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얽힌 썰 하나쯤은,

오리가미 교야 외, 호로요이의 시간

by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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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요이. 제목에도 등장하는 이 명사가 굉장히 귀에 익었다.


얼핏 기억하기로는 무슨 술의 이름이었는데. 그런데 특정 브랜드의 제품명을 이렇게 앤솔로지 제목에 쓸 수가 있나? 의문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내용을 대강 살펴보니 소재가 술인 것 같은데, 그럼 호로요이를 생산하는 회사에서 작가들에게 제안해서 만든 책이라는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결국은 호로요이를 다시 찾아보기에 이르렀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호로요이는 상품명이기도 하지만, ‘살짝 취한다’는 뜻도 있다는 것을. 와, 제대로 속았네.


뭐 어쨌건, 이쯤 되면 이 앤솔로지의 테마가 술이라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참여 작가는 모두 다섯으로, 낯익은 사람도 있고(이를테면 「기억술사」의 오리가미 교야, 「버터」의 유즈키 아사코, 「낮술」의 하라다 히카) 아이코, 처음 뵙겠습니다, 싶은 작가도 있다.

매우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단편이 술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놀랍게도 주종은 조금씩 다르다! 위스키(봉봉). 브랜디, 일본 전통주, 칵테일 등등. 심지어 술이 아니라 ‘반주’가 소재인 작품도 있고. 물론 모든 작품이 제가끔의 스타일과 맛이 있지만, 테마인 술과 가장 어울리는 작품이라면 당장에라도 <식당 ‘자츠’>를 꼽겠다.


하라다 히카의 작품을 읽다가 언뜻언뜻 권여선을 떠올린 건 나만일지도 모르겠지만 뭐랄까… 술을 대하는 호쾌한 태도가 권여선 작가 닮았다…라고 종종 생각할 때가 있었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식사 예절이 엄격한 주인공이 식사에 종종 반주를 곁들이는 남편의 식습관을 견디다 못해 결국 가정은 파탄 일보 직전에 이르고, 주인공은 지극히 소설적인 우연 때문에 남편이 종종 찾곤 하던 동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고… 이후는 생략.


그런데 이 식당에서 일하게 된 주인공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처음으로 식사에 술을 곁들이게 되는데, 이 경험이 결말에 잇닿으면서 주는 안타까움이 정말 백미라고 할 만하다. 그치… 어떤 깨달음은 꼭 아파진 다음에 찾아오기도 하니까. 그렇긴 한데, 잘 쓴 글은 그 경험을 지독하게 주인공의 입장에서 추체험하게 하니까.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는 못 할 것 같다.


유즈키 아사코의 <bar 기린반>도 아주 재미있었는데, 코로나 시절 가족 아닌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그리운 이들의 마음과 하루 종일 아이들과 집에서 씨름해야만 하게 된 젊은 부모들의 애환을 기막히게 (플러스 현타가 오게) 섞어낸 이야기엔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여기에 칵테일이란 술을 가져다 붙인 감각은 또 어떻고. 온종일 아이들 돌보는데 진땀을 흘린 부모들이 집에 있는 재료로 리프레쉬할 수 있도록 도운 바텐더 선생님의 온라인 클래스, 나 같아도 얼마라도 신청했을 것 같단 말이지.


그러고 보면 누구나 술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을 텐데. 누가 전국민 술 백일장 같은 건 안 열려나. 그런 공모전이라면 심사위원도 아주 즐겁게 응모작들을 읽을 수 있을 터다. 분명히.


˝지금도 행복하니까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더라면, 그 사람과 있는 것을 선택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한다고 했어요. 그분 얘기를 할 때 사쿠라 씨는 슬퍼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 언젠가 사쿠라 씨가 그분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56쪽
“……사야카가 선호하는 식사법, 음주법이 있듯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도 있어. 어느 쪽이 허락하고 말고 할 게 아니야. 어째서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거지.”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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