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나왔던 그 시절

이은용, 그게 너라면

by 담화

좋은 청소년 소설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다른 것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주인공의 성장이 보여야 한다, 결핍이 성장의 동력이 되어야 한다든가, 주인공의 성격이 10대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었다. 10대를 주요 독자로 삼으면서 10대의 심리적, 현실적 삶과 유리되어 있는 이야기를 훌륭한 청소년 문학으로 꼽을 수는 없을 터다. 그러니 얼마나 어려운가, 청소년 소설을 쓰는 일은.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 시기와 이별한 지가 아무리 적어도 5년 이상은 되었을 텐데. 아예 겪어보지 못한 일을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겪어보지 못한 일을 특정한 인물의 시선과 가치관을 통해 상상하는 것은 처음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미 충분한 경험치가 쌓인 시기를 아예 백지화하고 처음 겪는 것처럼 재구성하는 일은 번번이 '그거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하는 라떼적 감수성의 훼방을 받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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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 터다. 청소년 소설을 읽을 때면 늘 작가들에게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자꾸만 이야기 속의 주인공에게 참견하고 싶어지는 어른의 자아를 찍어 누르며 때로는 한심하고 안쓰러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텐데. 결국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뜀박질을 시작하는 어린 분신을 응원하며 펜을 놓는 심정은 다른 어떤 이야기를 쓸 때보다 울컥할 것만 같다. 부모의 심정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계속해서 그 아이가 잘 살아가기를, 그곳에서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매듭짓겠지.


청소년 소설은 대부분 장편이라 단편 모음집이 조금 낯설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또 맺음 지어질지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사실을 고백하자면 약간의 테크닉을 전수받을 속셈으로 책을 펼쳤다고나 할까.


이야기의 길이에 따라 갈등은 고무줄처럼 제 몸을 키웠다 줄였다 한다. 작은 이야기의 갈등은 비교적 사소하다. 청소년의 이야기니만큼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면 좋겠다는 아주 작고 사소한 소망 같은 것. 그러나 이것은 마치 당의 sugarcoat를 입힌 케이크처럼 누가 보아도 예쁘고 귀여운 고민이다. 실제로 그들이 겪는 갈등은 훨씬 거친 날것일 테다.


그 안에서 나는 앞으로의 오늘을 전혀 그리지 못하고 있었다.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취직은 될까, 결혼은 가능할까. 그보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는 있나. 꿈을 꾸고 그걸 이루며 살아가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아침에 눈을 떠도 어두운 세상이라면, 눈앞의 것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하는 걱정 때문에 밤새 뒤척인 날도 있었다. 악몽에 시달릴 때도 많았다. 그러다 보면 나는 어디에든 화살을 돌리고 싶어졌다. -26쪽
너도 나와 같다면 어떨까. 너도 나를 궁금하게 여긴다면.
나는 국어랑 영어를 좋아하고 가방 안에는 시집도 한 권 있어. 내 마음과 닮은 문장을 읽으면 위로가 되거든. 음악 들으면서 걷거나 자전거 타는 것도 좋아해. 달리기는 못해도 피구를 잘하고 야구랑 축구 룰도 다 알아. 그리고 나는...... -50쪽


지금의 10대는, 내가 지나왔던 그 시절보다 더 외롭고 팍팍한 저마다의 사막을 건너야만 하는 때를 보내야만 한다. 가끔은 어른들이 청소년 소설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 애들이 얼마나 힘겹게 성장을 견디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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