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이야기에 대처하는 자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단편선)

by 담화

자신의 인생이 타락했다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끝의 끝까지 믿고 기댈 수 있을 만한 사람, 혹은 끝까지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는 어터슨 변호사님께.


제가 이 신기하고 기이한 이야기를 처음 읽었던 것은 아마도 열세 살 언저리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하이드 씨의 외모가 얼마나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운지, 한 사람이 자신의 내면의 그림자를 완전히 독립된 인격체로 응집시킬 수 있다는 상상력에 몸서리를 쳤더랬죠. 이후로 여러 번 거듭 읽었지만 선과 악의 분리, 인간의 다면성, 누구에게나 일정 지분 존재하고 있을 사악함, 그런 것들을 주로 주목했지 그 외의 다른 이야기나 인물들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진 않았었어요, 이번의 N회차 재독에 이를 때까지는요.


처음에는 자신이 발견한 인격을 완벽하게 반전시키는 방법에 환희하고 경탄했을 지킬 박사가 (저는 이 이름이 프랑스어의 je(나)와 영어의 kill의 합성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소름이 돋던데요)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가 궁금했죠. 아마 그것도 많은 독자들의 궁금증 중의 하나였을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관심의 초점이 이동하더라고요.


결국 이 일에 연관된 사람들과, 어쩌면 황당무계한 그 현장을 지켜본 증인이기도 했던 사람마저 모두 죽어버리고 나서 이 모든 일을 수습해야만 하게 생긴 사람은 다름 아닌 존 가브리엘 어터슨, 그러니까 변호사님 본인이시잖아요. 어질어질하네요.


헨리 지킬 박사의 증발과, 기나긴 고백 편지가 모두 진실임을 증명하는 래니언 박사의 편지까지 남아있긴 하지만 대체 그게 사람의 상식선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이 소설이 다루고자 하는 게 그런 어마어마한 사건의 수습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의 방법론도 아니기도 하고요.


변호사님은 이야기의 말미에 이르도록 모든 진실을 목격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 여러 번 갈등했어도 우정을 의심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또한 변호사님이 겸비하고 계신 실로 묵직한 도덕적 신중함 덕분이겠죠. 물론 저는 끝까지 알 수 없긴 해요. 지킬 박사의 편지를 덮은 변호사님이 어떤 선택을 할지 절대로 알 수 없겠죠.


“어터슨, 자네라면 현명하게 판단해 줄 거라고 확신하네. 나는 자네를 정말이지 엄청나게 믿고 있다네.” -44쪽


맹목적이고도 이기적인 믿음이죠. 저라면 이런 말을 듣는 순간 우정이고 뭐고 도망가버릴 것 같긴 하지만. 그러나 변호사님은 오랜 우정을 퍽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분인 게 틀림없습니다.


지킬 박사가 하이드로부터 모종의 협박을 당하고 있거나, 어떤 불합리한 관계에 놓여 있다고 추측하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확신할 수 있죠. 그렇지만 변호사님 역시 보통 인간이기에, 홀로 이 문제를 고민하기에 버겁다고 느낍니다. 그리하여,


최소한 이 편지와 관련하여 어터슨 씨가 내려야 하는 결정은 미묘한 것이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자신을 믿었지만 누군가에게 조언을 받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은근하게 얻어야 했다. -46쪽


조언을 구하되 직접적이지 않게, 은근하게. 저는 이 문장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어터슨 변호사님, 그게 당신의 삶의 태도일지도 모르겠어요. 모든 것을 알면서도 직접적이지 않게.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도 은근하게. 섣부르게 평가하지 않고 단정하지도 않고. 그러니 남들이 최악의 최악이라 평가하는 자들에게도 끝끝내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그러니 저도 마지막은 직접적으로 묻지 않는 게 좋겠죠.


지킬 박사의 편지를 다 읽은 후, 변호사님이 창밖을 보았는지, 아니면 그냥 책상 위에 시선을 떨구었는지. 한숨을 쉬었는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는지를 제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네요. 작가도 쓰지 않았고, 변호사님도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는 압니다. 그 방에서 나온 후에도 변호사님은 역시 그대로 어터슨 변호사였을 거라는 것. 그것이 변호사님의 한계인지, 품위인지는 제가 말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신비를 쫓아서, 어떤 사람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태도를 나침반 삼아 생을 사는가 봐요. 그게 이번 재독에서 제가 얻은 또 하나의 배움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인생 교훈 감사했어요, 변호사님. 부디 그 골치 아픈 케이스에서 지금은 풀려나셨기를.


http://aladin.kr/p/z6m7I


수요일 연재
이전 11화기회는 공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