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었던 일, 먹는 일, 먹을 일
밤사이 곳곳에 눈이 찾아온 월요일 아침이야. 본격적인 수험생활로 접어든 진이는 아침부터 독서실 출근하고, 막내는 학원 가고, 수험생 제자들을 떠맡는 바람에 선이도 덩달아 바빠진 월요일이네.
주말 동안 엄마가 눈에 띄게 이상해져서 다들 힘들었을 것 같아. 엄마가 그렇게 심각하게(?) 감정적으로 다운된 걸 처음 봐서였을까. 선이가 밤에 그랬지. 엄마는 절대 우울감 같은 건 겪지 않을 것 같고, 정신적으로 제일 건강할 것 같은 사람인데 좀 놀랐다고. 이젠 괜찮냐고.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정말로 항상 괜찮은 사람은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바다 위로 던져지는 게 아닐까 하고. 바다는 대체로 평온하지만 갑자기 무섭도록 공포스러워지는 순간이 있잖아. 이대로 집어삼켜지는 게 아닐까 싶은 그런 순간.
실제로 인간의 삶은 너무나 하찮고 별 볼 일이 없어서 그렇게 무너질 때도 있지만 평소엔 넌더리 나도록 싫어하던 매일의 일과가 그렇게 삶을 붙잡아주곤 한다는 걸 종종 깨닫곤 해. 뭐, 꼭 그런 이유에서 매 시간을 빡빡하게 이런저런 일들로 채워 넣는 건 아니지만.
아빠는 종종 엄마가 책장에 고개를 파묻고 있으면 좀 쉬라니까 왜 안 쉬고,라고 타박하곤 하지만 어제는 엄마 상태가 심상찮다고 느꼈는지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 그렇게 책장 위로 던져놓고 있는 눈길이 진짜로 엄마를 쉬게 한다는 걸 체감한 건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하고. 그렇게 읽고 있던 어떤 책에서 발견한 한 구절에서 오래도록 눈을 뗄 수 없었지.
그녀는 엄마라는 이름의 열차다. 한번 출발하면 갈아탈 수도, 쉬어갈 수도 없는 열차. 나는 그 아래 곧게 뻗은 선로가 되고 싶다. -「당신이 더 귀하다」, 150쪽
이 책이 궁금하겠지만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그냥 이런 글에서 슬쩍 언급하고 묻고 싶은 책이 아니어서. 너무 좋은 책이어서.
아무튼, 그 문장에 눈이 닿았을 때 낮에 그렇게 하루 종일 울었는데도 또 눈물이 났어.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또 눈물이 나. 그렇게 글로 쏟아내지 않으면 하루치 호흡을 얻기 힘든 느낌이 뭔지 엄마는 너무 잘 알거든.
그리고 어릴 때 생각이 나더라.
요즘은 기차 탈 일이 있으면 시간 아끼느라 고속열차만 타게 돼서 너희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 어릴 땐 기차에 식당칸이 있었어. 사실 뭐 대단히 맛있는 음식을 팔진 않았어. 맛도 기억도 제대로 안 날 정도로. 그런데 신기하지.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창밖의 철로를 내다보며 입안에 집어넣었던 음식의 질감은 지금도 기억이 나거든.
달큰하게 부드러운 한 스푼 뒤에 기다리는 힘주어 씹지 않고서는 바스러지지 않던 질깃한 그 무엇인가가. 연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건 잠깐이고 대부분은 힘들이고 공들여야만 목뒤로 넘길 수 있었어. 그런데 그것 또한, 결국은 잘 먹기 위한 최소한의 밸런스가 아니었을까 인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잘 먹는 것 또한 잘 살기 위한 제일 기초적인 연습이 아니었을까. 그렇담 결국 엄마란 사람은 잘 살기 위한 틀을 마련해 주는 사람인 듯도 하고.
이런 맛 저런 맛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이렇게 쉽게 넘어가는 음식도, 애써 씹고 부수는 노력을 들여야만 넘길 수 있는 음식도, 도무지 뭔지 모를 맛인데 어른들은 맛있다고 상찬하는 음식도 있다는 것을 배우는 아주 조그맣고 짧은 세상의 경험. 그게 어떤 경험이었는지를 비로소 깨닫는 것은 아주 먼 훗날의 일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한 사람의 세계를 축조하는 데 결코 작지 않은 공헌을 한다는 뻔한 사실을 새삼스레 되새기면서 주말의 우울을 봉합하고 잊어버리려고 해.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오늘 점심은 또 뭘 먹니… 오늘 하루쯤은 그냥 시켜 먹을까(라고 쓰고 보니 어제 엄마 달랜다고 아빠랑 네가 호들갑을 떨면서 일요일에 문 연 근교 식당을 물색하던 게 생각나서 웃어버렸어. 이렇게 또 울다 웃고 그렇게 광대가 되고 마는 거지.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