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균, 문학하는 마음
무엇무엇하다는 동사에, 마음이라는 명사를 붙였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무얼까.
제일 빠르게 생각할 수 있는 건 해당 행위에 수반되는 모든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기분이나 자세, 태도일 것이다. 어떤 동작을 수행할 때 마음도 함께 움직이게 마련이다. 기꺼이, 혹은 마지못해. 아마도 이런 부사의 손을 잡고.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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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목에서 느껴지는 시제는 현재와 미래다. 실제로 문학을 하는 데 어떤 내면의 자세가 필요하다면, 그런 태도를 체화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문학의 현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곳에서 지금을 살고 문학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문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내 머릿속에는 오래도록 문학과 작가라는 명사의 조합이 주는 엄격한 대표 이미지가 있었다.
막연한 상상만으로 존재하던 그 이미지를 기가 막히게 포착했다고 생각한 일러스트를 실제 어떤 책의 표지에서 발견한 적이 있다. 물론 세상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책과 구겨진 원고지 뭉치가 굴러다니는 책상에서 고뇌에 빠진 이미지로 대표되는 중년의 남자 작가보다 안 그런 작가가 훨씬 많이 존재하지만, 글쎄 왜일까 작가라는 말을 들으면 듀얼 모니터와 기계식 키보드를 놓아둔 좀 더 현실적인 작가보다는, 이미 오래전에 고사한 이미지의 작가가 떠오르고야 마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작가건 저런 작가건, 그들이 ‘문학을 한다’라고 했을 때 나름으로 품고 있는 사명감이라든가, 개인적인 목표가 분명 있을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어, 도 분명 문학하는 마음의 한 자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가에게는 문학하는 삶을 이어가는 동력이 그런 뚜렷한 목표일 것이고, 또 다른 작가에게는 문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보다 심오한 목적이 있을 수도 있겠다. 혹은 문학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태도는 또 어떨지. 그러니까 문학하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문학과 함께 사는 나 자신의 현재 마음이 이러하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총 열한 사람의 작가가 이 인터뷰집을 통해 그들이 문학과 함께 사는 마음을 이야기한다.
문학과 함께 살기로 마음먹었을 때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문학 때문에 힘들지만 동시에 문학 덕분에 버틸 수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림책 작가, 아동/청소년 문학 작가, 시인, 소설가, 극작가, 에세이스트, 웹소설 작가, 문학 평론가, 서평가, 문학잡지 편집자, 문학 기자. 각자의 분야에서 글로 밥을 먹는 이렇게 총 열한 사람의 작가가 문학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엄밀히 말해 ‘문학으로만’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그러한 현실 또한 뼈저리게 체감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돈 안 되는 문학을 놓을 수 없는 이유 또한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제목을 단 책을 찾아 읽는다는 건 역시 마음 한 구석에 문학을 놓지 못하고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을 조금은 담고 있는 사람일 것이고, 그러므로 그 길을 먼저 간 선배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는 큰 조언이 되리라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건 내가 좋아하는 작품의 좋아하는 부분들에 내가 좋아하는 다른 것들을, 이를테면 바르트나 이글턴이 볼라뇨 같은 사람들의 말이나 할리우드 영화나 옛날 노래 같은 걸, 덧대고 이어 붙여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거야. 말하자면, 소설을 쓰는 거지. 나는 내가 쓰는 글이 일종의 소설이라고 생각해. -278쪽
나는 내가 금정연 서평가의 글이 왜 유독 좋은지 지금까지 이유를 못 찾고 있었는데, 이 인터뷰집에서 답을 찾았다.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콜라주 같은 글을 쓰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글을 '산만하다'라고 싫어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이렇게 또다시 좋음의 세계를 한차례 백업할 수 있었던 기분 좋은 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