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 아무튼, 뉴욕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만남과 헤어짐, 고통과 즐거움, 밥벌이의 고단함 등등 온갖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잠시 스쳐 가듯 여행하는 사람처럼 적당한 거리를 둔 산뜻한 관계가 될 수는 없다. -7쪽
첫머리의 이 문장을 발견하고 나는 이 책이 어떤 책일지 알 수 있었다. 인물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연재물의 초반부를 본 것처럼, 확실하게 이 글의 성격이 어떠할 것이며 이 글을 쓰는 내(작가)가 어떤 시선으로 글을 전개해 나갈 것인지가 명확하게 읽혀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에세이에서 이 정도의 명쾌함은 만나기 쉽지 않기에 유달리 더 반가웠다. 문장을 잘 쓰는 사람이 있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고, 책을 잘 쓰는 사람이 있는데 책을 잘 쓰는 것이 당연하게도 가장 어렵다.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분명하게 떠오르는 하나의 메시지, 그러니까 주제라고 해도 좋다. 그게 아주 또렷하게 전달되는 책이 (적게) 있고 그렇지 않은 책이 (상당히) 있다.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나는 기대를 배신하지 않은 책을 선보여 주신 작가님께 굉장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뉴욕의 단편적인 모습들을 다시 회상할 수 있어서 굉장히 반가웠다. 뉴욕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분들께는 그 도시의 진솔한 모습까지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길지 않은 이 에세이는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뉴욕에서 길 잃기, 2부는 뉴욕에서 길 찾기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어찌 보면 뉴욕 방황기와 정착기처럼 읽히기도 했다.
뉴욕은 뭐랄까, 말 그대로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 쿨한 도시다. 진심이야 무엇이든 만나는 사람마다 피스트 범프를 나누며 hey,를 외쳐줄 것 같은 넉살쟁이는 어쩐지 캘리포니아 같고. 그런 뉴욕과 친해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쿨가이들처럼 뉴욕 역시 속속들이 알게 되면 누구나 매혹당하지 않을 수 없는 치명치명한 매력이 있다고들 하는데, 아마 그 이유의 많은 부분이 이 책에서 설명되고 있지 않나 싶다. 나는 그랬다.
일견 생활밀착형 가이드북 같기도 하고. 북적이는 관광객과 삶의 일상, 그리고 자본의 심장이 한데 뒤섞인 곳, 뉴욕. 거대한 아픔과 이민자들의 역사를 가진 도시. 이렇게 세상 복잡한 정체성을 몽땅 끌어안고 있는 곳도 그리 흔치는 않을 테지.
언어가 하나의 집이라면 모국어로 이루어진 나의 공간 곳곳에는 여러 방이 있고 각각의 방에 다양한 기억들이 잘 담겨져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섬세하게 잘 꾸며놓았기에 언제 가도 안온하다. 여기에 외국어라는 새로운 공간이 더해지면 이 세계가 확장되고 더 다채로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생각의 깊이가 얕아지고 위축되니 모국어의 공간도 따라서 줄어든다. -80쪽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란 그 대상에 대해 조금 더 장황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는 사랑의 가장 사소한 답을 찾아내는 일이다. -198쪽
나는 끄트머리의 이 문장이 이 책뿐만이 아니라 아무튼 시리즈를 관통하는 컨셉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여하간, 이 시리즈는 보면 볼수록 우리나라 출판계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대단한 기획이 아닌가 싶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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