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초인의 세계
초인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보통 사람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 이 정의에 빗대어 보자면, 이 작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 누구도 초인이 되기에는 심히 부족해 보인다. 2%를 넘어 20%쯤 부족해 보이는, 이능력이라고 부르기엔 많이 망설여지지만 그런 능력을 갖고 살면 세상살이가 지루하지는 않을 정도로만 아주 소소하게 재미있을 것 같은 능력. 이를테면 하찮은 투시능력(이게 왜 하찮은지는 소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아무튼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투시는 절대로 아니다...)과 타인의 생각을 머리 위로 떠오른 문장으로 읽어낼 수 있는 능력. 누가 내게 그런 걸 줄 테니 어디 한번 받아보련, 하고 묻는다면 기꺼이 아니요 전혀 필요 없습니다, 하고 딱 부러지게 거절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실로 변변찮은 능력. 그리고 우리의 등장인물들은 그 하찮은 능력 때문에,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한 조짐을 무시할 수가 없다.
사실은 무시할까도 고민하지만, 그들은 애잔할 정도로 별 볼 일 없는 이 능력들로, 마트 안에서 과도를 숨긴 채로 돌아다니며 무슨 일을 일으킬 것만 같았던 노인을, 노인에게, 노인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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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우리는 종종 작가의 의도를 오해하고 착각하며 제멋대로 해석하여 전하는 작은 잘못도 종종 저지른다. 나도 그러려고 한다. 그런 오해들로 인하여 읽기란 늘 두텁고 따스하며 가끔은 따끔거리는 가시를 품은 무엇이 된다. 리뷰란 그런 것 같다. 한 권의 책이 누군가의 인생에 가 닿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순간을 담아낸 글을 볼 때면 어쩐지 웃음이 난다.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감정이 퐁퐁 솟아오르는 문장 사이사이에 묻어나는 애정이 엿보이는 리뷰는 작가도 꼭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하는 글을 보면, 조금 복잡한 기분이 된다.
오늘 모 프로그램의 유튜브 편집본에서 김영하 작가가 하시는 말씀을 보았는데 그런 대작가도 독자들의 평을 찾아보기 이전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그 책에 대한 감상보다, 다른 이야기가 더 많은 리뷰라 할지라도 재미있을 것이다. 그 책이 마중물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이야기일 테니까.
같이 사는 사람도 이야기의 선상에서 보자면 재미있는 능력을 가졌는데, 별 건 아니고 사람을 끌어모으는 능력이다. 어떤 '텅 빈' 장소도, 줄도 이 아저씨만 다녀가면 복닥거리기 시작하는데(좋고 나쁜 의미 반반) 그게 참 재밌다. 몰라서 그렇지 아마 우리 모두가 그런 소박하고 귀여운 능력 하나쯤은 이미 갖고 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어느 순간, 우리는 그 하잘것없는 능력으로 누군가를 돕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갈지도 모르는 일이고.
암에 걸려 있는데도 겨우 이런 것 때문에 긴장하는 자신이 우스웠지만 원래 조건반사란 그런 것이 아닌가. 습관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몸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 거머리 같은 것. 집요한 것. 사형수가 사형대를 향해 걸어가다가 바닥에 고인 물을 저도 모르게 피해 가는 습관 같은 것. 명희는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었다. -22쪽
남의 불행이 나의 불행이 아니라는 이유로 안도하는 마음에 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아, 이미 늦어버렸어. 소년의 엄마는 두 여자가 하는 얘기를 또 들었다. 1년 전 사고의 판박이처럼 어제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사고가 일어났다는 얘기였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끔찍하게도 기묘한 위안이 느껴졌다. 위안? 위안이라니. 나의 불행이 나만 겪은 것이 아니라서 느끼는 위안이라니. 남도 같은 불행을 겪었기 때문에 느끼는 위안이라니. 이건 또 얼마나 괴롭고 무서운 감정인가. -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