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을 찾으세요, 꼭

조경국, 책, 읽는 재미 말고

by 담화

인간은 재미를 추구하는 동물이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진리에 가까운 진실이다. 길게는 삶에서, 짧게는 매일매일의 삶에서 재미(+의미)를 추구했기에 이만큼의 문명을 일굴 수 있었다고 (적어도) 나는 믿고 있다.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재미있는 일(혹은 취미)을 하나쯤 키워놓는 게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과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거 진짜 중요한 건데 왜 아무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지 않는지 정말 모르겠다… 내 나이쯤 되고 보면 자기가 재미있어하는 일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삶의 질은 심각한 수준으로 차이가 난다. 일정한 수입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데, 그만큼 중요한 게 사는 재미라는 것. 드라마에 꽂히면 어떻고 아이돌에 꽂히면 뭐가 어떻단 말인가. 그게 내게 (당연히, 도덕적인 선 안에서) 즐거움을 주는 게 중요한 거지.


지인 중에 아이돌 덕질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10년이 훌쩍 넘게 봐 왔지만 요즘처럼 행복해 보일 때가 없다. 순수하게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내게 그 ‘우리 애’ 사진을 보낼 때만 제외하고 ㅎㅎㅎ 미안해 운아가 내가 너한테 무슨 유감 같은 건 절대 없단다).

무협만 파는 친구는 또 어떤가. 무협의 고전이자 경전이라 할 만한 작품은 기본이고 최근의 플랫폼에서 연재되는 작품들도 독파한 놀라운 독서력을 자랑하는데 본인이 즐겁게 읽은 작품 브리핑을 가볍게(?) 할 때의 목소리는 통통 튄다. 뭐, 나는 사실을 고백하자면 책을 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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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책을 신간목록에서 발견했을 때 읽는 재미 말고면 사는 거지 뭐…라고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무려 스무 가지의 재미가 더 있었다는, 놀랍고 충격적인 사실.

목차에 따르면 이 스무 가지 재미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책 냄새 맡는 재미

2. 이 빠진 시리즈 채워 넣는 재미

3. 책갈피 수집하는 재미

4. 사인본 수집하는 재미

5. 필사하는 재미

6. 책싸개하는 재미

7. 책 속 메모를 발견하는 재미

8. 책테크의 행운을 만나는 재미

9. 책방과 도서관을 찾아 여행하는 재미

10. 작가를 직접 만나는 재미

11. 서평 쓰는 재미

12. 문학관과 기념관을 찾는 재미

13. 영화 속 책을 찾는 재미

14. 책 선물하는 재미

15. 오탈자 찾아내는 재미

16. 남의 서재 구경하는 재미

17. 망가진 책 고치는 재미

18. 초판본, 절판본 구하는 재미

19. 북 페스티벌 구경하는 재미

20. 책 숨겨 놓는 재미


이 중에서 아주 격하게 공감하는 재미는 바로 16. 남의 서재 구경하는 재미인데 책을 좋아하는 지인을 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빽빽한 책꽂이를 하나 이상 가진 사람의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강 윤곽이 잡힌다.

그러니까 뭐랄까, 내면의 실루엣을 조금 들여다본 기분이라고 할까.


8. 책테크의 행운을 만나는 재미라면 나도 느껴본 적이 있지만 결국 그 책을 팔지는 않았다. 무려 삼십만 원이라는 놀라운 가격이 형성되어 있던데 그런 책을 이제는 절대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잠시 경악을 금치 못하다가, 도로 조심조심 꽂아 넣고 삼십만 원, 을 몇 번 중얼거린 추억만 간직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출판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겠지만, 출간된 지 5년도 안 된 책도 절판이 되기 일쑤라 한 번 집에 들인 책을 반출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이별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아찔한 기분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서. 그러다 보니 집은 사람 사는 곳인지 책이 사는 곳인지 알 수 없는 꼴이 되기 일쑤이고 달에 한 번 눈물을 머금고 책장을 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렇게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나도 로또 맞게 해 주세요. 고양이 빌딩 나도 갖고 싶은데. 고양이 빌딩이 안 되면 파이아키아… (망상은 적당히)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읽는 재미’를 제외한 책의 재미를 생각하다 보니 내게도 몇 개가 있다.


방금 말했듯 그중 원탑은 사는 재미인데 이건 책 좋아한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거기에 매일 아침 여섯 시마다 덜 떠진 눈으로 서점 앱을 켜서 오늘의 신간 목록을 체크하는데 그중 눈길을 당기는 책은 무조건 일단 보관함으로 보내 놓고 아침 커피를 때려 부은 뒤 맑은 정신으로 목차와 책 소개를 다시 자세히 읽는다. 거기서 구매와 나중에 빌려볼까… 가 정해지는데, 간혹 기다리고 있던 작가의 신작 소식이 뜨면 그날은 하루 종일 길 가다 지폐 한 장 주운 것처럼 기분이 붕 뜬다. 여전히 어딘가에서 설렘을 느낄 수 있다니 그 또한 얼마나 좋은 일인지.


또 뭐가 있을까.


책장을 새로 정리하는 것. 이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은데, 있다. 내게도 장서를 목록화한다면 큰 카테고리 몇 개가 잡히는데, 분야별로 정리해 둔 책이 권수가 늘어나는 건 자연의 법칙 같은 것이기 때문에 수시로 책장을 털고 다시 꽂아줘야 하는데 이게 이해가 안 될 수 있겠지만 의외로 굉장히 재미있는 작업이다. 노동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5. 필사하는 재미와는 조금 다른데, 내게는 인상적인 문장을 옮겨 적는 버릇이 있다.

그건 꼭 매우 감동적인 울림을 주는 문장만이 아니라 뜻밖의 사실을 가르쳐 주거나 (예를 들면 배수아의 에세이에서 발견한 것인데, 스탕달의 필명이 독일 슈텐달의 이름을 딴 것이라든가) 반짝이고 사라질 뻔했던 아이디어를 품고 있는 것들. 그런 것이 주로 문장 낚시질의 대어가 된다. 그런 노트가 여러 권 되는데 문제는 다시 펼쳐볼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는 것… ★ 인생이 그런 거지 뭐…


여하간, 다른 독자들의 읽는 재미 말고 다른 무슨 재미를 가지고 있는지 저절로 궁금해하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재미있었어요.


나는 마흔이 되어서야 무얼 하고 싶은지 조금이나마 깨달은 터라 다나카 미호 씨처럼 좀 더 이른 나이에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종종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와 운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일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 있다면 그만큼 실패할 확률도 높고 나중에 후회할 가능성도 크니, 실패와 후회를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맷집도 필요하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으니, 너무 늦었다 오래 자책할 필요는 없으리라. -67쪽


여기에 크게 공감했다. 참고로 여기에 한 줄 더 덧붙이자면, 선생님들, 마흔도 안 늦어도. 하나도 안 늦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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