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게 과거에 빠져들어

김서해, 여름은 고작 계절

by 담화

그런 글들이 있다. 분명히 픽션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걸 아는데도 도리없이 그 세계 속으로 내 발목을 휘감고 잡아당기는 글이. 힘이 너무 세서 도저히 떨쳐내지 못하고 어느새 숨죽이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망하면서 죄책감에, 혹은 새삼스럽게 되살아나는 과거의 잔영에 휩싸이고 마는 일이 종종 벌어질 때가 있다.


나는 10대의 어떤 시기를 북미에서 보냈다. 한창 예민한 그 시기에, 말이 어느 정도 트이기 이전까지 거의 언어적 장애인 취급을 받으며 지냈다. 나에 대한 타인의 시선과 판단을 거의 동물적 본능에 가깝게 감지하던 시기였으므로 당시의 기억은 나의 정체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학교에 가기 위해선 온갖 접종 증명과 건강 진단서를 필수로 제출해야 했으므로, 나는 의사들의 문진을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병원 이곳저곳으로 끌려다닌 기억을 여전히 또렷하게 갖고 있다.

요즘처럼 모두가 스마트 기기를 휴대하고 다닐 때도 아니었고, 그들의 언어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어린 이방인에게 그리 너그럽지 못한 시대였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기억은 이후의 좋은 기억들 덕분에 지워졌지만, 단 하나 남아있는 병원에서의 장면은 다음과 같다.

방사선실에서 내게 몇 번이고 같은 말을 거듭 되풀이하던 의사(미국 가기 전 즐겨봤던 외화의 두기 하우저를 닮았다는 것까지 기억난다)는 마침내 온갖 짜증을 내며 쿵쿵 울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나를 휙 돌려세워 촬영판 앞에 밀어붙였다. 아, 그런 뜻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왈칵 울음이 밀려 올라왔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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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왜 하느냐면, 이 소설 속의 화자 제니와 화자의 친구 한나가 겪는 일이 상당 부분 내가 실제로 겪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두고 가장 상처받기 쉬웠던 시절에 겪었던 모멸감의 대부분은 언어와 관련된 것이었다. 언어 더하기 이방인의 문화라고 하면 정확하겠다. 지금이야 K-컬처가 글로벌 대세라지만 당시는 아니었다.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 자체를 낯설게 여기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이 이야기는 회고록이자 반성문이다. 나는 타지에서의 삶과 고향에서의 삶, 내 친구 한나에 대해 쓰려 한다.
(…)
과거는 시간을 통과하면서 매번 다른 모습이 된다. 기억들은 계속 변화한다. 하지만 내 이야기에는 바뀌지 않는 단 하나의 시선이 있고, 나는 그것을 빈틈없이 헤아리고 싶다. -7쪽


이러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서두는 이 소설이 결코 10대들의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넌지시 암시한다.


화자인 제니는 자꾸만 겉돌게 되는 자신의 위치가 싫어서 악착같이 노력해서 자신의 사회적 자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면서도 포식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여왕벌 소녀들의 무리에 어떻게든 들어가고 싶어서 기회를 엿본다. 그게 그리 좋은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같은 10대의 입장에 자신을 놓는 순간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하는 어른이든 뭐든, 제니의 마음을 비난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제니에게 갑자기 짐덩어리 같은 존재가 들러붙는다. 악착같이 제 노력만으로 부표처럼 떠돌아다니기라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언제든 수면 아래로 저를 끌어당길 수 있는 한나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한나는 영어를 열심히 배울 생각도 않고, 자꾸만 제니에게 의존해서 학교생활을 어떻게든 버텨나가려고 하고 제니는 그런 한나가 짜증 나고 짐스러우면서도 매정하게 떨쳐내지 못한다.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도 못하면서 제 이름 ‘한나’를 영어식으로 ‘해나’라고 부르는 아이들에게 그건 틀린 발음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한나는 학교에서 점차 괴짜가 되어 가고 제니는 그런 한나가 점점 더 부담스러워진다. 빈말로도 유복하다고 할 수 없는 가정에서 힘겹게 생존해 온 제니는,


한나가 뭐라고 말하든 인정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고 익힐 수 있는 환경에서 매주 여섯 시간 이상을 영어 학원에서 보냈다면 아무리 놀기만 했다고 해도 자신의 이름이 왜 한나이고 해나가 아닌지는 표현할 수 있어야 했다.
나는 점점 화가 났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썼으면서 어떻게 영어를 그따위로 해.
어떻게 주장만 하고 해명할 노력은 안 해. 어떻게 ‘하지 마’라든가 ‘도와줘’ 같은 말도 못 해. 왜 네 마음이 다치게 놔둬. 어떻게 너 하나를 간수 못 해. -77쪽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너그럽지 못한 마음이라 해도 누가 여기서 제니를 나무랄 수 있을까.

부모에게 단 한 번도 의지할 수 없이 스스로 제 자리를 만들어 온 제니로서는 한나처럼 태평하고, 모든 것이 주어졌는데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한심스럽고 못 견디게 답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한때 한나였고 제니가 되어 본 적이 있어서 두 아이의 마음을 모두 알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아도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흡사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도 알고 뭘로 봐도 게으른 변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러니까 아이들인 것이다.


그런 마음과 한나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이 뒤섞여서 기어이 불러일으킨 일에, 제니의 책임은 얼마나 있을까. 또 한나의 책임은? 어떤 비극이 벌어진 이후 당사자들은 무한히 '그때 내가, '라는 조건문의 노예가 되어 인생을 저당 잡히기 일쑤다. 내가 그때 이렇게 했으면. 저렇게 했으면, 평행우주를 바라는 저주의 루프를 깨고 나오는 일이 도대체 인간의 연약한 정신으로 가능한 일일까.



이 소설의 훌륭한 점은, 모든 훌륭한 소설이 다 그렇지만 완전히 상반된 입장에 놓인 인물들의 마음을 바닥까지 선명하게 비추어 낸다는 점이다. 답답하지만 너그러운 한나와, 약삭빠르지만 매정하지 못한 제니의 모습을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씩 가지고 있다. 인간은 그리 단순하지도, 납작하지도 않은 탓이다. 그러니 내가 제니일 때는 한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한나일 때는 제니를 다독여 주고 품어주면 되지 않겠는가. 이 또한 너무 순진한 발상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생각이라도 떠올리지 않기는 퍽 힘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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