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감동도 노력이 필요하다

김희선, 빛과 영원의 시계방

by 담화

SF의 근사한 점이자 머리 아픈 점은 이것이다. 아무리 작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조그만 이야기 한 편이 품고 있는 세계는 결코 작지 않다는 것. 한 편의 이야기로 만나고 헤어질 때까지 엿본 것으로 족하기에는 너무나 장대한 하나의 우주가 그 안에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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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공상과학소설이라 불렸던 이 장르는 이제 종종 사변소설이라고도 불린다.

사변소설 speculative fiction이라는 말은 1947년에 하인라인이 처음 썼다고 하는데, 어떤 의도에서 썼는지... 를 내가 알 도리는 없지만, 판타지 장르와 선을 긋고 싶어 했던 건 아닐까...라고 막연하게 추측해 본다.

현실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시시각각 새로운 판단 기준을 요구하는 이슈를 보도하기만도 급급하다. 신기술과 급격한 사회 변화로 인해 배태되는 문제들은 하나같이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숙고를 요구한다. 심지어 그 숙고에 주어지는 시간은 지극히 짧다. 이럴 때 SF는, 출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회의 모델을 제시하거나 놀랍게 발달하는 신기술의 어두운 측면을 조명하는 등의 방식으로 의식의 눈높이를 한껏 끌어올리는 데 일조한다.

달리 말해 시의적절하게 제기된 가설 내지는 질문에 대해 순수하게 논리적인 탐구만으로 밀고 나가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의 논쟁거리를 미래나 가상의 세계로 옮겨 놓음으로써 문제 자체에 주목하게 하고, 그로부터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인과관계를 탐색하거나 그 결과를 제시하는 일은, 독자에게 해당 이슈의 긴급성과 위험성을 환기하는 효과를 지닌다. 뿐만이 아니라 서사를 이끌고 나가거나, 끌려가는 인물의 모험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소설 전반을 지배하는 가설을 검증하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주인공의 운명보다 세계의 시스템과 그것이 움직이는 방식이 훨씬 중요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위 사변소설을 읽어 나가는 동안, 주인공의 자리를 대신할 때조차 변하지 않을 구조를 포착하게 된다. 그러나 그 동일한 시스템이 언제나 같은 결과를 내놓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나아가 독자는 그 차이가 과연 결론의 변화로까지 이어지는지, 혹은 끝내 변하지 않는 명제가 존재하는지를 수차례 검증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이야기하는 게 다 달라서요... 어떤 이들은 그가 죽었다고 했고, 어떤 이들은 그가 다른 도시에서 시계방을 차렸다고 했습니다. 누군가는 그가 자연인이 되어 산속에 홀로 살고 있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가 그저 홀연히 사라져 버린 거라고 했습니다. 결국 나는 그 모든 버전이 각각의 진실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길이 반드시 한 갈래로만 뻗어 있다고 믿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길은 여러 갈래일 수 있고 한 사람이 동시에 그 길을 모두 걸을 수도 있는 거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43쪽
이런 질문을 던지며 학생들을 둘러보던 순드베리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그리고 오직 인간만이 가지는 특성인 애매모호한 망설임에 휩싸여 있었다. 1과 0 사이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은 기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95쪽
내가 말하려는 건 이거야. 오래전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라는 사람이 읊은 시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공간에 울려 퍼졌어. 그건 '시'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정보이면서 동시에 소리의 파동이지. 그리고 그 파동은 너의 귀를 통해 들어가 뇌를 자극했어.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건 네 안에 남아 있을 거야. 즉 너의 미래를 바꾼 셈이지. -117쪽


앞에서 실컷 장대함(?)에 대해 이야기해 놓고 갑자기 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세계의 구조와 구동 방식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사변소설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소설집이 보여주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달리 말하자면 세계의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작품의 세계관과 인물의 충돌이 불러일으키는 질문이 끝까지 소진되지 않고 살아남는가, 아닌가의 문제랄까.

어떤 설계도는 이야기와 함께 산화해도 상관없지만, 아니 오히려 권장되지만 끝끝내 닳아 없어지지 않고 남아 오래도록 울려야 하는 것이 있다. 좋은 SF, 훌륭한 사변소설이란 대체로 그런 것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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