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감이 발생하는 순간에 대하여

케이티 키타무라, 친밀한 사이

by 담화

인사를 건네기에 앞서 당신을 무어라 호명해야 할지 고심합니다. 이야기의 서두부터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당신의 직업을 살려 통역사님, 하고 부르기에는 남다른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고민 끝에 A씨, 라고 부르면 어떨까를 생각해 봅니다. 물론 여기서의 A는 당연히 Anonymous의 A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책들과 독자가 만나는 인연, 이걸 책연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여하간 여기에도 얼마간 인연이라 부를 만한 것이 존재합니다.


A씨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떠올려보자면 제게 다른 책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역시 먼저 만났던 다른 책과의 인연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책은 「소설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라고 하는데, 파리에 있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에서 이루어졌던 대담을 정리해서 낸 책입니다. 이미 아주 좋아하는 작가도 있고, 처음 보는 작가도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던 그 책에서 전혀 몰랐던 작가인데도 눈길을 끌었던 분이 바로 케이티 키타무라입니다. 이름만 보아도 이 분의 성장 배경이 대략적으로 그려지기에, 그리고 그 인터뷰를 통해 작가가 했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기에 펼치게 된 소설이죠. 그리고 여기에서 저는 A씨를 만나게 됩니다.

전통적으로, 소설에는 주제, 구성, 문체라는 3요소와 인물, 사건, 배경이라는 구성의 3요소가 있다고 하죠. 평소에는 전혀 저런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책을 읽어요. 제가 무슨 평론가도 아니고, 시험에서 고득점을 노리는 수험생도 아닌데 그런 걸 따져가며 텍스트를 읽겠나요.

그런데 신기하죠, 당신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놀랄 정도로 그 여섯 가지의 요소가 머릿속에 딱딱 들어박히는 경험을 했어요. 재미있더라고요. 물론 세상의 모든 텍스트는 오독의 가능성을 품고 태어나는 법이니 저도 제 마음대로 읽었기에 그렇게 받아들인 부분이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반듯하게 구조적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라니. 소설 주인공은 절대로 평탄한 삶을 살 수 없다는 불변의 법칙에 따라 당신은 결코 평온한 일상을 영위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제삼자의 눈에서 볼 때는, 참으로 안정적인 이야기였달까요, 뭐 그런 것이죠.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는 국제 공동체의 안위를 흔들 만한 범죄, 즉 집단살해죄(genocide)와 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 전쟁범죄(war crimes), 침략범죄(crime of aggression)에 대해 국제적으로 책임을 묻기 위해 재판을 진행하는 곳입니다. 당신은 이곳에 단기 계약직으로 와 있는 통역사지요.

통역사란 대체로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모어처럼 능란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당신이 말했듯,

유창함은 극도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모든 종류의 통역 업무에서 기본에 지나지 않았기에, 나는 종종 내가 좋은 통역사가 된 것은 언어적 소질보다도 극도의 정확성을 추구하는 선천적인 성향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정확성은 법률적인 맥락에서는 더더욱 중요했다. -21쪽


유창성은 통역사에게 필요한 자질 중에서도 가장 기본의 기본이니까요.


말들 아래에는, 두 개 또는 때로 그 이상의 언어들 사이에는 커다란 균열이 있어서, 그 틈이 경고 없이 열려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22쪽


여러 언어를 건너다니는 등반가는 이렇게 갑작스레 열려버리곤 하는 크레바스를 마주칠 위험을 늘 껴안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됩니다. 때로는 타고난 성향이 직업과 기막히게 잘 조응해서 업무적으로는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어도, 그것이 습관처럼 일상으로 침범해 들어오면 때로는 스스로를 갉아먹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처럼요. 이렇게 ‘딱 부러지는’ 것을 선호하는 당신이, 아내와 이혼하지도 않은 애매한 상태로 당신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아드리안 때문에 어떤 실존적 위기에 처해 있었을지를 생각하다 보면 작가란 주인공을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가장 고립된 장소에 몰아넣는 극악한 빌런이 아닐까 싶어지는 것이죠. 대체로, 모든 작가가 다 그렇습니다마는.


그에 대해 작가 케이티 키타무라가 이렇게 말한 바가 있습니다.


저처럼 다문화 속에서 자란 사람에겐 집이라는 개념의 어떤 장소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그 몸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이것이 이 화자가 답을 찾고 있는 질문입니다. 소설 속 많은 공간은 암시적입니다.
화자는 임시 숙소에서 살거나 애인의 아내 혹은 곧 그와 이혼할 여자의 환영이 깃든 그의 아파트에 들어가 삽니다.
만약 물리적 공간에서 집이라는 느낌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소설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 370쪽


이것이 아마도 작가가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언어는 개인의 실존에 깊숙이 관여하게 마련이잖아요. 또한 관계의 친밀성 또한 언어에 상당 부분 좌우되곤 합니다. 플롯이 그리 드라마틱할 것은 없는 이 이야기는 다만 당신을 둘러싼 인간관계에 존재했거나 존재할 수 있는 친밀감이라는 감정이, 언어의 맥락과 관계의 좌표에 얼마나 크게 영향받고 휘둘릴 수 있는지를 너무나 섬세하게 보여주지요. 무서울 정도로요.


박진감 넘치는 사건들로 가득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는 반면, 바깥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고요한 반면 인물의 내면을 사정없이 파헤치고 생채기를 내는 이야기로, 만약 소설을 그렇게 거칠게 양분한다면요, A씨의 이야기는 아마 그 중간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말해 봅니다.


아무래도 ICC에서 재판받고 있는 죄질 나쁜 범죄자와 원치 않는 ‘친밀한 사이’가 되는 건, 그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께는 일상적인 일일지언정 일반 독자에게는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사건이니까요. 하지만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상대와 ‘다른 맥락’에서 만났다면, 어쩌면 조금 이 관계는 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건 아주 평범한 일이고요.


이렇게 섬세하고 불안한, 유니크한 긴장감이 넘치는 이야기는 정말 오랜만에 읽은 것 같아요. A씨가 숙고를 요하는 작은 사건들과 맞부딪힐때마다 덩달아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지요. 부디 당신이 지금은 평안을 찾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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