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호,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아아아, 진짜... 정말... 제가 선생님을 감히 여기에서 호명해도 되는 것인지 심장이 떨려 죽을 것 같습니다. 아니, 죽으면 안 되지만, 아무튼, 제가 나름 강심장인데 겁나게 떨리네요.
안녕하세요, 무현샘.
선생님의 존함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숙연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그도 그럴 것이, 선생님은 그냥… 인류애의 화신 같은 사람이잖아요. 네? 모르신다고요?
아, 네. 선생님은 그렇게 대답하실 것 같긴 해요. 그냥,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선 선생님처럼 행동했을 거라고.
아니거든요. 아니에요. 아무도 그렇게 안 해요.
기억 못 하세요? 블라디미르가 그랬잖아요. 안 그런다고.
정말이지 언제라도 똑 부러질 것처럼 올곧기만 한 선생님의… 뭐라 할까요. 인생철학. 좌우명… 뭐라고 해도 부족함이 느껴지지만 아무튼 선생님의 그 존경스럽기까지 한 양심의 나침반 같은 믿음. 때론 고구마 백만 개(백개도 아님에 유의)를 꾸역꾸역 삼킨 것처럼 갑갑하고 때론 눈물겹고 또 때론 탄식하게도 만들었던 반듯한 품성은 여러 번 가슴을 치게 하지만 결국은 수많은 사람을 무릎을 꿇게 만들었잖아요.
저는 정말이지 선생님처럼 한결같은 사람은 처음 본 것 같아요.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나도 안 변할 수가 있어요.
어쩌면 당연하게도 조금씩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그 끔찍한 세계에서 어떻게 그렇게까지 혼자 강직할 수가 있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심해 of the 심해 해저기지의 숙소에서 아침에 눈을 떴는데, 그 숙소에 바닷물이 들이치고 있는 긴급상황을 선생님이 자각하는 순간부터 이 놀라운 이야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합니다.
이제야 고백하건대 저는 이 소설을 읽어나가는 데 여러 번 실패했었어요.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어린 날 바닷물에 익사할 뻔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해저기지에 바닷물이 빠르게 차오르는 위기 상황에서, 혼자 목숨을 건지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그 찰나에도 더한 약자를 구하기 위해 손을 뻗는 대목을 넘기는 게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제가 간신히 그 위기를 넘기고 완독에 성공했던 건 결국 이 작품을 2년의 시간을 들여 소장본으로 갖춘 덕분이었어요.
웹소설은 아무래도 회차로 끊기기 때문에, 잔뜩 쫄아붙었던 심장이 간신히 다시 숨 쉴 여유를 되찾으면 그 회차가 끝나 있곤 했거든요. 그러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면서도, 아, 다음에. 이건 다음에.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앱을 닫아버리기 일쑤였죠. 그런데 종이책은 아무래도 그렇게 끊기가 쉽지 않죠.
이 드넓은 해저기지엔 8개국에서 파견된 엔지니어들과 연구원들이 함께 지내고 있죠.
완전히 막힌 공간은 아니라도, 사실상 폐쇄 공간에 가까운 기지에서 위태위태하게 지내던 사람들 사이가 순식간에 망가지고 적대적으로 돌변하기에 해수 유입으로 인한 부분 침수 사태는 적절하다 못해 넘친다고 해야겠죠. 이게 재앙이 아니면 무엇이 재앙일까요.
사람들은 순식간에 자기 자신과 자신과 가까운 이들의 안위만을 챙기고 그 밖의 사람들은 아무려나 상관없는 완전한 타인으로 여깁니다. 나와 너. 우리와 너희들. 그리고 나와 우리만이 중요한 이 장소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뭐 여러 의미에서 이질적이긴 하죠…)가 바로 선생님이고요.
대체 이 긴급한 상황에서,
가능하다면, 사람들이 선한 행동들을 통해 서로를 돌보고 도왔으면 좋겠다. -2권, 313쪽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걸까요. 그리고 선생님의 생각은 이윽고 그 유명한 문장에 이르게 되죠.
