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사와 아키오, 책이 이어준 다섯 가지 기적
멋지게 재기에 성공한 스즈모토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먼저 축하를 드리고 싶네요.
더 이상 누구도 기대하지 않던 소설가로서 근사한 역전 만루홈런을 친 것도 물론 축하할 일이지만요, 저는 다른 쪽으로 축하 인사를 하고 싶어요. 선생님의 작품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훌륭한 편집자를 만나고, 원히트원더 작가라는 이름을 지울 수 있는 새 작품을 마침내 완성하신 데다, 허물어졌던 가족관계를 부분적으로나마 보수할 기회를 만들어냈고, 고군분투하여 결국은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린 작품을 써냈으니까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을 만한 꿈이고, 누구나 이루기는 쉽지 않은 꿈이기도 하죠.
특히 대표작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이 이미 존재하는 작가에게, 그 작품이 드리운 그늘을 벗어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자기 복제의 늪에 빠지거나, 아예 회피해서 다른 장르로 숨어들거나. 성공이 거대할수록 그림자가 깊고도 길죠.
맞지 않는 옷인 줄 알아도 줄기차게 미스터리 장르만을 써냈던 선생님의 마음을 알아요. 애써 완성한 원고를 넘기고, 교정 작업을 거치고 표지를 받고 출간을 할 때까지 이번에는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수차례 기도했을 마음도 알죠. 그리고 몇 달 뒤 돌아온 서글픈 결과에 나는 이 일을 해선 안 되는가 보다, 하고 좌절했을 마음도.
간신히 확보해 두었던 아이와의 만남도, 이제는 새아버지가 생길 테니 자제해 달라는 전처의 말을 들었을 때는 간신히 버티고 있던 세상 한구석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을 거라 짐작도 해 봅니다. 양육비를 주지 못하고 있으니, 양육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입을 대지도 못하는 처지는 또 얼마나 서글펐을까요.
탑티어에 들지 못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처럼 선생님도 겸업을 하고 계시죠. 그렇게 버티던 생활 끝에, 모처럼 찾아온 정직원 제의 앞에서 얼마나 흔들렸을까요. 이 기회마저 놓치면 영영 번듯한 사회인의 타이틀을 가질 수 없는 게 아닐까 불안할 수밖에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던 작품과 같은 신작 의뢰가 들어왔을 때 그 의뢰를 수락할 수 없었을 마음을 이해해요.
“하지만 선생님 작품 속의 이야기가 지닌 힘에 대해서는 제가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자신감은 있습니다.” -41쪽
하고 소심하지만 할 말을 다 하는 새 편집자 앞에서 ‘그럼 내 생활을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팔릴 책을 쓰게 해서 히트시켜 줄 수 있냐’는 질문을 하는 마음, 그러니까 네게 대중의 기호와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의 교차점을 여러 곳 만들어줄 수 있겠느냐. 내 작품의 상업성을 다듬어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 지점에선 어떤 간절함마저 엿보여요. 하지만 아시잖아요, 그런 방법은 선생님도, 쓰야마 편집자도 모른다는 걸.
대형 히트 상품엔 도저히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불특정 요소가 끼어있다는 걸요. 책이라고 다를까요. 팔릴지 안 팔릴지 알 수 없어도 계속 쓸 수밖에 없는 욕구가 꾸역꾸역 밀려 나오기 때문에, 그래서 작가는 쓰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건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책은 많은 사람을 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
그렇게 과거의 성공 사례를 따르는 것은, 저로서는 조금도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13쪽
항상 그게 궁금했어요. 아주 선명한 한 사람의 독자를 겨냥하고 쓴 것 같은 책은 어째서 그렇게 여러 사람에게 두루 사랑받고, 반대로 여러 사람이 모두 좋아할 만한 내용이지 싶은 책은 그리 호응을 받지 못하는지.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겠어요. 알겠더라고요. 실제로 그렇게 되었잖아요. 선생님이 죽을 각오로 써낸 책이 몇 사람이나 구했는지 보세요. 좋은 이야기는 그렇게 힘이 세더라고요. 온 힘을 다 쏟아 쓴 그런 이야기는요.
이 책이 도약대가 되어 또 다른 책이 세상에 나오겠지요. 그래서 익명의 누군가는 또 힘을 얻을 거예요. 그 사실이 또 격려가 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낼 거고요.
상상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좋은 순환이 아닌가 싶어요. 부디 안주하지 마시고, 스스로를 의심하지도 마시고, 그저 건필하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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