든 무슨 차이가 있어요?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54쪽
이렇게 저마다의 소중한 일들을 갖고 살던 이 작은 마을에 어느 날 천천히 온통 회색인 남자들이 스며들어 와. 갑작스레 찾아드는 '허무함'을 느끼는 마음의 빈틈을 기막히게 잘 찾아내는 재주가 있는 그들은 기묘하기 짝이 없는 계산을 선보여서 사람들의 시간을 도둑질하기 시작하지. 이런 방식으로.
"선생님, 시간을 어떻게 아끼셔야 하는지는 잘 아시잖습니까! 예컨대 일을 더 빨리 하시고 불필요한 부분은 모두 생략하세요.
(...)
시간 낭비를 가져오는 잡담은 피하세요. 나이 드신 어머니 곁에서 보내는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할 수도 있습니다.
(...)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앵무새는 내다 버리세요!
(...)
15분 간의 저녁 명상은 집어치우세요. 무엇보다 노래를 하고, 책을 읽고, 소위 친구들을 만나느라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91쪽
이렇게 시간을 도둑질한 그들이 그 시간을 가지고 과연 무얼 했을까. 사실 그들이 딱히 무얼 한 건 아니야. 그냥 살기 위해서였지. 시간 도둑은 남의 시간을 훔치는 것 말고는 생존할 방법이 없었던가 봐. 그런데 놀랍게도, 전혀 환상적이지도 않고 신기한 일도 별로 없는 이 세계에서도 시간 도둑은 엄연히 존재한단다.
안타깝게도. 그런 시간 도둑들에겐 네 이야기 속의 회색 신사들과 꼭 같은 점이 하나 있는데, 자신의 시간- 혹은 삶이라고 불러야 할 만한 것을 일구지 못한다는 거야. 우습고 슬픈 사실이지. 베포 할아버지의 말대로 그건 일종의 전염병일지도 몰라. 그런데 어디서부터 온 건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어. 회색 허무라고 이름 붙이면 간단하겠지만, 그보다는 더 복잡하고 깊은 이유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나타나. 늘 그런 것 같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 소수의 카나리아 같은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곤 해. 니노 아저씨가 말한 것처럼,
"나도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구나.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 하지만 요즘에는 모두 그렇게 하고 있어. 왜 나만 혼자 다르게 살아야 하지? 혹시 넌 내가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118쪽
이건 굉장히 꺼내기 어려운 질문이면서 실천할 용기가 필요한 답을 함께 품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어떤 질문은,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실천할 용기를 끌어내는 힘이 있는 것도 같아. 이런 생각을 물음으로 표현할 때는 이미 어떤 결심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저 한 걸음을 떼는 데 응원을 받고 싶은 건 아닐까 싶거든.
그렇게 이웃들이 다시금 자신의 시간을 되찾게 도운 네가 시간 도둑들의 관심을 끌게 되고 분노를 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현명한 어른이 있다는 건 또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말이지, 나는 약간 시간 강박증을 갖고 사는 사람이거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할 때 굉장히 시간이 예민해져. 그럼에도 유일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걸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할 때가 있는데 그건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야.
그런데 그거 알아? 도무지 시선을 주지 않으려 해도 뭔가를 할 때마다, 자동적으로 시계에 눈이 가고 이 시간에 내가 다른 일을 했으면 어떤 성과를 얼마나 냈겠다는 계산이 자동적으로 되어버리고 마는 슬픈 체질을 타고 난, 누군가는 자본주의의 노예에다 워커홀릭이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거기서 기쁨을 느끼는 유별난 사람도 세상에 존재해... 내가 회색 신사들의 편을 드는 건 아닌데, 그냥 정말 순수하게 그런 기쁨으로 세상 사는 맛을 느끼는 사람도 있긴 있다고 소심한 변명,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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