나는 선의의 순환을 원한다. -2권, 314쪽
지금 생각해도 현실 같지 않다. 양심이나 부끄러움 따위가 없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도 당연하게 가지고 있을 거라 짐작했기에 더 그렇다.
(…)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
그러나 언제나 양심은 내 믿을 만한 나침반이다. 어디서든 길을 잃지 않게 해 주고, 발 뻗고 잘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3권, 275쪽
아니에요, 선생님. 그런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요. 슬프게도 너무너무 많아요. 한숨이 나오도록 많아요.
그런데 한편으론 그런 생각을 해요. 어쩌면 선생님의 이 말씀에 가슴이 시릴 정도로 공감한 사람들이 목이 메고 가슴이 막히는 먹먹함을 견뎌 가며 선생님의 여정에 끝까지 함께했던 게 아닐까 하고요.
선생님의 흔들림 없는(아니 사실은 많이 흔들리고 괴로워했지만) 믿음이 승리하는 걸 보고 싶어서. 종이책으로 읽었지만 결국 다시 연재 플랫폼을 찾아서 산더미처럼 쌓인 독자들의 댓글을 일일이 다 읽었어요. 개중에는 영어로 쓰인 댓글도 꽤 있었어요. 선생님을 응원하고 안타까워하고 그리고 마침내 기뻐하고 같이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보는 게 좋았어요.
답답한 무현샘, 선생님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말들을 읽어가며 그래도 우리는 아직 중요한 것을 잃지 않았구나 생각했어요.
신기하게도 레너드의 협박이 정말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
이 생각의 기저가 뭔지 안다. 나는 옳은 일을 했다는 자신감이다. 나 자신에게 떳떳하면 두렵지 않다. -5권, 400쪽
저는 벌써 일일이 기억도 다 안 나는 사람들과 대립하고 협력하면서 선생님은 하나같이 마음 한구석에 적어두고 싶은 말들을 많이 하셨지만, 가팀 엔지니어 김재희가 사람들은 어차피 다 비슷비슷한데, 왜 당신만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한 대답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인생 한 번 사는데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그래.” -7권, 79쪽
그리고 누구도 누구를 구원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모른다고 해준 말씀도요. 그건 여기에 말하지 않을래요. 흔하고 뻔한 방법이지만, 그 말은 선생님이 한 마음고생 몸고생을 눈으로라도 좇아가고서야 비로소 깊게 울리게 될 테니까요.
고마웠어요, 선생님. 저도 나쁜 기억과 싸우며 읽어야 했기에 결코 쉬운 읽기가 아니었지만 그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읽을 가치가 있었다고, 이런 이야기를 알게 된 건 정말로 큰 행운이었고 감사할 일이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선생님 곁에 ‘잠깐씩이라도’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모두가 지금은 건강하고 안녕하기를 바라요. 노을이도, 바다도.
뱀발.
근데요, 선생님. 제가 수많은 소설을 읽어봤고 남주를 근사하게 묘사하는 수많은 문장도 섭렵해 본 사람이지만, 선생님이 신팀장님을 묘사한 대목을 보자마자 와우,를 내뱉었다니까요.
나는 얼굴을 보자마자 말을 잃었다. 옅은 금발에 턱이 다부진 블라디미르도 잘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잘생김이었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매끈한 이마를 반쯤 덮고 있었는데, 검은 머리카락으로 이마를 반 이상 가렸음에도 보자마자 넋이 나갈 정도로 훤칠했다. -1권, 108쪽
선생님도 보통 이상으로 잘생기셨던데 그런 분(심지어 남자가)이 한눈에 넋을 놓고 ‘차원이 다른 잘생김이다’라고 탄복하게 하는 얼굴은 도대체 뭔 얼굴이야, 하고 매우 궁금해했는데 네… 달력 일러스트 보고 수긍했습니다. 차원이 다른 잘생김 맞더군요… 선생님과 신팀장님의 국보급 얼굴도 오랫동안 안녕하시기를 함께 기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