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력으로 극복했던 꽃게탕
비가 잔뜩 내리는 월요일이야.
어젯밤에 서울 사는 언니(누나)가 이렇게 문자를 보냈어. 엄마, 지금 천둥번개 치고 난리 났어. 폭풍우 같아….
그 비가 그대로 아래로 내려왔나 봐.
장침을 맞고 나올 때 한의사 쌤이 침몸살이 날 수 있다고 단단히 경고해 두시긴 했지만 정말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아플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니.
두 시간 간격으로 깨다 말다 하는데 창문이 부서져라 비가 유리창을 두들겨대고 있더라. 온몸이 쿡쿡 쑤시는데 빗소리까지 고막을 푹푹 찌르는 이 상황이 대환장 콜라보가 아니면 뭘까, 그런 생각을 하다 또 얕은 잠이 들었던 것 같아. 마지막으로 시계를 본 게 새벽 네 시 반이었는데 한 시간 뒤에 눈을 뜨니 통증이 절반쯤 사라지고 없는 것이 진짜 살 것 같았어.
쌤은 친정 올 때마다 들러서 침 맞고 가요,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뇨 죄송하지만 그냥 이대로 살게요. 평소의 욱신거리는 통증이 훨씬 참을 만했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드네. 이상하지, 나이를 먹으면서 많은 것에 무뎌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가 봐.
어제 읽던 책에서 재미있는 구절을 봤어.
만약 누군가 토마토에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어 평생 먹지 않았다면, 그것을 장바구니에 넣거나 넣지 않는 행위는 그 자체로 메시지다. - 「메모의 순간」, 69쪽
적어도 엄마에게는 이 말은 확실한 진리거든.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부반응. 너희도 알다시피 엄마가 특정 해산물에 굉장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을 거야. 이건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 사실 엄마는 어릴 적에 온 동네에 소문난 유명한 새우 킬러였어.
새우만 보면 입맛을 다시는 그런 어린이였지.
그렇게 욕심껏 체내 새우살 %를 착실하게 늘려가던 네댓 살의 어느 날이었던가, 그날도 평범한 새우 과식의 날로 지나갈 수 있었을 텐데 지나친 식욕이 불러일으킨 참사가 컸어.
소위 급체라고 하는 거 있지. 아주 단단히 체했던가 봐. 당연하게도 지금은 아무 기억도 안 나는데, 아무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대. 그리고 그날 이후로 엄마는 새우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을 했다나. 된통 고생한 몸에서 저것 저리 치우라고 비상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리고 난리를 치게 된 거지.
그 여파는 무고한 게와 가재에게까지 미쳤어. 이런 걸 연좌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갑각류의 키틴질 성분 특유의 냄새를 꺼리게 된 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어.
그게 큰 문제가 된 건 갑각류를 너무나 사랑하는 아이가 생기게 된 이후였지… 인생은 정말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거더라, 얘들아. 진짜 모르는 거야….
그런데 말입니다.
입맛이 없어서 아무것도 안 먹힌다는 분이 (네, 너요. 입맛 까다롭기는 세상 제일가는 둘째 너님이요. 심지어 그분이 수험생이잖아, 허...) 꽃게탕 먹고 싶다아아, 노래를 하는데 뭘 어째요, 나가서 알아서 사 먹고 오랄수도 없고, 힘든 건 나만 힘들면 그만인데… 하…
1.2kg짜리 냉동꽃게를 사 봤어. 끓이는 법이야 뭐, 매운탕 끓이는 거나 비슷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싶어서 조리법을 몇 개 뒤져봤지. 된장을 조금 넣는 게 좋다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어. 그래서 맞춘 양념장은 고춧가루 : 된장 : 국간장을 2.5 : 1 : 1.5. 여기에 다진 마늘은 1에서 1.5스푼 정도로 미리 함께 개어두면 고춧가루도 잘 불어나고 맛도 잘 어우러져서 더 좋겠지.
냉동 꽃게라면 어느 정도 기본 손질은 되어 있을 테니 씻어서 물기를 빼주는 정도의 밑손질만 해도 돼. 채소는 무, 애호박(양파는 비추. 너무 달아져. 그래도 넣어야겠다면 아주 소량), 팽이버섯 정도만 넣어도 괜찮아. 된장찌개 넣을 때처럼 나박나박 썰어두자.
물은 한강으로 잡지 마, 절대… 탕 종류 끓일 때 실패하는 제일 큰 원인이 물을 아주아주 넉넉하게 잡는 데 있기도 한데, 차라리 너무 바특하다 싶을 때 물을 추가하는 게 훨씬 안전하니까. 그러니까 1 리터하고 200cc 정도에서 시작하도록 하자.
여기에 미리 섞어두었던 양념장을 풀고 끓어오르면 조각난 꽃게를 하나씩 집어넣고, 거품이 끼기 시작하면 거품도 살살 걷어주고.
게는 언제 익는지 알아보기가 참 쉽잖아? 다홍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썰어뒀던 파와 손질해 두었던 쑥갓을 올려서 한 번 제대로 끓여서 마무리하면 끝. 그렇게 끓여낸 꽃게탕을 저녁상에 올렸을 때 아빠가 감탄하면서 뭐라고 했는지 혹시 기억하니?
이게 진짜 사랑이구나.
(그리고 뒤에 덧붙인 말, 내가 새우 먹고 싶다고 할 땐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음, H 선생님, 미안.
내가 게는 어떻게 극복해 보았지만 새우는 도저히 불가하더이다.
그냥 몸에서 울부짖어. 저 냄새 좀 어떻게 안 되냐고. 사랑으로 극복이 안 되는 것도 세상엔 있어요. 그냥 겸허히 받아들여… 포기하면 편해…
덧. 세상에, 그날 엄마가 식탁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밥 먹었던 거 기억하니? 그래서 그런가 사진도 안 찍어놨더라. 나노바나나한테 꽃게탕 한 냄비 끓여 오라고 시켜봤더니 내가 끓인 것보다 더 그럴싸하네. 분하다. KO패 당한 기분이야.