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렇게 시간을 보냈군요

박솔뫼, 안은별, 이상우, 바로 손을 흔드는 대신

by 담화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7534636


이 산문집을 무어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에세이에 들어가나? 글쎄. 읽었던 책이 어느 카테고리에 들어갈지 바로 감이 오지 않을 때 가장 먼저 레퍼런스 삼는 것은 온라인 서점의 분류다. 누가 뭐래도 온라인 서점의 MD들은 이런 일에 프로인 사람들 아닌가. 그리하여 내가 얻은 답은 <한국에세이>였다. 그렇구나, 에세이로구나. 에세이... 인가?


에세이의 정의는 너무 넓거나 좁다. 요즘은 대략 신변잡기적인 글은 에세이로 다 넘어가는 것 같긴 한데, 음, 개인적으로 에세이의 모범은 버지니아 울프가 아닌가 생각한다.

버지니아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만화처럼 머릿속에 강렬한 볼드체의 느낌표가 떠오르는 순간들이 발생한다. 버지니아의 문장은 마치 어떤 도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문장의 끝에서, 내 마음 안에 남는 감정의 잔상이 있다. 물론 그건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이니까 가능한 것이기도 한데 또 어떤 작가의 문장은 뜰채 같아서 그걸 읽고 나면 뭔지는 몰라도 무지개 물고기처럼 반짝반짝하는 비늘을 가진 정체불명의 아름다운 생물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무엇을 건졌던가 하면, 두고두고 곱씹어 보고 싶은 어떤 장면들을, 찰나들을 건졌다. 이 기획을 제안한 박솔뫼 작가가 '우리 함께 뭔가 재미있는 걸 해봐요'라는 요지로 쓴 메일이 뒷부분에 실려있는데, 그 글 속에 묻어나는 들뜸과 설렘이 매우 좋았다.


어떤 작가의 글은 정말로 일기 같고 또 어떤 작가의 글은 심상스케치 같다. 또 어떤 글은 단어와 문장으로 찍어낸 사진처럼 읽히기도 해서 그야말로 삼인삼색. 가끔 깜짝 출연(?)하는 그들의 지인들의 글 역시 나름의 특색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산문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글쓴이들이 자신의 일상풍경에 어떤 텍스트를 겹쳐 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순간은 특수한 질감을 가진 텍스쳐로 재탄생하는데 문화적 경험을 쌓고 그것을 계속 엮어나가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다, 필요한 것이다... 그런 찰나의 감각적 깨달음을 전달하는 것이 참 좋았다.

어떤 시간과 공간에 누군가의 감각적 경험이 덧칠된 새로운 텍스트가 되어 출현하는 과정을 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협업이라는 것의 재미를 간접경험할 수 있어서 좋은 것도 포함하여.


여기에서 저기로 간다는 것, 혹은 갔다가 돌아온다는 것은 반복되는 루틴이라고 해도 매번 새로운 단 한 번의 사건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갈 길을 가는 다른 사람들이다. 거대한 인프라와 치밀한 약속들의 체계와 사람들이 합을 맞춰 춤을 추는 탈것들이 그러한 것처럼, 서로가 전혀 그 얼굴을 마주한 적 없는 장소와 사건들을 이으며 시간과 공간을, 사회라는 픽션을 만들어 낸다. 매일 거의 똑같이, 그러나 완전히 같지는 않게 덧붙이면서. -17쪽
다른 사람에게 준언 씨를 설명해야 할 때가 오면 보통은 농구를 많이 하고 책을 많이 읽고 커다란 사람인데요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누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는 일은 늘 조금 어려운 것 같다. 가끔 준언 씨가 한 말이 손바닥 위에 책상 위에 놓여 있고 나는 그걸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70쪽


나는 이 대목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 권의 책이 어떤 책인지 말하는 일은 항상 (엄청나게) 어려운 것 같다.


혼자 하는 말이 있고 혼자 생각하는 말이 있고 그 중간에 혼자 내뱉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는 말에 가까운, 혼잣말 직전의 말이 있는데 뛰면서 가장 많이 하는 혼잣말 직전의 말은 I don't know이다. -139쪽


내가 늘 중얼거리고 있는 혼잣말은 이거다. 미치겠네, 시간이 왜 이렇게 없어.

정말 왜 갈수록 시간은 줄어들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뉴욕이 괜히 멜팅 팟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