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우주를 설계하고 싶다면

김보영, SF 작가의 사유와 글쓰기

by 담화

작법서를 보는 이유는 대동소이하달 것도 없이 사실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글을 잘 쓰고 싶다, 그게 다가 아닐까. 작법서를 읽는 것도 약간의 중독성이 있는데 생산적인 자기계발서랄까, 그런 책을 읽고 났을 때의 뿌듯함과 더불어 이제 이대로만 하면 나도 넴드의 반열에? (응 아니야 넣어둬)라는 착각을 아주 잠시나마 하게 해주는, 일시적인 향상심에의 충족감을 채워주는 기능성도 있다 하겠다(역시 아님).


나 역시 그런 매우 평범한 중독자 중 하나이기에 수없이 많은 작법서를 봤고 개중엔 주옥같은 조언을 주는 책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미리 말해두어야 할 것 같다. 작법서를 열심히 읽고 거기 나와있는 조언들을 마음 깊이 새겨두는 것, 대단히 도움이 된다. 단 읽은 만큼 썼다는 잔인하고 현실적인 전제를 곁들였을 때나 유효하다는 말도 덧붙여 둔다.

여하간 요점은 그래서 진짜 웬만한 건 다 봤다고 싶었는데, 이것이 무슨 일이지요. 아침마다 습관처럼 둘러보는 신간목록에 다른 사람도 아닌 김보영 작가의 신간이 떡하니 올라와 있는 것이다. 제목 하여 「SF작가의 사유와 글쓰기」.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705295


이것은 10 연속 뒤구르기하며 봐도 작법서의 제목이 아닌가… 주문 가시죠. 카드값, 지금은 몰라. 다음 달 5일이 되면 그때 가서 비명을 지르기로 하면 되는 것이다 (미리 이웃집에 심심한 사과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김보영 작가는 게임업계에서 오래 일하셨으며 SF작가로 데뷔한 이후 전무후무한 작품들을 내놓고 해외에서도 전설 같은 이름을 휘날리셨으며 아무튼 오만 찬사를 다 갖다 붙여도 아깝지 않은 SF작가다. 한 업계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가 단돈 17,800원에 SF작가로서 살아온 세월 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다 풀어준다는데 그 돈을 아깝게 여기면 안 되는 것이다 (업계 종사자로 한정 짓도록 하겠다). 여하간.

가독성이 좋아서, 진짜 너무 과하게 좋아서 거침없이 읽어나가게 될 테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줄 한 줄 밑줄 긋고 되뇌며 읽어야 할 가르침이 행마다 넘친다 (이쯤 오면 이 사람 팬심이 과하군, 이라고 생각하셨을 텐데 맞게 보셨다, 훌륭한 문해력을 가지셨다). SF/FAN 계열 장르의 작법서도 국내에 나와있는 건 거의 다 읽었는데, 과장이 아니고 단 한 권을 읽겠다면 감히 이 책을 선택하시라 하겠다. SF를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훌륭한 SF를 쓰는 데 늘 실패해 왔다면, 그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SF 쓰기 입문자가 공통적으로 저지르는 실수의 포트폴리오를 어째서인지 모를 대리수치감을 느끼며 열람하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SF를 사랑했고 사랑하며 앞으로도 사랑한 나머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SF적으로 형상화하는 데까지 마음이 뻗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보시기를. SF작가로서 사는 일의 희로애락을 간접체험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쓰고 싶은가.
당신의 수명이 일 년쯤 남았고 남은 생에 딱 한 편의 글만 낼 수 있다면 오늘, 바로 지금 무엇을 쓰고 싶은가. -19쪽


수없이 많은 날카로운 조언과 다정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내게 가장 오래 남은 말은 작가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당신은 몰이해 속에서 살겠지만 행복할 것이다. 글쓰기가 그렇다. -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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