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장場

김초엽, 소금물 주파수(「양면의 조개껍데기」 수록작)

by 담화

몽아.


네 이름을 입안에서 굴려보면 넣은 기억도 없는 조그만 알사탕이 도록도록 구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건 아마도 우리말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개성 때문일지도 모르겠어(물론 내가 세상의 언어를 다 아는 것도, 그 특질을 모두 아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조금이나마 읽고 쓸 수 있는 외국어에 한정해서 말하는 거라는 건 좀 감안해 주렴).

영어와 달리 우리말에는 두드러지는 개성이 하나 있어. 내가 언어 전공자가 아니라 그걸 전문적으로 뭐라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글쎄, 음절의 독립성이라고 하면 비슷하게 표현이 되려나. 물론 우리말에도 연음 현상이 존재하긴 하지만, 영어처럼 음절의 경계를 단숨에 허물어버리는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는 건 아니거든.

음절 하나하나의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특성이 강하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일 거야, 밤이 chestnut도 되고 night도 되는 건. 단 한 글자에 의미의 색채를 입힐 수 있는 언어가 세상에 그렇게 많을 것 같진 않아. 그러니까 네 이름을, (정확히는 해몽이지만, 몽이라고 부르는 게 훨씬 듣기 좋지) 몽아, 하고 부를 때 폭신폭신한 둥근 비음이 입안에 머무는 동안 나는 어쩐지 조금 포근한 기분이 돼. 단 한 음절의 호명이 일깨울 수 있는 감정까지 고려하면서 네게 이 이름을 지어 붙였을 작가의 고심을 생각하면 아주 조금은 먹먹한 기분이 되기도 하고.


나는 네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너의 말을 들어. 바닷속 생물들과 친근하게 교류하는 너를 보며 아마도 물고기의 한 종류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지.

혹등고래 무리와 어울려 다니던 네가 그들이 떠날 때가 되어 겉모습이 비슷한 참돌고래 무리에게 합류하기로 했다는 대목에 이르러 나는 알게 되지. 네가 다소 특이하게 생겼던 혹등고래가 아니었다는 걸, 그렇다고 참돌고래도 아니라는 걸.

고래 비슷하게 생겼고, 주파수니, 도넛이니, 어디서 이런 말들을 들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런 희한한 말들을 알고 있는 네가 무엇인지 나도 모르지만 너도 몰라. 그래서 우리는 함께 고민하며 바닷속을 함께 돌아다니며 곰곰이 생각하고 또 고민하지. 너는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이 고래 저 고래 무리에 섞여 바다 곳곳을 헤엄쳐 다니고 있는 것인지를.


정말 그런 걸까? 내가 플라스틱, 화학물질, 도넛에 대해서 아는 것, 가족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 깨어났을 때 갑자기 바다 한가운데였던 것, 바다 헤엄을 능숙하게 못 치는 것은 내가 포획되었다가 다시 풀려난 돌고래이기 때문일까? -141쪽


하지만 너의 의문에 누구도 답해주지 못해. 나도 궁금해. 너는 누구인 걸까. 사실 나는 이때까지도 너의 이름조차 모르지. 누구도 그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를 궁금해하는 것을 보면 네가 얼마나 호기심이 많은지를 알 수 있지. 하지만 그게 단순히 어린 호기심만은 아니라는 걸 곧 알게 돼.


소문 속의 귀신고래와 귀신고래가 들려준 이야기의 주인공을 찾아 헤맸다. ‘돌고래를 흉내 내려고 했지만 어설프게 그러지 못한 존재’라니, 내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데도 어쩐지 마음이 쓰였다. -146쪽


몽아, 마음이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


너를 보고 있는 동안 예전에 읽었던 어느 신경과학자의 책이 생각났어. 취약성을 가진 신체를 감지하고 항상성을 유지하려 애쓰는 동안 발생하는 느낌의 장을 감정으로 설명하고자 한 분이었지. 그렇게 본다면 네게도 분명히 마음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혹등고래 무리와 헤어질 때 작별인사로 그들의 노래를 불러준 것도 그렇고, 특이한 고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신이 나서 친구들에게 온갖 가설을 떠벌릴 때도 그렇지. 뭔가를 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구, 그건 마음에서 자라나는 것이거든. 누군지도 모를 외로운 존재를 안쓰럽게 여긴 것도 그렇지.

네 마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 네가 품고 있던 모아 할머니의 당부를 네 방식대로 이해하면서 생겨난 것일 수도 있을 거고, 네가 바닷속에서 만나왔던 수많은 친구들과의 교류를 통해 피어난 것일 수도 있겠지. 어느 쪽이든 귀하고 아름답지.

가끔은 울산을 기억하고 너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주렴.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아. 머리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가끔은 마음이 기억하기도 하거든. 오늘도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하루를 보냈기를 바라. 노래도 부르고, 바닷속 마을의 신기한 이야기도 실컷 재잘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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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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