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네이먼, 어슐러 K. 르 귄의 말
누군가에게 대화를 청할 때, 그 누군가가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주억거릴 만큼 이름이 알려진 사람일 때, 무엇을 물어야 할까.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되리라 예상하는 것이 좋을까, 혹은 아무 예상도 하지 말아야 할까. 어디까지 물어봐도 좋을까, 또는 어디에서 선을 긋는 것이 좋을까.
소위 인터뷰라 하는 것은 인터뷰이가 널리 알려진 인물이면 인물일수록 난이도가 급상승하게 마련이다. 그에 관해 알려질 만한 것은 이미 몽땅 알려져 있을 것이 뻔하다. 혹은 수차례 반복됐을 질문 역시 인터뷰이의 피로도를 가중시킬 게 뻔하다. 더불어 인터뷰어의 불성실함 때문에 인터뷰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급하락 하며 종래에는 인터뷰라는 형식의 만남의 기회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거나 줄여나가는 계기를 만드는 역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네임드 of 네임드와의 대화란 이 얼마나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도전인가. 그렇다고 피하기에는 너무나 귀하고 감사하고 또 황송하기까지(!)한 기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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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이 인터뷰를 진행했던 데이비드 네이먼의 소회가 드러나는 서문은 인터뷰 본문만큼이나 소중하다. 뭐, 우리 대부분이 그런 경험이 있지만, 막상 누군가가 떠난 뒤에야 느껴지는 그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고 휑해서 종종 가슴이 시리지 않던가. 네이먼이 대작가와의 이별을 실감하며 쓴 문장은 마치 독자로 하여금 가까운 이를 잃은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나는 어슐러의 글씨를 다시 보았다. 열정적인 좋아요! 와 사무적인 제 생각은 다릅니다를. 그러다 보니 어슐러가 이 책에 얼마나 온전히 참여하고 있는지, 얼마나 눈앞의 일에 철저히 임하는지가 보였다. -7쪽
한 사람의 됨됨이는 그도,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의 행동에서 마치 워터마크처럼 떠오르곤 한다. 글보다 말에서는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글은 정제할 기회가 주어지지만 말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말은 평소 그가 얼마나 말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인지를 역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하지만 몸 안에서 글이 울리면, 스스로가 쓰는 글을 들으면 올바른 리듬을 들을 수 있고, 그러면 문장이 깔끔하게 이어지는 데 도움이 됩니다. -18쪽
이미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빚고 있는 사람이라면 글로 쓰건 말로 하건 결과물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경지는 도대체 어떻게 얻느냐 그게 문제 아닐까 결국은. 어쩐지 교과서 위주로 예습 복습 철저히, 다독 다작 다상량이에요, 하는 대답이 기다리고 있을 확률이 100%겠지만.
달리 말해 이건 생각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흐르는지와도 관계가 깊을 것이다. (나처럼) 생각이 이리 튀었다 저리 튀었다 해서 도ㄹr2처럼 핑퐁을 치다 결국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사람이 하는 말이 설득력을 가질 리 없다(가져서도 안 된다). 그러나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사람의 태반은 이미 질문을 듣는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구심점으로 삼는 논리의 구조를 탄탄하게 설계하고 있겠지.
논리의 구조를 세우는 능력이 SF장르에서는 주요 인물 급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계관의 정합성을 만드는 일과 관계가 없을 리 없다. 앞뒤가 안 맞고 규칙이 없는 세계에서 서사가 작동할 리도 없다. 그러니까 이 책, 혹은 어슐러 르 귄의 말을 읽어나가면서 새삼 재확인하게 됐던 건 그가 철저하게 장르적인 작가였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제약이라 느꼈을 규칙을 최대한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끔 돕는 도구로 여길 만큼 자유롭고 출중한 작가였다는 점도 또 다른 발견이라 할 수 있겠다.
빌라넬 비슷한 걸 쓰면서 빌라넬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요. 규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어떻게든 규칙을 따르면서 뭔가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필요성 자체가 뭔가를 제공한다는 걸 알게 돼요. -79쪽
스토리가 아니니 스포일러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가르침이었다고 생각한 것은 다음의 문장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책에서 건질 수 있는 가르침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정말 다른 뭔가, 틀림없이 인간이고 감정적으로 대단히 이해할 만하지만 정말 다른 뭔가와 접촉했다는 감각이야말로 소설이 해주는 위대한 일 중 하나죠. -118쪽
이 비슷한 이야기를 김영하 작가님도 한 적이 있다. 정말이지,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소설의 귀중한 역할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