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도 미래도 보이지 않을 때

천선란,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by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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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은 어떤 식으로 우리를 방문할까.


방구석 히키코모리의 기운을 폴폴 풍기던 시절, 그런 질문을 안고 살았던 계절이 있었다. 심히 중2스럽지만, 실제로 중2 때 저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고 그보다는 +10년쯤 되었던 때에 품고 살았던 것 같다. 종말의 씨앗은 어디에나 있고, 누군가가 거기에 고의로, 혹은 우연히 물을 주고 가는 바람에 마치 잭의 콩나무처럼 종말은 빠르고 거대하게 올 거라고 생각했다. 종말은 절대로 인간에게 대비할 여유 따위는 주지 않을 거라고. 애초에 그렇게 너그러워서야 제대로 된 종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따박따박 외쳤더랬다. 누구나 한 번쯤 거치게 되어있는 정신적 해츨링의 시기에, 그렇게 세상의 중심에서 종말을 외쳤……


이따위 세상, 싹 다 멸망해 버리고 아름답게 심플해져라.


그런 생각을 하고 다녔던 뒤떨어진 20대 사춘기를 보낸 김담화는 이제는 재앙적 아포칼립스는 2차원의 세계에 영원히 봉인되어 있어라를 되뇌는 시시한 어른이 되었다. 그 어른도 사실 좀 옛날에 되긴 했다.


아무튼 현실에 아포칼립스가 닥친다면 가능한 한 그 종말의 현재진행형은 빠르고 파괴적이기를, 그래서 부디 홀로 남아 픽션적으로 외롭고 고독하며 인간성의 존재를 오래도록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마땅할 터다. 그러나 픽션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잖은가. 아포칼립스를 가동합니다, 딸칵. 버튼이 눌리는 순간 누군가는 반드시 이 재앙에서 오래도록 생존하여 배틀로열보다 더한 생존게임을 지속할 것이다. 그리고 페이지, 혹은 화면 바깥의 관조자는 손에 땀을 쥔 채 그의 분투를 아슬아슬한 기분으로 지켜보겠지.


그렇게 다양한 아포칼립스를 즐기는 사이 어느새 내게 아포칼립스 장르는 다시 이분화의 과정을 거쳤는데, 하나는 [거의] 홀로 남은 인간을 정신적 사막으로 내몰아 그의 내면을 파괴하거나 혹은 침잠하여 아포칼립스와 하나 되게 하는 장르로 분화했고, 다른 하나는 내면이나 정신적으로 고갈되어 가는 측면보다는 신체적 생존 게임에 몰입하게 하는 장르가 되었다. 물론 두 하위분류는 명확히 나뉘는 것은 아니고, 그저 어느 쪽에 더 무게중심이 실리느냐 하는 혼합비의 문제일 뿐이지만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자, 그럼 같은 아포칼립스로 묶이더라도 이중 어느 한쪽으로 각자의 취향이 나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는 명백히 전자의 품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쪽에 속한다. 천선란 작가님의 이 작품이 궁금해서 들어오신 분? 여기예요, 어서 오세요.


연작소설이라 함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물론 깊이 들어가자면 그 밖에도 함께 나누는 것들이 더 있겠지만 잠시 잊겠다…). 그러므로 별개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이 재난적인 사건이 일어난 시기와 공간이 같고, 더러는 앞선 이야기의 주인공이 뒤따르는 이야기의 조연으로 등장하는 일도 곧잘 발생한다. 이 소설이 딱 그에 부합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첫 번째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 회상이 왔다 갔다 하는 통에 처음엔 이해하기가 조금 난해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 진입장벽만 조금 견디면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 정말이지 읽기를 잘했다고.


화자 옥주는 우주선의 동면 캡슐에서 갑작스레 눈을 뜬다. 자신이 왜 지금 깨어났는지도 알 수 없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선체의 인공지능은 꺼진 상태다. 동료들도 보이지 않는다. 어쩐지 불길하게 느껴지는 적막과 불안을 뚫고 가까스로 끊어진 전원을 발견한 옥주는, 그때서야 다시 전원이 들어온 인공지능 키사로부터 믿을 수 없는 정보를 받는다.


동료들이 좀비화되었고, 생존자는……그리고 좀비가 된 것이 분명한 동료 중 한 사람에게서, 믿을 수 없는 어떤 반응이 읽힌다는 AI의 보고 앞에서 옥주는 무엇을 하기로 결정할까.


그야말로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인데.


하필이면 왜, 그 ‘무엇’을 하기로 결정한 걸까?


어떤 이유로 특정한 무엇을 하기로 선택하는 사람을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그가 유달리 선명하게 들여다보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가 있다.

무엇과 왜,를 묻는 일은 종종 터무니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익명의 누군가에게 선명하게 초점을 맞춘다.

동기와 목적은 저절로 그의 전사 prehistory와 미래를 끌어온다. 그것을 너저분하게 서술하지 않고 중심부에서 흐르는 이야기와, 인물의 내면과 버무려 전달하는 것이 작가적 역량일지도 모르겠다.


옥주의 이야기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뒤따르는 두 편의 이야기들 역시 저릿한 이별을 당하고 남은 두 화자가 이야기로 자신을 남기고 떠난 사람을 곱씹으며 현재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희망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의 사랑이 그들을 살려놓았고 또 살기를 바라고 있으므로,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몰라도 일단은 나아간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사랑이 너무 크기 때문에.


박정민 대표가(아직 올해 안 지났으므로, 무제 대표로 부르고 싶다) 쓴 추천사에서 [묻고 싶다. 천선란 자네는 대체 어떤 사랑을 해온 것이냐고]라는 문장을 발견했을 때 처음에는 그냥 웃고 말았는데, 이젠 그냥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다. 박정민이란 사람, 구구절절한 감상을 컴팩트하게, 누구나 쳐다보지 않을 수 없게 예쁘게 뭉치는 소질이 대단하구나. 아마 이 책을 다 읽은 사람은 똑같은 게 궁금해지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에 ‘소원’이라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수학 능력 시험까지 남은 몇 개월 동안 그렇게 코피 쏟으며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껏 살면서 누군가 내게 소원을 빌어본 적이 처음이어서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뤄주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대학에 들어가 나는 공대생이 되었고, 묵호는 자연대생이 되었다. 묵호의 소원을 이뤄준 다음에야 알았다. 묵호가 바랐던 소원은 나를 살리는 것이었다. 기왕이면 멋지게. -108쪽


“안 갈 거야? 그럼 후회할 텐데. 사람들이 밉더라도, 밉다고 포기하지 마.”
“아빠한테 배웠니?”

소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아빠를 두었다고, 생각했다. 얼굴도 모르는 소녀의 아빠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이 소녀를 바라보는 시선에 담겨 있었고 수치심이 그 감정을 꿰뚫고 있었다. -191쪽


그리고 거짓말처럼 아침부투 우중충하게 하늘을 뒤덮고 있던 구름이 지나가면서 햇살이 내리쬈고, 햇살 한 줄기가 구멍 난 강당 지붕 틈으로 들어와 아내의 얼굴에 쏟아졌다.
아, 그게 내 인생의 명장면인데.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고, 평생 나만 보고 싶은.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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