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안녕……해요, 캐시?
전요, 그리 안녕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아니, 육체적으로는 대체로 안녕해요. 그런데 머리가 멍해요. 정신이 혼란하고요. 겉으로 보이지 않는 모든 곳에 멍이 든 것 같고 어딘가에 상처가 나서 욱신거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감기가 심하게 걸렸을 때 말이에요, 목에 가래가 꽉 차면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 들거든요. 그럴 때 목을 더듬어서 만져보곤 해요. 이 안에 들러붙어 있는 걸, 닥닥 긁어내서 어딘가에 던져 버리고 싶다고.
「나를 보내지 마」를 덮었을 때의 기분이 딱 그와 같았다고 해야겠어요.
책을 읽는 동안 정신이 망가지지 않게끔, 마음을 잔뜩 덮어 보호하던 점액이 있어요.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불쾌함. 동족인 인간종에 대해 절로 일어나는 실망과 혐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어딘가에서 은밀하게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차가운 각성. 그것들이 모두 뒤섞인 감정적 분비물이겠죠.
그렇게 공연히, 몸 안 어딘가에 들러붙어 버린 것만 같은 점액질의 무언가를 떼어내고 싶은 것처럼 손으로 여기저기를 만지작거리게 돼요.
평범한 기숙학교 같던 헤일셤이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누가 먼저 느꼈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아마 페이지 바깥의 독자는 진작 알아차렸겠지요.
당시 헤일셤에서 어떤 대접을 받느냐, 얼마나 사랑과 존중을 받느냐 하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물건을 ‘창조’하느냐에 좌우되었다. -36쪽
이를테면 이런 대목에서요. 어린아이들이 어떤 물건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사랑을 받고 존중을 받느냐가 달라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그것이 당연시되는 환경에서 성장했다면, 네, 그게 어디가 이상한 건지 깨닫기는 쉽지 않겠죠.
어쩌면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테고요. 자신을 둘러싼 세계만이 전부인 아이들에게 환경은 곧 진리일 수밖에요. 하지만 그 뒤틀린 공식은 반드시 바로잡혀야만 하죠. 그런데, 아이들의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니, 이 말은 틀린 것 같아요. 존재부터 그릇되었다는 말은 어딘가 그 말을 하는 당사자가 존재의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다 여기는 오만이니까요.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보육원인 줄 알았다가, 그러다 조금 특이한 분위기의 기숙학교이겠거니 여겼다가, 마침내 이곳이 자연의 섭리에 끼어든 인간의 오만함이 탄생시킨 클론 양성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의 황망함을 무어라 표현해야 좋을까요.
당신을 포함한 아이들의 생애주기는, 말이 그럴듯해 기증이지 몸을 뜯기고 또 뜯겨 마침내 버틸 수 없어 스러지며 끝나는데,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조금의 저항조차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지독한 무력감에 휩싸이고 말아요.
“너희 중 아무도 미국에 갈 수 없고, 너희 중 아무도 영화배우가 될 수 없다. 또 일전에 누군가가 슈퍼마켓에서 일하겠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너희 중 아무도 그럴 수 없어.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단다. 성인이 되면, 심지어는 중년이 되기 전에 장기 기증을 시작하게 된다. 그거야말로 너희 각자가 태어난 이유지. 너희는 비디오에 나오는 배우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야. 나랑도 다른 존재들이다. 너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미래가 정해져 있지.” -146쪽
그러니까 이런 말을 듣고도 당연한 듯 그렇구나, 하고 아이들이 수긍하는 건 도대체 어떤 종류의 감정이 선행학습으로 몸에 배어 있어야 가능한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거든요.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고.
아주 잠깐의 쉼표 같은 회상들이 지나가면, 다시금 어딘가에서 끈적끈적한 점액질 성분이 흘러나와 마음을 뒤덮어요. 도저히, 그런 방어막 없이 견딜 수 없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그렇겠죠. 그러니까 당신이 헤일셤의 친구들을 모두 잃고 나서, 흐느끼지도, 자제력을 잃지도 않고 차로 돌아가 가야 할 곳을 향해 출발(491쪽)했을 거예요.
그렇게 당신마저 사라진 뒤에 남은 이것은 정체불명의, 무겁고 끈적하며 질척한, 그리고 도무지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를 감정의 덩어리 같은 거겠죠.
도대체 인간이 뭐지. 인간이란 게 뭐길래, 내 몸이 상하면 언제든 뜯어먹을 수 있는 다른 인간을 당연한 듯 탄생시키고 길러 잡아먹는 걸까.
진짜 동물처럼 송곳니를 박아 넣고 살을 뜯지 않는다고 뭐가 다를까요. 제 눈에는 똑같이 육식으로 보이는걸요. 그런 혐오와, 자괴감과, 실망과 그래도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어떤 결기.
그러니까 그 끈적한 덩어리 안에 아주 나쁘고 불쾌한 것만 있는 건 아닐 거예요.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끈적이는 대혼란 속에 용기를 내어 손을 넣어야겠죠. 그리고 같이 엉기어버린, 이야기가 남긴 좋은 부분을 어떻게든 찾아내야 할 거예요.
아마 작가는 그러기를 바랐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당신도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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