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이유

정성은, 궁금한 건 당신

by 담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왕이면 정제된 형태로 듣는 것이 더 좋고, 활자로 읽을 수 있으면 더 좋다. 후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직접 장을 보러 다니는 것보다 곱게 손질된 재료로 맛있게 요리한 한 접시를 받는 것이 더더욱 좋은 것과 비슷하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저자는 서촌코미디클럽을 운영하는 분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 책을 쓰실 당시에는 아니었던가보다. 왜냐하면 서문에 떡하니 이런 말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신문에 글 한번 써볼래요?" 나의 이야기에 가끔 '좋아요'를 눌러주던 기자님이었다. "아직 확정은 아니고요, 2030의 이야기를 들려줄 필진을 찾고 있어요. 그런데 성은 씨 직업이 뭐죠?"
"저......백수요."
(...)
기자님은 곤란해했다.
"필진을 백수라고 소개할 순 없는데...... 그런데 성은 씨 맨날 뭐 하지 않아요?" -4쪽


그래서 정성은 씨는 스스로 직업을 만들어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일상이 글로 옮겨지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저자는 결국 소재를 찾다 찾다 남들의 '번호를 따는' 습관이 생겼다고. 아마도 내가 이 책에 확 끌렸던 건, 이 대목에서가 아니었을까.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번호를 묻는 대범함이란, 음... 나도 평균 이상으로는 대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는 못할 것 같은데. 사람은 자기가 하지 못하는 일을 쉽게 해내는 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러니 그렇게 '따낸' 이야기가 어떤 것일지 궁금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겠다. 대화가 엄청나게 긴 것도 아닌데, 어쩌면 다시 볼 일이 없는 사람이어서 그들은 그렇게 쉽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낯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질문하게 되는 때란 어떤 때일까.

의례상 짧은 스몰토크를 나누게 됐을 때. 나와 도저히 의견이 합치될 것 같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됐을 때. 나도 '너무 이해하는' 경험을 털어놓는 것을 듣게 됐을 때. 나라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해낸 이야기를 듣게 됐을 때. 계기야 어찌 되었든 일단은 남의 말을 잘 듣고 있어야 질문이란 것도 할 수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대화를 잘 나누는 사람의 자질이란 뭐 어쨌건 일단 잘 듣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을 잘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듯하다. 나는 잘 듣는 사람이 아니어서. 듣는 일에 너무 쉽게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어서. 그래서 일상에서 채우지 못하는 그런 인간적 결핍을 이러한 책으로 상쇄하려는 충동(?)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짐작을 하게 된다.


사람이 뭔가를 하는 게 왜 중요하냐면요, 그걸 보고 사람들이 와서 계속 새로운 걸 던져주기 때문이에요. 저한테도 그래요. 이거 해보라고, 저거 해보라고. 만약 제가 아무것도 안 하고 방에만 있으면 누가 나한테 와서 그러겠어요. 내 어디를 믿고. -80쪽
좋은 포인트네. 아까 네 친구들이 한 말과 이어지는 것 같은데?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말 말야. 결국 사람은 자신을 표현할수록 훌륭해진달까? -130쪽
"주위를 둘러봐요. 당신 주변의 예술가들을 봐요. 그들은 항상 뭔가를 하고 있어요. 의심 없이. 멈추지 않고." -132쪽


세상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는 사람들이 있다. 박애주의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자신의 안위만을 살피기에도 바쁜 삶 속에서 자연에, 시스템에, 인간에게 관심을 나누어주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끈기 있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그 안에 머물러 사는 사람 중 하나로서 작고 작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겨나는 것이 반갑고 좋다.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된 택시기사,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났던 공무원, 베를린에서 들렀던 한식당의 주인. 화장실 청소 서비스를 신청해서 만나게 된 청소 전문가 부부, 심지어는 홍상수 특별전에서 만난 영국인. 정성은의 대화 상대는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대단한 성취도, 인정도 없어도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자신의 활동을 지속해 나가는 일에 간혹 지쳤을 때, 격려를 얻고 싶을 때 펼쳐보면 좋을 책이다. 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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