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모으는 남자

마쓰이에 마사시, 가라앉는 프랜시스

by 담화

어떤 책은 감정을 남기고 어떤 책은 질문을 남긴다. 또 어떤 책은 결을 남기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200페이지가 채 못 되는 이 소설을 읽고 난 뒤에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카테고리의 이름은, 글쎄, 뭐라고 하면 좋을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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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 감각을 뭐라고 정의해야 좋을지 파악하기 어려워서 가만히 내버려 두는 동안 몇 가지를 추가로 깨닫게 되었다. 여기엔 작가가 제기하는 어떤 논쟁적 명제도, 대립하는 인물들 사이에서 폭발하는 극단적인 감정도, 휘몰아치는 사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가 무의식 중에 책을 분류하는 선명한 기준에 따르기에는 너무나 잔잔하기 때문에 일종의 회색지대를 마주친 것처럼 당혹감에 젖게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을.

미세한 층위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극히 섬세한 감정과 갈등은 훨씬 더 큰 규모에서 작동하는 서사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낯설다는 기분을 넘어 그래서 도대체 이게 뭔데,라는 질문 안에서 홀로 머리를 쥐어뜯게 만든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강렬한 독서 체험을 안겨주지 않는다고 해서, 사유의 틀을 부숴버리는 전복적인 서사를 맛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이야기가 어딘가 부족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야 애초에 클레어 키건이나 윌리엄 트레버가 선보이는 단편소설을 읽지 못했을 테다. 마쓰이에 마사시는 단편소설 작가는 아니지만, 언급한 두 아일랜드 작가와 어떤 면에서는 서사의 결이 몹시 닮았다. 다만 지극히 편협한 독서 경험으로 미루어 판단하자면 키건이나 트레버의 인물들은 그 배경과 함께 성장했지만 어느 순간 배경에서 독립해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반면 마쓰이에 마사시의 인물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끝끝내 배경에서 독립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모든 장면에서 온도가 느껴진다. 다만 그 온도가 인물만으로는 구현되지 않는다. 계절감과 공간의 인물만큼 중요한 느낌이다. 인물의 심리 변화가, 계절이 지배하는 공간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 이야기다. 작가의 특징인 듯한데 확인차 몇 권을 더 읽어볼 생각이다.


안치나이 마을의 높은 하늘 아래를 걷는 것도 좋아했다. 마른 바람이 가지런히 자란 밀밭의 초록 이삭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빠져나간다. 모양이나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 부정형한 것이 어딘가를 향해 움직여가는 걸 눈으로 좇고 있으면 마음이 몸에서 빠져나가 그대로 둥실 떠서 주위로 퍼져가는 것 같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그 감각은 가끔 자신 안에서 갑자기 일어나 게이코를 뒤흔든다. 구름의 움직임, 물의 흐름, 거목의 무성한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불꽃 모양... (...) 일체감과 소외감, 완전히 상반되는 것에 동시에 싸인 듯한 감각. 자신을 상실한 것 같으면서 눈앞의 세계 전부가 내가 된 듯한 순간. -15쪽


누가 안내한 것도 아닌데 게이코의 장갑 위에 떨어진 눈은 우연찮게 이렇게 긴 시간 응시되지만, 대부분의 결정체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 갑자기 시작된 되돌릴 수 없는 여행의 앞길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영구히 착지하지 않는 눈은 한 조각도 없다. 분명한 것은 그 사실뿐이다.
몸속까지 차가워진다. 주위에는 이미 눈의 하얀색이 퍼져 있다. 서둘러서 무엇인가를 숨기듯이 골고루, 그리고 용의주도하게, 또 소리 없이 눈은 쌓이고 있었다. -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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